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 사랑이라는 게 거대한 파도처럼 한 사람을 압도해서, 숨도 못쉬고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난 요크셔에 있는 수천 명의 남자들 중의 그 누구하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었는데, 하고많은 사람 중에 크리스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는가. 크리스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하루 온종일, 그 어떤 순간에도 크리스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가끔 난 나 자신이 피와 살과 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미세한 유리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한쪽은 나를 비추고, 또 다른 쪽은 크리스를 비추면서 마치 햇빛 속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계속 돌고 또 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는 그저 평상시처럼 살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내게서 아무런 변화도 눈치 채지 못한다.-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