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의 역사
래리 스톤 지음, 홍병룡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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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복음주의 클럽에서는 배울만한 논쟁이 많이 일어난다. 

나름의 네임드랄까? 그들의 내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많이 배우는 바가 많다. 

최근 논쟁에 여러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극우 개신교도 등이 들어와 핫한 열기를 내뿜었다.

 

이 책을 읽게된 계기는 저중 여호와의 증인 때문이다. 

그와 여러 신학생들간의 논쟁을 보는데 

여호와의 증인이 하는 말을 못알아 듣겠더라. 

물론 그의 궤변도 한몫했지만 

그보단 성경의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가 더 컷다. 

 

다행히 책들을 둘러보니 최근에 산 래리 스톤의 '성경 번역의 역사'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책을 집어 들고 며칠 전  이 책을 다 읽었다.

 

Ⅰ. 느낀점

 

 이 책을 통해 사본에 대해 그나마 자세히 알게 되었다. 

특히나 사해 사본(p. 42-7,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이 발견되지 전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인 '알레포 코덱스'와의 연대 차이는 거의 1000년이라는 사실이 충격이긴 했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텍스트는 거의 같다는게 더 놀라운 사실이다. 

 

그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오래된 사본들에 대해 한 번 기록해 보겠다. 

 

 코덱스 바티카누스

: 발굴된 성경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의 완전한 사본은 4세기 전반에 사용되었던 코덱스 바티카누스이다. 본래 70인역 전체(단, 외경의 한 부분은 빠져 있다)와 대부분의 신약성경을 담고 있는 이 코덱스는 1475년에 바티칸 도서관의 첫 카탈로그에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코덱스 바티카누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교황 니콜라스 5세가 1448년에 그 도서관을 건립했으며, 코덱스 바티카누스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무슬림이 1453년에 그 도시를 점령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피난민이 그 사본을 로마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 이 코덱스는 본문 비평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두 사본 중 하나이다. 

 

코덱스 시나이티쿠스

: 1844년 이집트의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폰 티센도르프 백작이 발견한 코덱스 시나이티쿠스는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신약 성경 사본이다. 그런데 수도사들이 1800년대에 구약의 일부를 불을 지피는데 사용한 바람에 70인역 구약 가운데는 일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코덱스는 AD 350년경에 서너 명의 서기관이 만든 것이고, 4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는 동안 일련의 교정자들이 거기에 많은 조석을 붙여놓았다. 본래는 73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347장은 런던의 영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

: AD 425년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책은 모두 네 권을 묶어놓은 것이며, 본문을 구분하기 위해 장식을 사용한 최초의 사본 중 하나이다. 이 책은 5세기 초에 필사된 것이지만 그 내력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1621년에 이르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였던 키릴 루카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길 때 그 책을 갖고 갔다. 1627년에 그것은 잉글랜드의 왕 찰스 1세의 손에 넘겨졌고 현재는 영국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코덱스 알렉산드리누스는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장엄한 도서관에 비치될 수도 있었는데, 642년에 발생한 화재로 그 도서관과 소장품이 모두 파괴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스럽다. 

 

-(p. 60-1)

이 외에도 인디아나 폰 티셴도르프에 관한 이야기나

(p.64, 진짜 성 캐서린 수도원을 한 번 뒤져 봤으면ㅠㅠ, 또 성경 사본을 불쏘시개로 사용하다니!!! 으악!!!)

존 위클리프, 틴데일, 부록 한글 성경 번역이야기까지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특히 한글 성경 번역에 대해서 한 말하자면 

정말이지 개역개정의 어투 좀 고쳐주시라! 

그것만 고쳐도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될 텐데.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고 느꼈을 때가

바로 '현대인의 성경'을 읽었을 때다. 

바라건데 새번역, 우리말 성경, 쉬운 성경을 배척만 하지말라. 

강대상에서도 여러 번역 성경을 읽어도 아무 말씀 안하셨으면 좋겠다. 

