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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깔 있는 개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모든 방황을 끝낸 시점에 읽기 적당하다. 방황의 막바지에 읽어도 좋다
산도르마라이의 '존재론적' 소설들 중 가장 통쾌하고 펄떡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긴 주인공이 한 성깔 지닌 개니까]
작가의 명민한 감수성과 탁월한 묘사력은 젊은 시절 에 이르러 물만난 한무리의 고기떼를 연상케 한다
추토라는 경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으르렁거린다. 네말이 옳을 지도 모르지. 신사는 추토라의 입마개를 벗기고 사슬을 푼 다음 맨 위 여덟번째 계단에서 자유롭게 놓아준다.
기회가 주어져도 정열을 마음껏 발산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의심. 추토라는 그러한 의심을 모른다. 추토라는 탐욕스럽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간다. 굴욕스런 삶의 오욕을 단 몇 초라도 잊으려는 듯 질주한다. 그러나 모든 무절제한 도취처럼 개의 열광에도 후회가 뒤따른다. 그 다음, 신사가 추토라에게 하는 말들이 압권이다.
결국엔 뒤집지도 못할 거면서 우리는 삶 속에서 버둥댄다. 나 또한 그러했다
너처럼 열등한 존재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실을 너는 나한테 깨우쳐주었어. 어쩌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능력 이상의 인내와 관용이 필요한게 아닐까. 나는 한낱 개에 지나지 않는 너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어...너한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너 대신 다른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그 약속과는 다르게 [어쩌면, 당연히] 추토라를 떠나보내고 핀란드 스피츠 순종의 개를 키우며 신사는 그리움도 후회도 아닌 복잡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한다. 마치 지나간 사랑을, 젊음을, 열정을 반추하듯이
온순,섬세하고 우아하기까지 한 그 개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추토라와 신사는 젊음,사랑,열정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추토라를 생각하면, 그리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저려온다. 신사는 추토라에 대한 우울한 기억이 온순하고 매력적인 킹 지미의 모든 장점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은밀히 의심한다.
살아가면서 서서히 경험을 쌓고,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고, 때로는 넘어지고, 실망을 대가로 배우면서, 우리가 보통 아름답고 선하고 고결한 것만이 아니라 억눌리고 완전하지 못하고 분노에 차 이를 갈며 싸우는 것, 풍습과 화의가 아니라 오점과 항의를 뜻하는 것도 사랑하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