인류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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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이 있다. 1만전 전에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지질시대를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르는데, 홀로세 이후 인류가 지구 전반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강조하기 위해 제안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인간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것, 아울러 지구 역사에서의 인간 중심의 관점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최초 용어 사용은 1992년 기후변화에 관한 책에서 등장했지만, 본격적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를 지칭하는 개념으로는 파울 크뤼천 박사가 2000년 한 학술회의장에서 주장하면서부터였다. 오존층 파괴 원인을 밝힌 공로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크뤼천 박사는 인류가 초래한 심대한 변화를 자각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홀로세가 끝났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새롭게 주창한 인류세 개념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이와 같은 논쟁적인 개념을 남겨두고 크뤼천 박사는 2021년 1월 별세했다.



워낙 논쟁적인 개념이기도 하고 또 공식적으로 확정된 개념이 아니다보니, 인류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얼마나 관점이 다양한가 하면, 방사능 낙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4년을 시작점으로 보는 견해부터 농업이 시작된 1만 년 전까지 거슬러가는 견해도 있다. 크뤼천 박사는 인류세를 언급한 최초의 출판물에서는 화석연료 연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초점을 맞춰, 인류세가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했다고 보았다. 2018년 영국과 남아공 연구팀은 재밌는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즉 ‘닭 뼈’가 인류세를 증명하는 화석으로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매년 500억~600억 마리의 닭을 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따위도 인류세 지층에 뚜렷하게 남을 것은 분명하다. 아무튼 지금의 기후변화와 해양 산성화, 광범위한 오염, 플라스틱과 비닐의 축적, 대규모 생물멸종 등은 새로운 지질시대로서 인류세를 인정할 근거가 된다.



한편, 법학분야에서는 ‘지구법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류세 개념과 언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구법학이 2001년 한 컨퍼런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인류세 논쟁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도 싶다. 지구법학 개념은 수도승이자 철학자, 문화사학자인 토마스 베리가 “지구는 새로운 법철학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 데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류세 개념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관한 것이라면, 지구법학 개념은 지구공동체를 위한 인간의 법철학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지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존재할 권리’와 ‘서식지에 대한 권리’, ‘지구 공동체가 부단히 새로워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면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습관이 있는데, 군복무 시절 뭐든 항상 부족했던 중대 환경 덕분이다. 지금도 강의실이나 행정실 등에서 나뒹구는 이면지를 모두 수거해서 메모지나 연습장 따위로 활용한다.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재활용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자연을 위한 개인의 작은 노력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류세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모두가 문제의식을 갖추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인류세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세금의 일종인가 싶었다. 지구가 인류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으니 인류가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부담해야 하는 세금 말이다. 이처럼 이 개념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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