(물론 새벽 설교를 했을 때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Ⅱ. 메모와 코멘트

 

앞으로도 성경 사본은 계속 발견될 터이고, 따라서 학자들은 성경 텍스트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프레데릭 케니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발견과 연구는 결국 성경의 진정성을 입증해주었고, 우리가 현재 온전한 상태의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있다는 확실을 더해준다.(p. 63)

- 이렇게 사본이 발견될수록 전통은 강화될까? 약화될까?

 

 

 캐리의 사업은 1790년에 시작된 제2차 대각성 운동의 덕을 보았는데, 이 운동은 50년간 계속되면서 감옥 개혁, 금주, 여성 참정권, 노예폐지 등을 위한 운동을 이끌었다. 뉴욕 주의 중부와 서부 지역은 19세기 전반에 온갖 부흥운동이 휩쓰는 바람에 제7일 안식교와 몰몬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운동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종교개혁 당시에 가톨릭이 내세웠던 주장, 즉 개개인의 판단에만 맡겨주면 성경이 수많은 관점에 시달리게 되고 기독교가 수많은 분파로 나눠질 수 있다는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였다.(p. 190)

- 의미 있는 지적이다. 성경은 아무나 해석할 수 없다. 해석할 때에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얼척 없이 영적으로 감동을 받아서 성경을 풀어 말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특정한 상황에서 해석이 아닌 말씀이 떠올라 성경을 이야기 해주는 것은 다른 경우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개개인의 해석과 권위 있는 자의 해석 사이에 균형점을 적절히 잡아야 겠다. 그래서 모두 성경 공부!!

 

 

사도행전 10장 44-45절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이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문자적인 번역판인 NASB는 "베드로와 함께 온 모든 할례 받은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번역했다. 할례는 선한 유대인 남성의 신체적인 징표였으므로 '할례 받은 신자들'이란 곧 '유대인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누가는 '할례 받은 신자들'이란 어구를 사용했는데, 미국인 독자는 그런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NLT는 사도행전 10장 45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베드로와 함께 온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메시지>는 한층 더 의역하여 이런 식으로 '이방인'을 설명해주고 있다. "베드로와 함께 온 믿는 유대인들은 믿기지 않았다. 유대인이 아닌 '외인'에게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p. 198)

-충실성과 가독성의 예이다. 이 예를 가지고 앞으로 쫌 써먹어 봐야겠다. 

 

Ⅲ. 그외 메모 

 

위클리프는 교회가 권력과 풍요로움에 의해 타락하게 된 경위를 생각할수록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팸플릿과 책자를 쓰기 시작했다. 교회는 불순한 사제들이 자행하는 청탁, 각출, 면죄부의 남용, 기부금의 낭비 등으로 부유해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1세기의 교회처럼 가난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p.109)

 

그는(위클리프)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했는데, 이는 훗날 종교개혁의 핵심 원칙이 되었다. 그래서 그를 '종교개혁의 샛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p.109)

 

대부분의 학자는 웨스트코드와 호트만큼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매달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티카누스와 시나이티쿠스의 우월성을 신뢰하고 '절충하는' 방법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절충하는 방법이란 첫째, 다양한 차이점의 기원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본과 둘째, 저자가 직접 집필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본을 취사선택하여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인 성서공회연합회 판과 네슬-알란트 판은 모두 절충주의 방법을 따른 것이다.(p.141)

 

성경 번역가는 원문에의 충실성과 가독성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문자적인 번역이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는 단어들만 번역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 의미를 파악하게 내버려둔다. 의역이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는 독자를 위해 본래의 단어를 해석해준다. 그런데 그 해석이 원문의 뜻이나 뉘앙스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 때에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p. 198)

 

번역판이 역동적 등가의 원칙을 더 강하게 따를수록(즉, 의역을 더 많이 할수록) 번역가의 관점이 더 많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살아 있는 성경>과 <메시지>같이 개인이 의역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고, NASB와 NKJV와 같이 위원회가 문자적으로 번역한 경우는 덜 그러하다.(p.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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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 정의를 위한 처절한 2인의 전쟁 국민 90%가 모르는 이야기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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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두 영웅 김대중과 김영삼에 대한 글이다. 

