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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ㅣ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진심의 탐닉』은 씨네21에 실린 인터뷰 모음집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터뷰 모음’이라고 하긴 힘들다. 인터뷰어인 김혜리 기자와 인터뷰이들의 대화는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의 광고에서는 ‘굉장히 밀도 있는 인터뷰’라는 표어를 사용해 소개한다. 밀도 있는 인터뷰가 궁금했고, 그 궁금증은 『진심의 탐닉』을 읽자마자 해소됐다. ‘어쩜 이런 질문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질문을 하기 위해 김혜리 기자는 ㄱ이라는 사람을 인터뷰 하게 되면 ㄱ에 대한 신문기사부터 책, 드라마, 영화, 음악 까지 모두 찾아서 보고, 듣는다고 한다.
인터뷰어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함께 기자본인의 배경지식도 너무나 부럽다. 번역가 정영목 인터뷰 중 “번역이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란 전제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극단적 예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서문을 보면 14세기 말 독일의 한 수도사에 의해 라틴어로 쓰인 작품의 17세기 라틴어판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이탈리아어로 옮겼노라 쓰여 있잖아요. 이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할 때는 어떤 문체가 합당한 것인지 굉장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잖아요?”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 ‘번역이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말을 알고,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며, 『장미의 이름』의 서문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배경지식을 시간과 노력 없이 눈대중만으로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혜리 기자가 만난 인터뷰이들도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소설가 김연수, 무한도전PD 김태호, 시인 김경주, 정치인 유시민, 앵커 신경민, 배우 고현정, 첼리스트 장한나 등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그 중 시인 김경주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질문 “항상 죽은 손목시계를 차고 여행한다고 책에 썼습니다. 아예 시계를 차지 않는 쪽이 아니라 죽은 시계를 굳이 차고 가는 까닭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김경주는 “시계를 차고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시간에 맞춰서 살게 돼요. 그 속도감을 없애고 싶었어요. 죽은 시계는 계속 뭔가를 환기하고 갈등을 일으키죠. 갑갑해서 가끔은 맞추고도 싶고, 몰래 돌려 보기도 하겠죠. 죽은 시계는 문학의 이미지예요. 비유하면 시계를 아예 차지 않고 가는 것은 예술이 뭔지는 알지만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죽은 시계를 구태여 차고 여행가는 사람은 끊임없이 환기하고 갈등하며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답한다. 요즘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놓쳐버린 시간을 되찾을 순 없겠지만 현재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할 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