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는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조봉암과 1950년대>, <사진과그림으로보는 한국현대사>, <한국현대사 60년>, <대한민국선거이야기>, <이승만과 제1공화국> 등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뛰어난 역작들을 낸 서중석 교수의 책이다. 앞의 두 책은 심층적인 책들이고 뒤의 네 책은 개설서 수준의 책들인데 아쉽게도 나는 뒤의 네 권만 읽어 보았고 앞의 두 권은 읽어보지 못했다. 추후 읽어볼 생각이다.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는 이보다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할 정도로 1945~48년 기간에 있었던 정치세력들의 운동에 대하여 상세하고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남한에서의 운동들을 다루고 있고 북한 쪽은 다루지 않았다. 해방3년사,해방공간,해방정국,미군정기 등으로 불리는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할 책이 아닌가 한다. 미군정 문서 자료, 그 당시의 모든 신문들 등 워낙에 광범위한 자료를 섭렵했고 모든 인물,사건을 빠짐없이 다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입문서보다는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는 사람이 읽기에 적당한 책이 아닐까 한다. 

저자는 해방정국에서 좌익과 우익들이 왜 그런 식으로 움직였는지 그러한 노선,행태의 기원을 일제시대 그들의 활동에서 찾는다. 먼저 좌익쪽을 보자. 1928년에 코민테른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12월 테제라는 지령을 내렸다. 그런데 공산주의자들의 의식수준은 해방될 때까지도 성숙해지지 못하고 그 시점에서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12월테제란 1928년 코민테른 6차대회에서 비롯된 것인데 ‘계급 대 계급’ 노선을 내용으로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브루주아지는 물론이고 민족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들과도 연대하지 말고 다 타도하라는 소리이고 좌편향된 노선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좌우합작체인 신간회를 깨고 나왔다. 이러한 좌편향 노선은 코민테른이 1935년에 열린 7차대회에서 인민전선 노선을 지령하면서 다시 우익들과도 연대하라는 쪽으로 바뀌었다. 중국,베트남 같은데의 공산주의자들은 이 노선을 수용할 수 있었고 유연하게 변모하였다. 비극적이게도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일제 식민지 체제는 어떤 곳보다 통제가 심한 파시즘 군사독재 치하였고 탄압이 하도 극심해서 지하활동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민전선 노선을 수용하지도 못했고 1928년의 12월 테제 수준에서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것이 재건된 조선공산당의 8월테제로 이어진 것이고 미군정기 내내 타 정치세력에 대해 경직된 노선을 보였다는 것이다. 

중경임시정부,한국독립당(한독당)를 비롯한 우익들이 임정법통 고수를 완강하게 고집한 것도 중국 관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에서부터 기원한다. 김구 중심의 임정 세력은 1930년대에 좌우합작 시도가 여러 번 있었을 때에도 혼자서만 참여를 거부하고 비협조적이었고 줄곧 임정 중심으로의 통합만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국내에 들어와서도 이어진 것이다. 나는 이승만·한민당과 공산당 쪽에 대해서는 사전지식이 있어서 그들이 민족통일전선 운동에 비협조적일 것은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많이 실망을 하였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애국자들이고 존경받아 마땅한건 분명하지만 정권은 꼭 자기들이 쥐어야 한다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자기들만 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 중에는 전근대적인 신분제 의식이 남아있던 사람도 많았고 대체적으로 완고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여러 독립운동 세력 중에서 자기들이 가장 윗 세대이니 새파랗게 젊은 것들에게 정권을 내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고나서 좌익과 우익 모두의 배타적인 처신에 대해 많이 실망을 하였고(이승만,한민당에게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놈들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역시 이쯤 되어서 높게 평가하게 되는 것이 좌우합작파가 아닌가 한다. 책을 쓴 서중석 교수도 좌익,우익보다는 중간파에 대해서 역시 많이 공감을 하는 것 같았다. 중간파라면 여운형,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파를 말한다. 분단을 막고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는데 노력한 사람들은 이 세력이었다. 이들은 해방정국 내내 일관되게 민족통일전선을 걸어왔다. 특히 여운형은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물은 정치인이었는데 일제시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도 국민당과 공산당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정도로 유연하였고 사상적으로도 기독교와 공산주의 모두에 심취해본 사람으로 기독교인들은 그를 기독교인으로 보았고 좌익들은 공산주의자로 보았다고 한다. 물론 이 때문에 반대파들은 좌우 양쪽 다 그를 엄청나게 비판하였지만 분명 그는 미군정,소군정 양쪽이 다 인정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좌익,우익이 양쪽에서 다 광분해대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1947년 들어 본격화 되면서 냉전이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에 좌우합작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합작이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중간파가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히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고 그들이 중간에서 완충역할을 했다면 이후 전개된 실제 역사와는 분명히 달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여운형 그가 살해 당하면서 사실상 종식되고 말았다. 민족사의 비극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새로운 면모를 많이 알게 된 것은 김구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승만은 자기가 대통령 되려고 정략적으로 반탁운동을 하였고 김구는 순수한 애국심에서 정의로운 반탁운동을 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꼭 그런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과 김구는 같은 편이었고 동일한 노선을 걸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둘은 오십보 백보가 아닌가 싶었다. 이승만 뿐만이 아니라 김구 또한 친일파 청산,토지개혁이라는 필수적인 민족적 과제에 대해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요새 우익에서는 김구가 10만원권 지폐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한다. 남한정부 수립에 반대했고 심지어는 빨갱이였다고 그 당시와 동일한 주장들을 하면서 말이다. 참 의아한게 내 생각에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이승만과 함께 누구보다 공헌한 사람이 그인데 오히려 우익들이 이승만과 동격으로 국부로 추대해야 되는 것이 맞는게 아닌가 싶었다. 김구가 김규식과 함께 남북협상 하러 북한으로 올라간게 48년 4월인데 그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확실해져 있는 47년 12월까지도 이승만과 같은 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가 중간파로 옮겨온 것은 한민당 당수 장덕수 살해 사건을 조종한 것으로 지목받으면서 미군정에까지 끌려가 모욕적으로 취조까지 받았는데 여기서 이승만이 거의 한민당 편을 들으니 둘의 사이가 악화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김구를 민족통일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김구보다는 김규식을 떠받드는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김구는 다 알아도 김규식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그런 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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