김대중과 김영삼을 필두로 현대사를 정리한게 없나?

싶었는데 마침 적당한 책이 반 값에 나와서 구매를 했다. 

 

팟캐스트 이이제이의 이동형씨가 썼다길래 보수 쪽 작가가 쓴 글보단 괜찮겠다는

나의 나쁜 선입견(?) 작동을 해서 책을 사기도 했다.ㅎㅎ 

 

일단 가독성이 높다. 물론 인터넷 글씨(?)들이(예: 'ㅋㅋㅋ'나 이런 것들) 자주 나와서

지면으로는 어색해선 그런지 처음에는 신선했는데 계속되니 불편하더라. 

그런거 말고는 대체로 읽는데 재미졌다. 

나는 역시 우리말로 써내려간 글들에 제 맛을 느낀다. 

 

그런데 왜 평점을 저래 줬느냐? 

음 그건 바로 너무 파토스 충만해서ㅎㅎ 

그런 면에선 역시 나보다 한 세대 위인 한윤형의 글들이 더 좋다. 

한윤형은 여러 상황을 제시한 다음에 분석을 해서 그런지 

나랑 성향이 맞달까? 

 

이 책에서는 섬세함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물론;; '섬세함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려면 

내가 논증을 해야 하기에 느낌적 느낌이라는 허접함으로...ㅎㅎ 

 

특히나 그랬던 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저자의 편중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을 더 존경하게 되었지만 

김영삼의 3당 합당은 그리 까대면서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 가는 느낌?ㅎㅎ 

 

이래서 난 양쪽의 이야기를 듣는게 좋다니깐! 

그것이 합의가 안되더라도 어느 정도 윤곽이 보이니깐. 

혹시 놓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무튼 글쓰기에서 파토스를 좀 줄였으면 더 괜찮을텐데. 

근데 이건 양날이 칼날 같다. 

나 같이 그 시대를 안겪은 애들은 정서상 이해가 안되서

반대쪽 의견을 가져와서 그걸 뭉게버리면 

아! 이 놈 진짜 개XX구나 하는걸 느끼겠는데 

 

이거 이러저러한 정황이 있었어! 이건 진짜 나쁜 일이야! 

개XX!!!

물론 그 시대를 사셨던 분들에겐 정서상 확 와닿을 수 있을 일이지만...ㅎㅎ 

 

음, 단순히 각주가 안달려서 그런건가??ㅎㅎ 

 

과잉 파토스라고 느껴졌던 한 대목을 옮겨본다. 

제정구가 신한국당을 선택한 일을 두고 저자는 말한다. 

 

 김대중이 연금당하고, 해외로 추방당하고, 감옥 가고, 납치당하고, 사형 선고 받고 할 때 그 잘난 당신들은 어디에서 뭐했나?(p.531)

제정구가 머했냐고? 한없이 가난한 사람들이랑 같이 있었다 이 개XX야!

라고 하믄 저자의 화법이겠지? 읽다보면 이런 화법이 나온다.ㅎㅎ 

 

방금 이준석과 이동형이 같이 나오는 라디오 프로를 들었다. 

역시나 약간 오해한다.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준석.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고 반문한다. 

이래서 나는 한윤형이 좋다. 성향차이인가?ㅎㅎ 

 

무튼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ㅠㅠ 

이런 분이 대통령이었다니. 

독일의 라우 대통령 같은 이가 우리나라에 언제쯤 등장하냐고 한탄했지만

우리에겐 김대중이 있지 않은가? 하하하 

 

김대중 대통령의 감옥에서 김수환 추기경에게 한 말이란다. 

 

 하느님은 교회가 진실로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그들이 교회에 오는 것조차 귀찮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난한 밑바닥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합니가.....(p.122-3)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이는 두 문장을 끝으로 글을 맺겠다. 

 

김영삼 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

김대중 씨는 아주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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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
사사키 아타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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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느낀점

 일본에서 핫한 인문학자 사사키 아타루!(라고 사람들이 말하길래 나도...잘아는 사람 아님...요)

여러 지면에 이 책에 대한 리뷰가 많길래 눈여겨 보다가

50%할인을 하길래 바로 샀다. 

