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75
송재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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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이가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 그가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늙은 스승이 말했다 기교보다 마음을 익히고 사람의 눈보다 마음을 넘으라 그는 사람의 마음을 넘는 마술사가 되었다 스승이 죽으면서 당부했다 결국 상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꽃을 피우고 새를 날리는 마술사는 마음의 빈터에서 재주를 부렸다 왕이 그의 이름을 듣고 재주를 보았다 왕이 마술사에게 마술의 비결을 물었다 마술사는 거부했다 마술이 모습을 드러내면 마술이 아닙니다 마술사를 斬하고 왕은 마침내 마술의 느․린․동․작을 보았다 그 왕국의 마술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마술의 꿈」 전문


처음 이 시를 보고 찡긋했다. 삶이라는 게 몽땅 마술이 아니겠냐고, 예수님을 비롯, 세상에 내로라하는 성인들은 대개 ‘보이는 것을 믿지 말라’고 하였다. 결과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에도 문제가 있지만, 결국 그들은 보이는 것의 덧없음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진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나, 그는 사람의 마음을 넘어 사는 것에 성공한다.

시인은 이 세상이 마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승은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는 방법은 왕이 요구한 대로 이 마술의 비밀을 폭로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할까? 마술사는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 마술이 형상을 드러내면 마술이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절묘한 사실인가? 아름답게 살려고 용을 써대는 사람들도 제 형상을 드러내면 약하고 힘든 인생이기 그지없다. 하나 그런 모습들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이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삶이 밝혀진다는 것은 허무함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죽든 저렇게 죽든 마술사의 생명은 유지될 수 없었다. 자기 고집을 유지했던 성인들이 죽었던 이유(특히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아닐까. 삶이라는 게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거늘…. 그래서 그 왕국의 마술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가지는데 실패한 그는 斬首 당하고 만다. 호기심과 환각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 당면해 있는 지식인의 서글픈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왜 이 시집의 제목은 얼음시집일까? 나는 얼음보다는 얼음의 뿌리인 물이 들어가 있는 시를 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청산 어둠이나

꽃피는 소리, 만월도 비추인다

슬픔으로 된, 가장 슬픈 것이 와서

달빛 깔고

흐르는 물

의 안팎에는 폭포 쏟아지고

불붙는 영산홍 따위도 피었으니

金銀의 소리 내는 별보다 더 빛나는,

病의 한쪽을 감싸고 깊어지는

물의 우레

붉은 영산홍은 저 아래 있어

病 안으로, 물의 울음 속으로 내려가

깜깜한 영산홍 뿌리 껴안으며,


유월엔 앞을 바라볼 수 있으리

                        ―「물」 전문


이 시에서 드러나는 물은 슬픔이다. 한데 이 슬픔은 따뜻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 슬픔이 왜 발생했는가? 그 물의 흐름을 살펴봐야 하겠다.


세상 가운데로 흐른다

꽃은 비름풀 따위에도 촘촘히 피어

물소리 내고

마음은 들끓고 있다

멀고 가까운 산은

베옷자락처럼 깊은 병처럼 눈물처럼 연기처럼

맑은 날 치솟아

어디서나 강은 늘 시작하고,

                                ―「강」중에서


물의 흐름은, 열정이다. 그 열정이 왜 이렇게 식어 얼음이 되었는가? 어떤 식으로 가공되는가?


「얼음시」는 이런 과정으로 되어 있다. 한때는 열정이었던 물들이 슬픔 가운데 굳어 나아갈 길만을 기다리는 도정인 것이다.


얼음 깎아 빚은

볼록 렌즈로

불지르면

저 가파른 겨울산들,

타올라 

붉은 산 되리

                        ―「불」


여기서, 얼음시의 부제가 왜 '불' 이라는 점이 열정이었던 물들을 식게 만들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렌즈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당연히 확산이다. ‘불지르면’이란 시어에서 알게 되듯이 시인은 기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이 시를 읽으면 확실해진다.


어느 날 그의 흙바람내 나는 서랍을 뒤져보았다

스스로 고독한 차르라 칭한 아우의 비망록,

악필이었던 글씨는 여전했고

[……]

나는 혼자일 때는 머나먼 섬까지의 뱃시간을 베끼고

문득문득 아우가 보낸 편지가 왔다

[……]

밤에 스피노자를 읽으면

집 근처 신기료 사내는 마치

우리들 보행의 자유를 위해 신발을 고치는

도시의 스피노자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편지」 중에서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렌즈를 갈았다고 한다. 그것이 '보행의 자유를 위해' 신발을 고치는 스피노자처럼 열정속에서 타오르는 슬픔, 역설적으로 슬픔 속에서 무한히 타오르는 열정을 그린 것이 이 시집이다. 하지만 결론은 ‘얼음’이다. 현실은 얼음에 가깝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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