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소설, 향
조경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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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떠난 사람들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봄, '나'(이경)는 할아버지 댁에 왔다. 여섯 가구가 수도 하나를 공유하는 셋방이다. 한 칸짜리 방과 시멘트를 발라 억지로 만든 다락방이 이경의 새 보금자리다. 거기에 이모, 삼촌, '나', 할아버지가 산다. 농협에서 일하는 이모는 퇴근 후 외국어를 공부하고, 삼촌과 '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기차역을 서성인다. 억지로 벽돌공장을 지은 할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들 중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는 떠난다. 이모는 고객 돈을 횡령해 앞방 남자와 떠나고, 할아버지는 모래를 잔뜩 섞어 부서지기 쉬운 벽돌 사이에 묻힘으로써 떠난다. 물론 '나'도 떠나고 싶다. 봄에 도착해 겨우 여름을 보내고 있는 '나'는 몇 번이고 "겨울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고 싶"(55쪽)다고 반복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다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고래나 염소 같은 포유류 동물이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게 여겨"(32쪽)지지만, 좋아하는 김치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나'의 새가족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나'는 혼자있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함께 떠날 사람도 없다. '나'와 같은 처지라고 여겼던 앞방 남자는 이모가 데려가 버렸다. 이제 남은 건 삼촌과 '나' 뿐. 이모와 할아버지가 떠난 집은 "아주 넓어졌다"(95쪽)

하지만 아무래도 둘이란 숫자는 불안하다. '나'가 매일 밤 귀가하는 삼촌을 기다리고, '나'에게 다정한 눈길 한번 주지 않을지언정 삼촌이 '나'와 같은 밥상에 앉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제 혼자 있는 것과 혼자로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됐다. 방이 너무 넓어져 삼촌과 '나'는 떠나고 싶단 마음조차 먹지 못한다.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않지만, 자리는 어디로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온다. 안마시술소의 안내원인 '그 여자'다. 홀로 입원한 삼촌을 성실히 보살피던, 자신을 질색하던 이모에게 꼬박꼬박 '아가씨'라 부르던 그 여자는 이제 '나'를 '아가씨'라고 부른다. 건물주 소유의 목욕탕을 경계로 '나'와 삼촌의 셋방은 아랫층, 안마시술소는 윗층에 위치해 있다. 목욕탕 매점엔 외상만 줄줄이 달아놓는, 안마시술소의 '장님'들 사이에 끼기에도 어설픈 '그 여자' 역시 혼자 있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엌에서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애호박전 조리법을 배우는 일은, 밀리고 밀리던 '그 여자'가 찾아낸 자리일 것이다.

이경, 정태우, 양미순 그리고 태어날 사촌동생. "나에게 새가족이 생겼다."(13쪽)는 첫문장이 완성된다.


#작정단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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