 

저자는 읽기를 강조한다. 혁명의 시작은 폭력이 아니라 문학이라 강조한다. 

그에대해 루터, 무함마드, 중세해석자 혁명을 열거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문학이 끝났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철퇴를 가한다! 

아마 지금 일본의 풍토가 그러한가 보다. 

 

이 책은 일기 형식의 글이다. 

"아아, 이번에도 또 길어지고 말았네요. 여름이 되면 힘이 난다고 해도,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긴 것 같네요. 이 부분은 저로서도 매우 자세히 설명하기에 꽤 힘든 이야기였으니 관대하게 봐주기 바랍니다. 아직도 여전히 이야기가 부족합니다만, 이 정도로 해두기로 하겠습니다. 다음번이 벌써 마지막 밤이니 좀 듣기 쉽다고 할까, 역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p.247)

그래서 내 전공과도 맞물려있어 딴지라도 걸라하면 

굳이 이런 글에 너무 민감한거 아닌가. 라고 생각되더라.  

마음이 사그라들고 좀더 가깝게 다가온다. 좋은 접근 방법인거 같다. 

 

 

이 매력적인 문체에 러시아 문학이 황금기라 여겨졌을때, 그러니까 도스토옙스키 등이 활동했을 그즈음!

몇명에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었는가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단 10퍼센트 이하였다고. 

그런지 지금 21세기 일본에 현실에서 문학이 죽었다고 단언하는 이들에 대해 

저자는 몇 번이고 계속적으로 철퇴를 가한다. 

아! 야전과 영원도 읽고 싶어라. 

번역되기가 기다려지는 책이다. 

 

(그런데 왜 기도하는 그 손을 잘라야 할까? ㅠㅠ. 자르면 책 넘기기가 불편한데...허허허ㅋㅋㅋ)

 

Ⅱ. 메모와 코멘트

 

 "왕왕 대량으로 책을 읽고 그 독서량을 자라항는 사람은, 똑같은 것이 쓰여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p.44)

 

- 글쎄. 나는 같은 분야의 여러 권을 읽는게 좋더라. 그래야 이 단어에 그 개념에 익숙해져서 그 글이 보이기 시작하니깐.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니깐 풍성해(물론 헷갈릴 수도 있지만)진다. 그런데 자랑은 하지 말아야지ㅎㅎ

 

"그러나 식자율이 5퍼센트였으므로 많은 이가 읽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루터는 설교의 달인이었고, 그 설교도 민중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루터에 의해 설교는 가장 중요한 의식, 즉 성사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는 역사가도 있을 정도로 루터파 수도사들은 열심히 민중 안으로 들어가 설교를 했습니다."(p.93)

 

-설교가 중요했던 이유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않았겠다. 설교가 중요해진 영향으로 계몽주의를 말하기도 한데 어쨋던 이러한 이유를 절대 무시할 수 없겠다. 

 

"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죽임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광포한 아버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신의 아들도 아닙니다. 그런 법의 예외고 규칙을 면제받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그는 스스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를 죽이는 것에 의해 법이 출현한다는 이치는 무함마드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p.160)

 

-기독교는 법을 확립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였다. 이러한 문맥에서 르네 지라르를 한번 소환하고 싶은데 아는게 없네. 빨리 정일권 목사님 책을 사서 읽어야 겠다.

 

"어쨋든 사람은 자신이 새롭다고 믿고 싶어하는 존재고,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입니다.(중략). 다만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근대라고 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은지 또다시, 젊은 우리의 시대는 포스트모던이다, 새롭다,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정말이지 창피해 죽겠습니다."(p.192)

 

-헉! 이 과잉성! 신앙화된 종교다! 그러니깐 우리는 예수의 복음을 믿어야 하는데 이념이랄까? 다른 것에서 넘치는 파토스를 느끼니 상당히 문제가 된다. 직관과 구조주의랄까. 이건 분명 옳지않은 인식인데 직관이라고 오해하기 쉽고 이건 분명 보편적인 견해인데 구조적으로 생성된 생각이고ㅎㅎ 이런 부분을 잘 매듭지은 글 없을라나?

