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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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의 부제는 '생존과 저항에 관한 긴급 보고서'이다. 출판사의 한 줄 정리를 따르면 이런 책. 오늘날 세계를 점령한 탐욕과 독재에 관하여, 이로 인한 고통에 관하여 써내려 간 열여섯 편의 글을 묶은 에세이집. 그중 특히 장벽 앞에서의 인내에 관한 열 가지 보고서가 좋았었는데, 오랜만에 그것을 다시 읽었다.


안드레이 플라타노프는 러시아 내전 당시 발생했던 빈곤과, 그후 1930년대 초에 있었던 소비에트 농업 부문의 강제 집단화에 의한 빈곤에 대해 썼다. 이 시기 러시아에 있었던 빈곤의 양상은, 희망이 완전히 파괴된 비참함 그 자체라는 점에서 지난 시기의 빈곤과 구별된다. 지쳐서 스러졌고,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걸었다. 배반당한 약속과 박살난 말들의, 지천으로 널린 파편 사이를 헤쳐 나아갔다. 플라타노프는 '두셰브니 베드냑dushevny bednyak'이라는 말을 자주 썼는데, 직역하면 '가난한 영혼'이란 뜻이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그들 속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고, 영혼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서의 영혼이란, 이를테면 무언가를 느끼고 무언가에 고통받는 능력을 이른다. 그의 글은 그런 비통함을 더 심화시키지 않았고 무언가 구원을 이루어냈다. "우리의 이 추악한 상황으로부터 세계의 심장이 자라날 것"이라고 그는 1920년대초에 쓰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는 또 다른 형태의 현대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통계숫자를 인용할 필요가 없다. 이미 많이 알려졌고, 그 숫자를 되풀이하는 것은 통계학적 장벽을 하나 더 만들어낼 뿐이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개개의 고유문화들은 삶의 괴로움에 대응하는 그들 자신의 치유법-육체적 치유법과 정신적 치유법을 통틀어-을 포함하여, 체계적이고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공격당하고 있다. 새로운 통신기술과 수단, 자유시장경제, 과잉 생산, 의회민주주의는 적어도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한, 그 말들에 담긴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단 하나 약속을 이행한 것이 있다면 싼값의 상품을 생산한 것이지만, 이런 상품 역시 가난한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고는 구매할 수가 없다. 플라타노프는 내가 만난 어떤 작가보다 현대의 이 빈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영혼이란 무언가를 느끼고 무언가에 고통받는 능력, 이라는 문장에서 한참 머물러 있었다. 지금 우리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바로 저 능력으로서의 영혼인 게 아닐까. 능력 혹은 자격으로서의, 그런 영혼. 그렇지만 플라타노프와 그를 인용/경유해 존 버거는 어쨌든 이 추악한 상황에서 세계의 심장이 자라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세기의 현자들은 구원을 믿었다. 세기가 바뀌어도 믿음은 여전해야 할까. 입만 혁명가들이 수천 수만인 세상에도 그런 구원이 찾아올까. 구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진 않았지만, 비통이 더해졌다는 걸 안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7년 전에 비해 나는 그저 더 비통해할 뿐이다. 하아, 옛 책을 다시 읽으며 슬픔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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