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2000년이 21C네 아니네하는 해묵은 논쟁을 1998년부터 수년간 들어왔었는데, 이제 재론의 여지없는 21C가 도래했네요. 설날까지 지냈으니까 말예요. 세기말에 횡행했던 황당하고도 비윤리적인 妄言에 가까운 구호들이 씁쓸히 기억되는군요. 그래서 말인데, 인간은 예언하고 싶은, 도래(到來)하지 않은 來日에 대한 지적 욕망이 선연한 듯 해요. 예지의 에세이스트 고종석씨도 21C에 대한 전망을 부분적으로(쓰여진 양에 있어서), 총체적으로(각 분야에 걸쳐서) 이 책에서 늘어놓았더라구요. 제법 멋드러지게 표현한 구절이 있는데요.

'모색은 부분적으로 전망이다. 모색이 일반적 전망과 다른 것은 그 속에 의지나 욕망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망은 일종의 예언이다.'

찾아 나선다는 것은 희망섞인 바람이고, 여기엔 그래야 한다는 의지적 필요를 내포한다는 거겠죠. 마땅히 그래야 하기 때문에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렇기를 바라는 맘으로 말할 수도 있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처럼 현상에 대한 제반지식을 지니고, 자유자재로 유영(遊泳)하는 저자를 보니 일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의 유려한 문체나 경이로운 통찰은 분명히 스승삼고 싶은 부분이었으니까요. 예언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많이 풍기고(혹은, 부정적인 의도로 이루어지고), 디스토피아로 귀결되지요. 막연한 청사진은 경각심을 차단하기도 할테니까요.(또, 괜히 좋은 소리했다가 그대로 안되면, 그 수모를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요.^^;)

40개의 꼭지를 살펴보면, '2.개인들의 시대(붙박이에서 떠돌이로)', '11.유리벽 속의 삶(프라이버시의 종말)', '19.진보의 디딤돌, 진보의 걸림돌(민족주의의 곡예)', '37.제2의 창세기?(생명공학의 시대)' 등은 그의 성찰에 상당부분 동의를 하게 됩니다.

'18.노동의 종말(자동화의 축복 또는 저주)' 에서는 플러그가 끼워진 종족('실리콘 칼라' :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에 대비된 개념으로 제레미 리프킨이 그의 저서 <노동의 종말>1994.에서 주창한 기계 노동자를 일컬음)에 의해 인간이 생산의 주체로서 영영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리프킨의 주장을 예로 들며, 경고(警告)를 하더군요. 제2의 IMF 도래라는 우려와 불안이 교차하는 한국적 현(現)상황의, 다음타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일면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대체적으로 합리적이고, 진보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그의 권두언에서처럼요. 시종일관 의지나 욕망이 스며든 모색과, 예언섞인 전망을 하고 있지요. 대체적으로 동시대에 대한 직관과 후세대에 대한 통찰이 균형잡힌 채 스며들어 있어서 만족스럽게 책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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