 

"도스토옙스키 등은 10퍼센트 이하에 승부를 걸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소설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혀 자명한 게 아닙니다.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리스인들이 99.9퍼센트 소멸한 가운데 0.1퍼센트에 승부를 걸어 승리한 것처럼 러시아인들도 이겼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0.1퍼센트가 살아남는다면 이기는 싸움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0.1퍼센트라도 놓치면 지는 겁니다. 즉 우리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 이 자신감을 보라! 

 

"하지만 가령 우리들 호모사피엔스가 400만 년 산다고 하면, 우리가 탄생한 지 20만 년이 되었으니 앞으로 380만 년 정도는 남 아 있습니다. 400만 년에 20만 년이니까 20분의 1이네요, 여든 살 노인이라고 보면 네 살에 불과합니다. 네 살치고는 상당히 잘하고 있습니다"(p.291)

 

-앞에서 계속 역사와 시간을 의인화 했는데 너무 계속하니깐 별로다. 한 번은 괜찮은 거 같은데. 

 

 

 

Ⅲ. 메모 

 

 정보를 모은다는 것은 명령을 모으는 일입니다. 언제나 긴장한 채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누군가의 부하에게, 또는 미디어의 익명성 아래에 감추어진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의 부하로서 희희낙락하며 영락해가는 것입니다. 멋지네요.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틀리지 않다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p.23)

 

현재 대부분의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적인 지식을, 그것도 위에서 강림한 것 같은 그런 지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 무엇에 대해서도 재치 있는 코멘트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초조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립니다.(p.24)

 

꼴사납게도 정보에 토실토실 살이 찌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비평가가 될 것인가, 초라하게 자기 진영에 틀어박혀 비쩍 말라가는 전문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각 자리에 어울리게 그 두개의 가면을 재빨리 교체하며 살아갈 것인가.(p.25)

 

읽어도 전혀 모르겠다, 머리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지루해서 왠지 싫은 기분이 든다고 하는 것, 다들 뭔가 자신의 능력이 뒤떨어져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화를 내거나 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것입니다. "번역이 나빠"라고 한다거나 "좀 더 쉽게 쓰란 말이야"라며 다른 사람 탓을 하거나 "좀 더 공부해야겠는걸", "좀 더 쉬운 책은 없을까"라든가, 초급이 있어야 중급이 있고 중급이 있어야 상급이 있다는 듯한 지의 서열 문제로 생각합니다.(p.41-2) 

 

한마디로 하지요. 대혁명이란 성서를 읽는 운동입니다. 루터는 무엇을 했을까요? 성서를 읽었습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입니다.(p.75)

 

예컨대 1506년 수트라스부르크 주교가 된 빌헬름 폰 혼슈타인은 28년의 재임 기간 중 놀랍게도 고해나 설교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15세기 후반 마인츠 대주교였던 디터 폰 이젠부르크가 미사를 집전한 것은 평생 한 번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돈을 위해 주교가 된 남자가 자기 교구의 부정이나 범죄를 밝혀 낼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은 처음부터 위로부터의 강합적 명령으로 인한 부수입에, 그 안일함에 푹 빠져있었습니다.(p.77)

 

책일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p.85)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입니다. 혁명은 문학으로부터만 일어나고, 문학을 잃어버린 순간 혁명은 죽습니다.(p.114)

 

다시 말해 어떤 여자와 어떤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일단 태어난 이상 항상 공적이라고 선언하는 역할입니다. 이 아이는 이미 법적인격을 부여받은 것이다, 라고 말이지요. 이 아이의 존재는 이미 법에 의해 보증되어 있으며, 아무리 그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도 아버지라도 결코 '처분'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아이의 존재를 '등록'함으로써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선 원칙적으로 국가, 교회, 종교라 불리는 것의 중대한 역할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다는 것입니다.(p.201)

 

