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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 2시 동시에 공복을 느낀 부부가 이었다. 이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서로의 일에 바쁜 탓에 미쳐 준비해 두지 못했던 비상식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 눅눅해진 쿠키 4조각과 맥주6캔으로 배고픔을 달랜다. '나'는 얘기 중에 결혼 전 단짝 친구와 빵가게를 습격했었노라고 털어 놓는다. 그런데 그 습격이 습격이라 부르기엔 묘한 감이 있다. 그가 빵가게를 습격하려 했을 때 클래식 매니아였던 주인이 바그너의 곡을 들어 준다면 가게의 빵을 원하는 만큼 준다는 것이었는데 서로의 조건을 만족시킨 그 사건은 습격보다는 차라리 거래가 맞는 표현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 이후의 습격에 대한 저주가 있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이들은 묘하게도 자다말고 공복에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평범치 않은 목적으로 빵가게 재습격에 나선다. 그리고 심야영업을 하는 빵가게를 발견하지 못하자 맥도널드에 들어가 햄버거 30개를 가지고 나와 10개를 먹는다.
그 저주라는 것은 가끔 일어났을 전혀 일상적이지 않을 일들이 아닐까? 그 일이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저주라 불렀던 것이다. 일상의 무료함을 깨는 공복이 찾아온 2시. 햄버거 가게를 습격한 부부. 황당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복에서 이어진 그들의 행동, 그 모두가 일상 탈출인지..? 이 소설이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일상을 깨는 부부를 다루고 있다면 그 일상을 대표하는 사람은 햄버거가게 안의 사람들일 것이다. 총을 '나'의 셔터를 내리라는 말에도 상부의 질책을 피하려고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거나 햄버거를 싸달라는 말에 그렇게 되면 나중에 장부가 복잡해지니 차라리 돈을 가져가라고 하는 점장이나, 초승달이 입꼬리에 걸린 듯 웃었다는 영업용 미소의 아르바이트생, 사건이 시작해서 종료하기까지 내도록 잠만 자던 학생들..
모두가 하나같이 쳇바퀴 굴러가듯 한 일상에 찌든 현대인의 단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들에게 이들 부부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책을 통해 읽었을 때 그들은 이 사건에 무감각했다. 아마도 뉴스를 통해 사건사고를 접했을 때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류의 사람인것도 같다. 가끔은 우리에게도 이런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