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로마’에서 말하다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타이틀 <로마에서 말하다>에서 곧바로 ‘영화’라는 테마를 연상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장까지 덮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로마’라는 장소가 갖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선 그녀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자랐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인 듯 하다. 그렇다면 그에게는 '로마인'의 피가 흐르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탈리아에서 실제 영화판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도시가 (아마도) 로마인 듯 하고, 물론 <로마인 이야기>가 저자의 대표작인 만큼 ‘로마’라는 도시가 타이틀에 쓰인 것 같다. 정리하자면 로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로마에서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기 때문에 <로마에서 말하다> 이상의 타이틀이 탄생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어머니와 아들

 핵가족화, 개인화가 심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가깝고도 또 한편으론 어려운 존재가 부모님이 아닐는지. 자식과 부모간의 대화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현실의 어떤 부모와 자식은 가장 부자연스러운 시간이라 여길 수도 있다. 부모님 세대와 우리 세대는 각자의 시대를 살아온 만큼의 간극이 생기게 마련이었고, 그만큼 이해의 폭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이것을 일컬어 소위 '세대차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차이를 넘어 '세대갈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영화’라는 테마보다 더 눈여겨본 점이 바로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라는 것이다. 일본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들이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여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둘의 대화는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물론, 책을 출간하기 위한 출판사 측의 요청으로 일부러 대화를 나눈 것이지만 그들은 좀처럼 각자의 욕심이나 고집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실제 영화 스탭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아들의 감상평에 귀 기울여 주며, 아들은 어머니의 취향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존중해주고 있었다. 중간에 시오노나나미가 일본에 체류하게 되어 직접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자,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가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 쓰는 글은 이탈리아의 한 젊은이의 솔직한 감상이라 여기고 읽어주십시오’라고 운을 떼며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비스콘티’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데 스스로 격앙되어 신나게 쓴 글이 그의 어머니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귀엽게 느껴졌다.(^^;;) 
  

시오노: 나도 드디어 봤단다. <샤인 어 라이트>를 (...) 믹 재거는 나와 동세대인데다, 비틀스의 전성기 때에도 나는 롤링 스톤즈를 더 좋아했거든. 게다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도 흥미가 일었고.  

안토니오: 이 영화에서 스코시즈의 위대한 점은, 뉴욕의 비콘 극장에서 열렸던 롤링 스톤즈 공연에서 자신의 역할을 연출자가 아니라 제공자로 관철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저 공연 전체를, 시작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들려줬을 뿐이죠 (...) 저는 마틴 스코시즈가 취한 이 방식이야말로 롤링 스톤즈에 대한 그의 경외심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봐요. 

어머니와 아들이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영화 이야기

 책을 구입하고 첫 장을 넘겨 목차를 훑어보곤 솔직히 놀랐다. <자전거 도둑>, <레오파드>로 시작하여 <시계태엽 오렌지>, <타인의 삶>, <내일을 향해 쏴라!> 등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총 100여 편의 영화가 등장하는데, 물론 영화 한 편 한 편 페이지를 할애하여 자세하게 소개하진 못했다. 제목만 언급하고 지나간 영화들도 많고, 개중에는 가십류의 시답잖은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시네마테크에서나 볼 수 있는 고전부터 오늘날 멀티플렉스에서 3D로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까지 두루 섭렵하여 이야기를 나눈 점이 한편으로는 굉장히 부러웠다. 일본과 유럽이라는 다양한 문화적 환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이유일까, 세대와 취향을 넘나드는 그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해박함이 인기 위주로만 돌아가는 국내 문화 환경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헐리우드와 이탈리아에서 영화 스탭으로 일했던 안토니오 시모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영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국가를 막론하고 비슷하구나 싶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이라는 세계 영화의 중심에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다. 너무도 다른 미국과 이탈리아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읽으며, 영화판 뿐 아니라 각국의 문화와 국가 정체성까지 가늠할 수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대화의 매 꼭지마다 정리되어 있는 영화 리스트를 체크해 가며 챙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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