중세 해석자 혁명은 '혁명의 본체'를 드러낸 혁명입니다. 다시 말해 법학자의 택스트 고쳐 쓰기의 혁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척 담담하고 전혀 극적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신학자, 법학자가 밤낮으로 홀로 책장을 넘기고 사전을 찾고 판례를 조사하여 법문을 고쳐 씁니다. 정말 수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담담하고 수수한 작업에서 엄청난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작업 자체가 바로 혁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12세기 혁명의 위대함이니까요.(p.212)

 

그것은(중세 해석자 혁명) 근대라 불리는 시대를 절대적으로 도래하게 한 혁명이었습니다. 국가, 주권, 법, 정치뿐만 아니라 온갖 측명에서 우리의 세계를 '초기 설정'한 혁명이었습니다.(p.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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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이야기 - 예수회신부
정일우 지음 / 제정구기념사업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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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우 신부님 이야기다. 
내가 정일우 신부님을 알게 된 건 중2인가 중3 때였을거다. 
내 삶에 '새벽을 깨우리로다'만큼 큰 족적을 남긴 책은 없는데
정 신부님은 그 책안에 등장인물로 등장했었다. 
그래서 그런가 빈민촌 안에 그 사람들은 
내 영웅들이 되어 있었다. 
정 신부님도 그 중 한 분이시다. 
그런 정 신부님이 올해 6월 4일 돌아가셨다. 

원래 이 책은 훨씬 전에 사서 보려고 했는데
돌아가시고 미뤄서는 안되겠다 싶어 최근 사서 읽었다. 

읽고나니 역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함께 하고, 그저 있어 준다. 
무어라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저 들어줄 뿐이다. 
그를 겪은 사람들 말이 예수님 같단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농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일과

카톨릭 학교를 다녔던 일, 그리고 신부가 되기 과정까지 

1장은 그렇게 시작한다. 

점점 한국에서 와서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지만 

현장에 세계에 눈을 뜨고 1인 시위까지 하게 된다.

그 뒤 청계천 빈민촌에 김진홍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도 한 번 가서 빈민들과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한 번 살게 된게 거의 남은 평생을 함께 보냈다. 

처음에는 청계천 빈민들, 다음은 양평동 판자촌, 

계속해서 복음자리, 한독주택, 목화마을을 건립하며 함께 지낸다. 

그렇게 평생을 빈민과 농민들과 함께 사셨다. 

 

전도사 사역을 하는 입장에서 

나는 정일우 신부님 같이 사역을 하고 싶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는 

나는 1970년도 김진홍 전도사 같이 사역을 하고 싶다. 

그 역시 정 신부님과 마찬가지로 빈민과 함께 먹고 마시며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빈민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는 어느 정도 극빈층은 사라졌고 상대적 빈민층이 (정확히는 

서민들이랄까) 늘어가고 있다. 

 

그 가운데 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나도 정 신부님처럼 되고 싶다. 

정 신부님을 겪었던 이들의 말을 옮겨 보겠다. 

 

신부님이 가지고 계신 품성 중에서 가장 닮고 싶은 것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능력이다. 신부님이 영적인 삶이나 수도자적 삶은 어쩌면 죽도록 노력하면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이 능력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그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p.188)

 

그리곤 한결같이 내 어깨를 다독여 주시며 말씀하셨다. '잘 살고 있다. 네가 있어서 좋다.'(p.196)

 

마음을 본다는 것은 내 마음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볼 수 있으며 자비심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존재함으로서, 자기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때 상대를 치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신부님은 이렇게 존재로서 많은 사람의 아픔을 달래 주셨고, 이제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 그 자체를 보고 받아들임으로서 하느님의 자비심을 드러내고 계신다.(p.212)

 

한마디로 '밑바닥으로 내려간 사제'의 상을 모범으로 보였다. 이 모범을 따라 사제들이 흉내를 냈지만 정 신부님처럼 철저하게 밑으로, 밑으로 자기를 낮춰가는 삶을 보지 못했다. 빈민들하고, 농민들하고 똑같이 살아가셨던 모습이 그 증거다. 도대체 어떤 하느님 체험이 이분을 그렇게 만들었을까?(p.255-6)

 

동네에서 신부 행세를 전혀 하지 않던 신부님이 서원식 미사에서 제의를 딱 입고 나오셔서 새삼스러웠다. "이제 신부님 같으시네요." 그랬더니 "이때라도 신부인척 해야지" 하고서 입장하셨다.(p. 282)

아!

