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회색이야
마틴 쇼이블레 지음, 이지혜 옮김 / 사계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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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를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게 했다. 나에겐 가슴에 묻은 제자가 있다. 이 책을 겪는 동안, 끝내 헤아리지 못했던 그 아이의 침묵과 그 침묵을 닮은 많은 아이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모두가 회색이야』는 외면당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작가 마틴 쇼이블레는 주인공 파울과 여러 인물의 시선을 오가는 방식으로 파울의 삶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독자는 주인공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파울은 수감된 병동에서, 가족의 염려와 걱정에서, 날카로운 시선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고 있다. 색채 없는 관계, 의미 없는 말들, 그저 존재할 뿐인 하루하루는 회색이다. 모두가 파울을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지만, 파울은 내내 있는 힘껏 버티고 있었다.

많은 학생을 만나면서 끝내 손을 뻗지 못한 아이도 많았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나는 아직도 어느 여름에 멈춘다. 파울의 침묵과 혼란,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은 그 여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한때는 나날이 나와 세상을 미워했다. 파울이 떠나고 노아에게 닥친 심정처럼 ‘있는 힘껏 고함을 치고 싶은 날’이 불쑥 찾아왔다. 아직 무심해지지 못한 나에게 이 책은 단순한 감정 소비나 동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부모의 무력감, 친구들의 상처, 교사로서의 자책감 같은 고통스러운 무게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진심 어린 시도로 인식된다. 상실의 날을 지나온 마음, 아직 그날에 멈춰있는 마음, 다시 살아갈 마음, 모든 마음을 붙잡는다. 숨거나 괴로워도 된다고, 사실은 그래만 한다고 말해주는 고요한 목소리 같다. ‘이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쓰게 하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 사이의 무게가 얼마나 다른지 묻는 이야기다.

“모두가 회색이야.” 이 말은 단지 절망의 고백이 아니다. 누군가 그 회색을 함께 바라봐 준다면, 삶을 또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고백의 언어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을 한 번 더 껴안을 것이다. 회색뿐인 마음에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한 색을 흘려줄 것이다. 침묵 속에 무너지고 있는 아이에게, 슬픔으로 잠 못 이루는 가족과 교사와 아이들에게, 그리고 이들의 곁에서 이해하고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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