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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이지 정치 이념이 아니다. 이미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살고 있다면 ‘민주주의’를 조롱해선 안되며, 책의 원제처럼 소수의 독재로 국가를 다스리는 체제를 그리워해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저자들은 이 질문으로 책을 시작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패배의 수용’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한다. “정당이 지는 법을 배울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뿌리를 내린다.”(P.36)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트럼프는 자신이 진 선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지자들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켰다.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겨울 계엄령을 선포하며 서울 한복판을 전쟁터로 만들었다. 입으로는 조국을 사랑한다고 외쳤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이민국가인 미국은 인종차별이라는 숙명을 안고 다인종 민주주의를 향한 법적 기반을 쌓아왔다. 하지만 피로 시작하여 총알로 세운 나라 답게 “헌법은 무기 소유를 보장하면서도, 투표할 권리는 보장하지 않는다”(P.335)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바로 그 허점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소 기형적으로 작동한다.
특히 미국 선거인단 제도에서 그 문제점이 두드러진다. 저자는 2016년 대선을 예시로 들어 설명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160만 표 이상 더 받았지만, 트럼프는 위스콘신, 미시건, 펜실베이니아 세 주에서 근소한 차이로 이기며 선거인단을 독식했고,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다수의 선택이 반영되지 않는 제도 속에서 민주주의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저자들은 “선거 결과가 다수의 선택을 반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P.337)고 주장한다.
실제로 트럼프를 선택한 사람들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거대 대체 이론(Great Replacement Theory)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이민자들이 미국을 대체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이다. 이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 적을 만들어내고, 가짜 공포를 확산시킨다. ‘히잡을 쓴 동양계 흑인이 미국인을 몰래 죽이기 위해 영재 훈련받고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이야기조차 진실처럼 받아들여진다.
놀랍게도, 이 음모론은 한국에서도 기묘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한국 사회에는 ‘지역주의’가 존재하고, 이와 결합된 분단국가의 이데올로기는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빨갱이’나 ‘종북’으로 매도한다.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힌 사람들 혹은 멀끔하게 양복을 입고 독재자 동상 앞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두려움’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목을 붙든다. 참 오랜 기간, 붙들고 있다.
한국은 숭고한 희생으로 민주주의와 직접선거를 얻어냈지만, 고질적인 지역주의에 물든 한국의 정치사는 여러 굴곡을 겪었다. 정권 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설거지’라는 표현이 회자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고, 남은 문제를 청산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설거지론’이 자칫하면 민주주의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태도가 되기도 한다. 바뀔 수 있는 것은 정책이지, 시스템 자체가 아니다.
물론 상식을 벗어난 사업이나 정책은 바로잡아야 한다. SF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물을 정화하는 로봇 물고기를 천년만년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러나 정당의 구분 없이, “권력 이양이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P. 38)을 바탕으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할 때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 나는 한국에 없었다. 뉴스와 외국인 친구들의 위로를 통해 상황을 전해 들었고, 멀리서 간절하게 탄핵을 기원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나는 한국에 있었고, 직접 거리로 나섰다. “탄핵은 절대 남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악명 높게, 혹은 위험하게 권력을 남용했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P.80)지만 윤석열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싸움에 참여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단순한 정치적 다툼이 아니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23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아마도 트럼프의 재선을 저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썼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재선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 담긴 메시지는 국경을 넘어선다. 유럽에서는 네오 나치들이 돌풍을 일으키고, 한국에서는 45년 만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미국 대통령은 관세 정책을 장난처럼 뒤집고, 그렇게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내가 대학생 때 상상한 미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젊은 세대는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문제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표면적인 ‘자유’와 ‘애국’을 외치는 이들과 진짜 민주주의자들을 구별해야 한다. 그 노력에는 이런 책을 읽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