이 얼마나 보고싶은 모습인가. 

예수님의 신성으로만 치우쳐 있는 이 현실 속에서 

인간 예수를 이토록 담아내다니. 

예수님은 사람이시기도 하셨다! 

치우쳐 있는 이 현실에 정일우 신부님이 참 그립다. 

정 신부님의 성육신의 삶 속에서 나는 배운다. 

 

안녕, 나의 영웅.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블로그에서 정일우 신부님이 처음 배우셨던 말이 '씨X"이라던데 

이건 정확한 정보가 아니다. 보니 이미 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셨다고 한다. 신부님이 철거현장에서 

잘 하셨던 말이 "씨X"이였단다(p.274). 성직자가 욕설이라니? 예전에 김어준의 욕과 정일우 신부님의 욕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김어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글쟁이 아츠히로가 알려준 사실로 비추어 보면 나는 정일우 신부님의 욕이 신성하다고 느껴진다. 

개신교에서는 절대 욕설은 안된다며 극구 말리겠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강제철거되는 그 현장에서 어떡해 분노하리요! 난 여전히 그의 욕이 신성하게 보인다.)

 

(김수환 추기경님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 김수환 추기경님이 비겁했다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적어도 정일우 신부님의 이야기로는 그 분은 가난한 자와 함께 했다는 거다. 철거현장에서도 늘 함께는 아니었겠지만

정 신부님이 어려움을 청할 때면 도와주셨단다. 김 추기경님은 왠지 미안한 구석이 있었지 싶다. 

추기경이라는 신분의 제약 때문에 나아가지 못한 것도 있겠고 성격 때문도 있겠고ㅎㅎ 

아무튼 정말 걸출한 인물이시다!)

 

 

 1985년을 전후해서 서울의 수많은 철거지역에서 강제철거를 막는 주민들의 싸움이 거의 매일 벌어졌다. 항상 긴장했다. 언제 어디서 경찰과 백골단과 깡패들이 지역에 쳐들어올지 몰라 철거민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긴장상태로 지역을 지켰다.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연일 지역현장을 돌며 지역상황을 파악학 주민들을 찾아 힘을 실어 주었다. 상계동 173번지에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1986년 6월 상계동에 얼청난 철거가 들어왔다. 너무나 폭력적이어서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된다. 굉장히 비인간적인 철거였다. 이처럼 엄청난 철거는 처음 보고 겪었다. 사람들이 다치는 것은 예사다. 그 현장에 있던 수녀들은 머리에 쓴 가운이 벗겨지고 머리가 뽑혀 끌려 나갔다. 상계동 성당의 손인숙 수녀가 이 사태를 목격하고 긴급하게 김수환 추기경님께 전화를 했고, 추기경님이 직접 오셨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철거가 계속되었다. 이날 이후 나는 해도 해도 너무 심하게 하니까 상계동에 아예 텐트를 치고 살았다. 먹고 자고를 그곳에서 하면서 이 엄청난 일들을 목격해 나갔다.(p.100-1)

 

