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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어머니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나 스스로는 좀처럼 집어들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러운 추천이었고, 좋은 책으로 또 한번 가르침을 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장영희 교수님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마치 나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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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적으로 무슨 일이든 '미리' 하는 법이 없다(…). 학교 다닐 때는 숙제는 으레 바로 전날 밤늦게 하는 것으로 알았고, 무슨 시험이든 한번도 미리 준비하는 일 없이 순전히 벼락공부로 때웠다. 요새도 수업 준비를 미리 해두는 일은 없고 기껏해야 바로 전날 하거나 아니면 당일 아침에 화장실에까지 책을 들고 들어간다. 원고도 이제껏 한 번도 마감에 맞춰 끝내 본 적이 없으며, 학교에서 성적 제출을 할 때도 학적과에서 몇 번 독촉 전화를 받고 나서야 슬슬 합산을 시작한다.
(…)언제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 삶은 '미리'라는 단어가 주는 안도감,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하루만 더, 아니 몇 시간만 더, 아니 한 시간만 더……'라는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고 때가 되면 언제든지 순발력을 발휘해서 눈 깜짝할 새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거나 '까짓, 잘 못하면 어때'하는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하지는 않으면서도 내내 불편하고 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일을 하고 나면 다음번엔 꼭 미리 해야지 다짐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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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저자는 아마도 매우매우 겸손한 분이셔서, 이렇게 쓰셨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철저하고 확실하게, 할 때는 제대로 하는 마음가짐으로 매사에 임하셨을 것이다. 아니면 대단히 똑똑하시거나. 왜냐하면 나 또한 위의 내용과 정말이지 똑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늘 학업에 지장을 받고 일처리가 매끈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나의 성향―미리 행동하지 않는 습관, 상습적인 지각―에 관해 이렇게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우습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지만) 기뻤고, 반가웠다. 하지만 평소에 내가 싫어하던 나의 성향을 합리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애석하다. ("나처럼 살아도 교수가 된 사람이 있다니까?!?!"―철 없는 생각이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접하곤 소름이 끼쳤던 부분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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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민식이라는 학생이 쓴 '내가 행복의 교훈을 배운 잊지 못할 그날'이라는 좀 긴 제목의 글인데,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내게 언제 행복을 느끼느냐고 물으면 나는 '화장실에 갈 때, 음식을 먹을 때, 걸어 다닐 때'라고 답한다. 유치하기 짝이 없고 동물적인 답변 아니냐고 반문들을 하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게 '잊지 못할 그날'은 3년 전 11월 4일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수능시험 보기 바로 이틀 전이었다. 방과 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수위 아저씨가 뛰어 들어오면서 외치셨다. "너희 반 친구 둘이 학교 앞에서 트럭에 치여서 병원에 실려 갔다!"
우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명수와 병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머리를 크게 다친 병호는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생명이 위태롭다고 했다. 병호는 곧 수술실로 옮겨졌고, 친구들과 나는 거의 기절 상태이신 병호 어머니와 함께 수술이 잘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빌었다.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병호를 꼭 살려 주세요. 제가 수능시험을 아주 못 봐서 대학에 떨어져도 좋으니 내 친구 병호를 살려 주세요.' 당시 그것은 내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희생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표정이 병호의 죽음을 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바로 그때,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던 명수가 깨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오줌 마렵다고!"
나는 친구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숨을 멈추었고 또 한 사람은 살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명수야, 축하한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보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가끔씩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고, 친구들과 운동하고, 조카들과 놀고, 그런 행복들은 순전히 보너스인데, 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p.15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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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은 그런 보너스 행복을 가득 차 있다!!
이 확신에 찬 마지막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친구들의 사고를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이 학생의 체험담을 통해 나 역시 주어진 생에 감사하고 '보너스 행복'에 대해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