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전 - 자크 아탈리의 미래 읽기
자크 아탈리 지음, 정혜원.편혜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시간이 살같이 빠르다는 말을 여실히 느끼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2001년도의 1월도 벌써 다 지나가고 있군요.

지난 연말, 종로에 위치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샀어요. 초반부 이상하게도 진도가 안나가다가, 어느 순간(근 일주일만에), 한달음에 읽히더라구요. <21세기 사전>은 저자의 28번째 작품이라고 해요. 미테랑 前프랑스 대통령의 특별보좌관도 역임했었고(당시의 경험을 비망록형식으로 출간했는데, 미테랑 대통령에게 '그럴 수 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총재도 지냈기 때문에, 정치경제 영역에 있어서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인물이죠. 처음엔 공학을 공부했고, 경제학 박사학위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자신을 공상과학소설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글이 제법 읽혀질 즈음에는 <블레이드 런너>에서 시작해서 <사이보그>,<가타카>,<코드명 J>,<매트릭스>를 거쳐 최근의 <배틀필드>까지 헐리우드 SF영화들의 기본적인 줄기를 훓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죠. 첨엔 사실 인문교양과 관계된 서적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런지(예상을 뒤엎어서) 훨씬 재밌게 읽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예측하는 미래가 개연성 없는 허구의 세계만은 아니예요. 철저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을 하고 있더라구요. 지금까지 이랬으니, 앞으로는 이럴 것이다라는 예측과 전망인 거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전이예요. 그래서, 일관성 있는 구성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400여 가지의 표제어(A~Z; 번역본은 ㄱ~ㅎ)를 넘나드는 하이퍼텍스트의 방식(인터넷처럼)을 차용하고 있지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책의 예언(?)을 재밌게 읽었는데, 수세기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대했던 사람들은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까요? 물론 예언의 내용과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말예요.

저자는 이혼의 증가와 '다중소속'을 예로 들며, '가족'의 가치둔화 내지는 해체를 전망하고 있지요. 사랑도 '게임'처럼 시뮬레이션할 거라는 예측을 하고(<데몰리션 맨>에 나왔듯이),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의 '결혼'이 성행할 거라는 전망도 합니다. '가족'에 대한 연대의식의 결여가 문상객 없는 장례식('고독')을 만들 수도 있다는 그의 생각에는 동의하게 되더라구요.

저자가 '근본주의'를 개인주의와 비교해서 관용 없는 구태의연함이라고 폄하한 이유는, 무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신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거부의사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뜰(!) 거라는 전망을 하고 있구요.(<티벳에서의 7년>, <쿤둔>의 순기능?) '바티칸'은 권력의 중심지가 될 것이고, 북미에서 교황권을 넘보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일면 그 실체를 정치적인 단체로 규정한 듯 보입니다.

기타 갖가지 예측들도 많이 있어요. 가령, UN(국제연합)은 애물단지가 되든지 민영화되어 시장원리에 순응하는 기관이 될 수도 있다거나(돈문제 때문), 전세계적으로 남녀성비가 3:2까지 불균형해지고 여성우위의 사회로 진입할 거란 부분(G8,OECD가 속해있는 북방지역), 갈수록 노동시간이 단축돼 깨어있는 시간의 1/15만을 노동할 것이란 부분은 섣부른 예측 같기도 합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유'(19C의), '평등'(20C의)에 이어 21C에는 '박애'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못 박고 있어요.(프랑스의 그 세가지색 블루,화이트,레드! 또는, 뤽베송의 <제5원소>. 그러고 보니, 자크 아탈리는 애국자로군요^^;) 표제어를 살펴보면, '거대한 희망의 매체이자 다음세기의 유토피아', '박애가 자신들의 초창기 신념이었음을 다시 기억해 내는 교회도 나타날 것이며 이들 뒤에서 이단, 정당, 싸구려 신념을 파는 사상가도 판을 칠 것이다', '박애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근본 원리가 되며 이 질서로부터 새로운 권리의 체계와 새로운 정책 관행이 세워지게 될 것이다.' 라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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