전두환 군부정권이 1987년 4월 3일 헌법을 그대로 지키겠다는 호헌을 발표했다. 8년 임기의 대통령 간접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국민들은 무조건 잡아들여 가겠다는 엄포였다. 이 발표는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1987년 6월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런데 호헌발표 다음날 상계동과 양평동 지역이 싹쓸이 강제철거가 집행되었다. 상계동에 트럭 수십대가 동원되어 천막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살림을 싣고 어디론가 가버렸다.항의하는 주민들을 무조건 구타하고 잡아들였다. 그리고 포크레인으로 완전히 집들을 박살냈다. 주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철거잔재 사이에서 울며 다녔다. 양평동도 마찬가지로 싹쓸이 강제철거가 집행되었다. 철거된 주민들은 최악의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철거민들이 4일 오후부터 명동성당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무지막지한 강제철거를 보면서 "이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봤다. 10개월 여간 상계동 주민들은 매주 세 번이나 네 번을 전쟁터에서 강제철거와 폭력을 당한 것이다(p.102)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졌다고 말한다. 뭔가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뭔가 자꾸 생긴다고 했다. 내가 직접 만들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대충 뭐가 생기면 떠난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낀다. 살다보면 주섬주섬 뭔가 모이고 생긴다. 그러면 나는 딴 데 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정착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유목하는 사람이다.(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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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산 책 중에 수용소에 관한 내용이 세 권있다.(어제 엘리 위젤의 '나이트'를 사서 한권 더 추가!)
산둥수용소, 이것이 인간인가 그리고 그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 질 수 있을까 보고 싶어서 샀다. 
산둥수용소도 진지하며 무거울 지 알았는데 
절반 쯤 읽었지만 너무 재미있다. 진지하지만 
무겁지 만은 않다. 글을 너무 잘 쓴거 같다. 
그럼 죽음의 수용소는 어땠을거 같은가? 

단연 1장인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이 많은 점을 가르쳐 주었다. 
2장은 그 수용소에서 얻은 경험을 저자의 전공 영역에서 잘 녹아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로고테라피'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물론 몇 십장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불가능이라고 말한다. 
3장은 레젠스부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읽는데 집중이 잘 안되었다. 

1장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다. 
저자는 극한의 상황에서 3년을 보냈다. 
극한의 상황이라서 저자는 인간의 통찰을 많이 보여준다. 
책을 읽기 전에도 프랭클이 이야기한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확연했다.(p.134-7)
이 의지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이어가는 삶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가치가 있는 가? 의미가 있는가? 
저자는 여기서 소유(기능, 성과)가 아닌 존재자체에 의미가 있다 말한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런 유용성은 그 사람이 사회에 이로운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p.238-9)
저자 역시도 그가 사랑했던 아내의 기억이 
수용소에서의 극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p.78-83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 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수용소를 나온 후의 이야기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이제는 억압을 받는 쪽이 아니라 억압을 하는 쪽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시킨다. 이런 일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 자주 발생한다.(p.157-8)
SBS스페셜 '학교의 눈물'에서 의외의 점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몇 퍼센트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꽤나 높았다. 
고통받은 자는 상처입은 파괴자가 되는게 순리인가?
상처입은 치유자와 상처입은 파괴자.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파괴자가 아닌 치유자의 길이겠지. 
이 당연한 것을 읽고 쓰고 말하기가 어려운지. 
상처입은 자들이 너무도 많다. 

작년에 청년으로 있었던 교회는 2년마다 작은 글모음을 내는데
그 글들 중 절반이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교회의 유치부 아이들 중에도 몇몇은 상처의 흔적이 보인다. 
물론 이 상처의 흔적은 아이나 어른에서나 모두에게 보인다. 
물론 나에게서도. 

그러나 우리는 이 상처를 안고 나우웬이 제시한 길을 가야한다. 
오! 상처입은 치유자여! 
고통을 노래하자꾸나!
이 책의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노래는 아니지만 

"이 치료에서는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자기 자신에게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야만 한다."(p.202)
그럼 와 닿았던 몇 문장들을 옮겨 본다. 

정말로 이상한 것은 흔적도 남지 않은 단 한 방의 구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보다 심한 흔적을 남긴 구타보다 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p.57-8)

내가 여기서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고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p.60-1)

수용소에서는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을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밖에 있을 때 지적인 활동을 했던 감수성 예민한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는 더 많은 고통(그런 사람들은 흔히 예민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니까)을 겪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내면의 자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손상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더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p.76)
(만약 서평으로 썼다면 허무주의에 대해서 추가를 했을 것이다. 오늘 체스터턴의 '정통'을 읽었는데 마침 3장 생각의 자살편을 읽었다. 이 장은 서구의 허무주의를 비판하는 챕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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