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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혼 Dear 그림책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올가 토카르추크 글,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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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내 영혼이 구원받은 듯한 책. 고요하지만 너무나 깊고 따뜻한 정서를 전하는 그림과 글에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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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조경란 지음, 준코 야마쿠사 그림 / 마음산책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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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안으로 다가가기 쉽지 않은 사람이겠구나.

덤덤한 내면의 고백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녀의 첫 소설집 '식빵굽는 시간'을 읽고 나서 얼마 뒤,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사인회를 하는 그녀의 옆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단아한 그녀의 미소가 내게는, 더 이상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노라는 단단한 빙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또 수 년이 지나 이 단초롬한 산문집을 덮은 뒤, 그녀가 나와 마찬가지로 그저 나약하고 사사로운 영혼에 지나지 않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그 발견은 참으로 유쾌하고 기분좋았다.

그녀도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들의 반복이 지겨워 돌아서지만 딱 일주일만 지나면 그 모든 것들이 다 그립다'고 한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혼자놀기를 좋아하고 침대나 화장대보다도 사치스러운 자기만의 커다란 책상을 바란다. 전생에 나무가 아니었을까 돌이켜 볼 정도로 '나무'라는 존재를 사랑한다.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을 가끔씩 앓고 가족에 대한 어두운 기억 또한 지나치지 않는다. 원고를 쓰기 전 그 공포를 떨치기 위해 테트리스를 하거나 얼굴에 난 솜털을 하나씩 뽑거나 (이 부분에서 정말 황당했다. 그동안 각인되어 있던 작가 조경란의 이미지가 솜털과 함께 뽑혀 나가던 순간! ^^) 스스로 빰을 때리기도 하고 옥상 위로 올라가 달님에게 기도를 하거나 다시 방에 들어와 손뼉을 치다가 노트북 화면을 싸울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고 난 뒤에야 글을 쓰곤 한다는데. 유난히 곱고 간결한 문체를 지닌 이 작가 또한 이토록이나 처절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글쓰기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일기장과 다를 바 없는 산문을 읽어가면서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세계와 내 세계가 만나는 교집합을 그려보며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전설의 악어 제이크>라는 준코 아마쿠사의 일본어판 텍스트와 삽화를 배경으로 삼아 조경란은 우리를, 그리고 그녀를 둘러 싼 세상의 현실을 속삭이며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생명, 그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을 내린다. 지극히 조화로운 화성으로 결합되어 있으나 개별적인 소리가 살아 있는 Bach의 음악처럼, 조경란의 산문과 준코 아마쿠사의 그림은 다른 듯 닮은 듯 서로 조응한다. 

'제이크를 발견한 순간은 어쩌면 일종의 터닝포인트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제이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꿈꿀 때 내 내면의 힘이 불러내오는 상징적인 존재 같은 것?' 이라고 작가는 악어 제이크를 설명한다. 어린왕자에게 인연을 읊조리던 사막여우와 조금 닮았지만 요녀석 제이크는 훨씬 더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세상을 등지고 동물하고만 이야기하고 살았지요.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법을 점차 잊어버렸어요. 정년퇴직하는 날, 악어 네 마리의 이름을 불렀어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위리엘. 그런데 망설임없이 위리엘을 제이크라고 불렀어요. 살펴보니 악어가 세 마리 뿐이었어요. 처음부터 세 마리 밖에 없었던 거였죠. 12년이나 돌봐줬는데. 장난꾸러기 제이크!" - 68세, 전 동물원 사육사 

"일광욕이나 할까 하고 벗은 채로 베란다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았거든요. 거기에 제이크가 나와 있었어요. 병원에 실려온 다섯 살 난 아이, 이미 창자가 삐져나와 있었지만 살려고 무던히 애를 썼죠. 이미 죽은 가족들을 찾으면서. 이 일, 계속해야 하겠죠?" - 32세, 민간 원조단체 참가 의사
  

제이크의 등장은 이런 식이다. 제이크는 이렇게 익살스럽게, 혹은 덤덤히 삶의 작은 순간마다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초록빛 개구쟁이가 능청스레 바라보며 내게 한 수 가르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찾아 온 그를 알아 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삶이기를. 얌전한 줄로만 알았던 작가 조경란이 제이크처럼 다시 내게 뛰어들어 내 마음에 행복한 웅덩이를 만들고 가버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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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 Sail - painted by Ron Gonsalves

  

 


바다. 그 거대한 콜롯세움. 푸른 희망과 깊은 절망이 교차하는 곳.
 
성역을 벗어나 형제를 찾아 닻을 올리면
 
하늘과 바다가 마주해 끝을 만드는 그 지점 어딘가에
 
끝없이 메아리쳐 울릴 그리운 너의 목소리.
 
기약없는 항해일지라도
 
길없는 냉정한 바다 위를
 
이제는 나아가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First Ride- by Eugene Friesen, from the album 'New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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