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1
강신재 지음, 김미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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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연애소설 가운데 이 작품을 뛰어넘는 `첫 문단`을 가진 소설은 보지 못한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짚고 서면서 나에게 방긋 웃어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간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젊은 느티나무 中-



소설의 3박자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메시지+재미있는 스토리+인상적인 혹은 개성적인 문체라고 하면, 이 소설은 우선 문체, 곧 문장이 아름답다. 문장의 선명한 빛깔로 순수함을 흔함 속에 묻히지 않게 한다. 

만약 사랑의 씁쓸한 황홀에 젖어 오래도록 그 사람이 나올 듯한 하늘 밖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이가 있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다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읽는 이 자신의 애정과 그만큼의 괴로움에 의하여 소설 속 이야기가 순수하게 마음에 젖어들어옴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문장의 마디마디마다 그 자신의 슬픔과 기쁨과 불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알아줄까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겠지? 내일이건 모레건 되도록 속히......˝
나는 또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 그럼.˝
그는 억지로처럼 조금 미소하였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산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그래,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곤란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의 결론은 울릴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사랑인걸.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모습으로 내내 울릴 것이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형체 없는 감성을 언어를 통해 재탄생한 의미로 다시 자기에게 가져오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언어의 창은 분명 그만큼의 밀도를 필요로 하는 독자들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짚고 서면서 나에게 방긋 웃어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간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말을 알아줄까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겠지? 내일이건 모레건 되도록 속히......"
나는 또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 그럼."
그는 억지로처럼 조금 미소하였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산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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