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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너울 작가의 소설이 더 다양한 주제와 풍성한 문장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소설에 뻔뻔하게 제 이름을 넣어 소개하는 능청스러운 작가가 되기도 했다. "원래 오늘 우리는 잠시 빛나다가 금방 퇴물로 전락해버린 작가 몇 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심너울이란 작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작가는 2년 전에 작품 몇 개를 발표하고 나름대로 상도 받아서 뭔가 되나 싶더니, 그 후 내는 작품마다 혹평을 면치 못하고 이제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상하게도(그리고 슬프게도) 그 작가 글이 내 취향에 완벽히 맞았다."(p.41)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은 쩔쩔매는 직장인의 슬픈 미래상이 담겨 있다. 과학 기술을 통해 제 사욕을 채워보려는 '윗대가리' 존재에 꼼짝 못 하는 연구원들이 있다. 책의 제목과 똑같은 단편소설이 뒤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 단편 속 부회장님(그리고 회장님)처럼 늙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라는 말이 나오게 된걸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표지에서 덩그러니 에어팟 하나를 끼고 있는 기괴한 생명체에 대해 이해가 된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라 밝혔듯이, 단편집의 제목이 된「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한때 내가 좋아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냄새가 짙게 벤 소설이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10년 전에 돌연사한 친구까지 추천 친구 목록에 뜨는 게 섬뜩해서 앱을 얼른 종료했다."(p.165) 섬뜩한 인간관계망을 권하는 미래에서 노인이 설 자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좁아진다. 에어팟 글자 뒤에 실버가 붙는 그런 미래 세상. "그때 기사가 근을 놓았다. 그는 카트를 밀치고 노인을 달랑들어서 보도블록으로 집어던지다시피 했다. 박스에서 생선들 몇 마리가 쏟아졌다. 노인은 뜨거운 바닥에 앉아 곡을 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광경이었다. 그때 옆에서 나랑 비슷한 나이의 대학생 한 명이 지나가더니 한마디 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맞아 진짜로." 그의 옆에 있던 친구도 맞장구를 치면서 버스를 탔다."(p.159) 이미 추하게 늙어버린 노인을 보며 한 마디 내뱉어버린 젊은이의 다짐. 책장에서 불쾌한 더위 속에서 더 비릿하게 변해버린 생선 냄새가 나는 듯하다. 기분 나쁠 정도의 하이퍼 리얼리즘에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다.
「감정을 감정하기」는 SF 글자를 뒤집어쓴 먼 미래에도 사랑은 있구나 싶었던 소설이다. 제목 그대로 감정을 감정하는 세상. 감정을 구조의 일부라고 여기는 그 미래에도 사랑은 어려운 모양이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증오하는 것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p.195)고 한다. 전자뇌를 지니고 휠체어의 스피커로 이야기를 해도 결국 사랑을 찾아 떠나는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감정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감정조차 진짜와 가짜를 감정할 수 없다면."(p.220) 작가가 글 마지막에 던진 가정에 내 생각이 한층 깊어진다.
밑줄을 그은 부분은 없지만 책을 덮고 기억에 남는 건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이다. 정말로 기가 막힌 제목. 강호동의 목소리가 언뜻 책 마지막 부분에 울려 퍼지는 듯 하기도. 저항받을 거야. 외려 여성이 아닌 남성이 남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해 쓴 글을 보니 기분이 아스트랄하다. 먼 미래에서 웃긴 메모 하나를 받은 기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젠더 갈등이 떠오르는 요즘 심너울 작가의 글은 '저항'받을 거야. 아마도. 그래도 심너울 작가가 본인이 묘사한 것처럼 한물 간 작가가 되면 안되는데. 저항받으면 안 되는데. 보청기 기능까지 겸한 실버 에어팟이 나오는 썩은 사과 냄새가 나는 세상이 도래하는 그 날까지!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