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 불꽃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푸른 불꽃]에서 화면 가득히 채워져있던 차가운 푸른빛이, 책의 표지위에 선명히 그려져 있다. 무언가를 태우고 있는 듯 활활 번져오르는 그 불꽃의 형상은,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주거나 열정의 또 다른 이름으로 비유되는 '붉은 불꽃'과는 다르다. 얼음이 갑작스레 목에 닿은 듯 차갑고 시린 느낌의 불꽃이다. 하지만 그 불꽃은 강열하게 타오르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푸른 불꽃의 이미지를, 겉으로 분출할 수 없는 내면의 분노의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17살의 평범한 고등학생 '슈이치' .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사이클 타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이 소년에겐 설령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있다. 바로 어머니와 여동생 '하루카'. 비록 어렸을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지만 더없이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는 가정 속에서 그는 소소한 일상이 선사하는 행복감에 만족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행복마저 길게 지속되지 못한다. 어머니의 예전 재혼상대였던 '소네'가 갑작스레 찾아오면서부터 모든 일상은 산산히 부숴져버리고, 자신이 지켜야하는, 지켜주고 싶은 어머니와 동생은 하루하루를 고통속에서 살게된다. 결국, 소년은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지키기위해 누군가는 죽여야한다 -라고.
그렇게 소년의 내면속에서 조금씩 타오르던 작은 불꽃은, 어느새 소년마저도 집어삼킬만큼 거대한 불꽃으로 자라나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게 된다. 그 불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괴롭히는 '소네'를 향한 소년의 분노이기도 했고, 살인이라는 죄를 범한 후 자신이 짊어져야할 죄의식과 고통의 눈물이기도 했다.
슈이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조용한 분노가 차곡차곡 마음에 쌓여간다.
그것은 지금까지 지신을 휘감았던 붉은 불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의 뇌리에서 빛나는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한 푸른 불꽃이었다.
가장 깊은 사색을 나타내는 푸른색.
그러나 그 차가운 빛과 반대로 푸른 불꽃은 붉은 불꽃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자신을 불태운다.
p158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소네의 부검결과 돌연사로 판정되어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던 자신의 완전 범죄가, 어릴적 친구였던 '다카시'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결국 슈이치는 살인을 감추기 위한 또 한번의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 소설은 왜 소년이 살인을 저지렀는가-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물음에는 '지켜야 하는 이가 있었기 때문에' 라는 대답이면 충분하다. 그것보단 작가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택한 후 소년이 감당해야하는 외로움과 고통의 감정을 통해, '누군가를 죽인다'라는 행위가 가지는 무게를 간접적으로나마 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어쩔수 없었던 그 어떤 상황과 이유가 존재할지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 라는 그 사실 하나가 가지는 고통의 무게가 어떠한 것인지 슈이치를 통해 너무나도 절실히 절절하게 표현해내었다.
그는 지금에 와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살인자의 마음을 철저하게 괴롭히는 것은 신에 대한 외경도, 또한 양심의 가책도 아니다. 더구나 세상에 대한 체면이나 소문따위는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시시껄렁한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주의 톱니바퀴처럼 마음을 옭아매는 것은 단지 사실일 뿐이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그 사실에서는 평생 도망칠 수 없다. - 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