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불친절한 사랑 덕분에...
파라다이스 키스 Paradise Kiss 1
야자와 아이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한번쯤은 나한테 친절하지 않은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도 나를 사랑하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런 남자 때문에 내 가슴은 항상 핑킹 가위로 오려놓은 것 처럼 시리고 아팠다. 그런 남자를 왜 사랑하는지 모르면서 그 남자가 부르면 포르르 달려가고 그 남자가 웃으면 더 오버해서 웃고 그러다 결국 싸움이 되고, 토라지고, 전화벨 소리에 집중하고... 한번쯤은 나한테 친절하지 않은 남자를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죠지가 유카리에게 소홀하게 대할 때 마다 나는 다시 또 핑킹 가위 세례를 받았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니.

아마 한 아홉살 쯤 됐으려나. (그보다 더 어렸을지도) 텔레비전에서 남자와 여자가 키스하는 걸 처음 봤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채 고개가 옆으로 기울 때 나는 조만간 저 여자가 죽을 거란 생각을 했다. 흡혈귀가 피를 빨아먹는 것처럼 여자는 남자한테 꼼짝 못하게 잡혀 있었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여자가 곧 사라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살짝 날리고 남자는 여자를 놓아준다. 마주 보는 여자와 남자의 얼굴엔 미소가 한 가득.  입술을 되찾은 (?) 여자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의 의미를 알 리 없었다. 사이좋게 지내던 어느날, 남자가 여자를 울렸고 여자는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게 되면 그보다 더 아플거라는 걸 알리 없는 나이였다.

열 여덟살에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각자 공통된 꿈을 갖고 모여든 파라키스의 멤버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연출해 내는 옷을 만들고 행복해 한다. 각자 원하는 걸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불행할 시간이 없다. 그들에게 모델로 포섭(?) 된 유카리. 일류를 외치는 엄마 덕분에 늘 공부에 압박을 받았다. 엄마가 유카리의 인생을 결정해주려고 하고 유카리는 늘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친다. 유카리는 그런 엄마와 점점 멀어진다. 유카리를 포섭한 죠지와 연인이 되면서 유카리의 인생은 한가닥 실마리를 잡는다. 죠지는 유카리가 주체적인 여자가 되기를 원하고, 유카리는 죠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맘을 먹게 된 것. 사랑은 우리를 키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목표를 다시 재건하고 수정하게 되는 일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죠지의 사랑은 유카리를 성장시켰다. 유카리가 자신의 인생을 잘 써내려가도록 만드는 남자 죠지의 힘은 얼마나 매력적이고 위대한가. 그런 와중에도 유카리와 죠지는 아웅다웅 다투고, 유카리는 울고, 죠지는 외면하고...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

지난날 내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던 사랑, 죠지 처럼 멋있진 않았지만 죠지처럼 충분히 불친절했던 그 남자는 성격을 좀 고쳤으려나. ㅎㅎ 그렇다면 유카리는 죠지에게 어떤 여자일까? 죠지는 유카리를 '나의 뮤즈' 로 부른다. 뮤즈와 사랑에 빠진 그 남자는 행복하다. 둘의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만화를 보면 알겠고, 주말이 되면 식탁의 반찬을 걱정하는 게 진력이 난 그네들이 이 만화를 봤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꿈을 찾으라거나 다시 인생을 시작하라거나 하는 거창한 제안만이 살 길은 아닌거다. 내가 잃어버렸던 어떤 뜨뜻한 감정을 찾아 숨통을 조금 헐겁게 풀어두는 회복제 노릇에는 "파라다이스 키스" 가 그만이다. 정말 파라다이스 키스를 한다면 더 좋을테고! 아주 오래전 퇴화되버렸는데도 모르고 살았다. 하마터면 화석이 될 뻔했던 가슴이란 걸 알게 되다니, 나도 나한테 좀 놀랐다니깐...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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