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동안에 1 - 개정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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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할 수 있는 생물이다.
경험이 부족한 나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너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인생이란 어떤 계기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운명이란 좋은 물건과 나쁜 물건을 함께 파는 행상과 비슷하다. 모든 것은 물건을 사는 사람인 너의 재량 여하에 달린 것이다.
너는 지금 기구를 따라 뜻하지 않게 오르게 된 민둥산 꼭대기에 있다. (88)

그들은 끝내 스스로 자신의 옛 상처를 폭로하게 되고, 견디다 못하면 대중이 생각하는 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자진하여 피압박계끕이 되고, 능동적인 행동의 바탕이 되는 분노를 잊고, 체면이 짓밟혀도 아무 느낌도 갖지 못한다. 처음 듣는 간사한 이론에 솔깃해하고, 개인적인 일가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을 바람지하다 여기고, 보편타당성이 뒷받침하는 진리를 강요하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관사에 사는 공무원이나, 풍채도 시원치 못한 미식가나, 있지도 않은 애정을 털어 손쉬운 추녀에게 추파를 던지는 중년 남자가 된다. 그렇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간 태도를 지키고 있는 사이, 그들은 인간미가 결여된 거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189)

마지막이야 어떻든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숙명을 상대로 무장한 이론으로 담판 지으려는 것은 큰 실수다. 중요한 것은, 어찌 되었든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움직이기 어려운 사실이다. 본의는 거기에 있다.
그러니까 시체가 된 네가 모포에 둘둘 말려 실려나오는 장면을 낱낱이 보았다 해도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만만한 말투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잘 태어났다!" (216)

그 바람을 친구로 삼으라.
그 바람을 맞으며 흐르라.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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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동안에 1 - 개정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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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좋은 후크! 단일 화자의 모놀로그이나 지루하진 않음. 과거로 반복 회귀하는 서사도 특이. 그러나 애써 구축된 신화 분위기는 중간중간 한갓 사회 비판으로 쪼그라들고 로맨스는 평범 그 자체. 그리고 투머치 현학적. 상호주체성 같은 단어 소설에 나오면 비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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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사람 2 - 현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22인의 목소리 그리고 이야기 작가라는 사람 2
엘리너 와크텔 외 지음, 허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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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인터뷰와 달리 안정감&깊이 있는데, 글쓰기는 탐험과 질문이지만 이미 자기 궤적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한 ‘노‘작가들이라서. 과거를 보존하면서 배신하는, 늘 떠나면서 회귀하는 정체성의 형성 내막과 상상력을 밀어붙여 역사의 빈 곳을 채우는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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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文과 노벨novel의 결혼: 근대 중국의 소설 이론 재편 서남동양학술총서 16
이보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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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중 현대 소설(이론)의 성립에 文의 컨셉이 핵심 작용 했다는 것. 개인주의나 예술 위한 예술은 중국 풍토에선 꺼리도 아냐. 문이재도 대동세계의 인비져블 손(유도법가 다 한 세트)은 오늘까지도 강력. 근현대는 전근대 모르면 이해불가. 근현대 외면한 전근대 연구는 먼지 나는 옛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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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사람 2 - 현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22인의 목소리 그리고 이야기 작가라는 사람 2
엘리너 와크텔 외 지음, 허진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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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언어 안에서 음악을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24)

저는 책을 쓸 때마다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여야 하는지, 그것이 타당한지, 무엇과 관계가 있거나 없을지, 어떻게 출판될지, 사람들이 읽긴 읽을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책 속의 문장들 안에서만 살고, 거기서 나오는 것은 책이 끝날 때뿐입니다. (34)

당시에는 이것이 징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F를 받아서 기분이 무척 나빴지요. 규칙을 어겼으니까요. 저는 나중에서야 규칙 위반이 픽션의 생명이자 영혼이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금지된 것을 접하지 않으면 가치 있는 것을 쓸 수 없다고 깨달았습니다. (41)

"나는 노스다코타 주 작은 마을에서, 한때 와페턴-시세턴 수족의 땅이었지만 오랫동안 인디언이 아닌 농부들에게 임대되고 팔린 땅에서 자랐다. 우리 가족 아홉 명은 마을의 거의 끝부분에 살았다…. 몇 킬로미터나 걸어도 밭, 더 많은 밭, 그리고 완벽하게 죽 뻗은 흙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글을 쓸 때 그 마을의 경계—하늘, 높이 솟아 대열을 계속 바꾸는 구름들, 너무나 아름다운 빛을 받은 텅 빈 허공—가 자주 보인다." (44)

저는 제가 얼마나 깊이 헤엄쳐 들어가고 싶은지 압니다. 그곳이 바로 저의 자리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읽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가 책을 읽을 때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따라서 책을 쓸 때 무엇을 원하는지도 압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많은 것을 기대합니다. 오락을 위한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저는 카프카를 무척 좋아합니다. 카프카는 책이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 영혼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저 역시 책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작가가 책을 쓰는 유일한 이유 역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죠. (81)

우리 문화의 아주 중요한 부분인 소유 관계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입니다. 소설이 하는 일은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그것을 정말 소유할 수 있는지, 소유 대상이 자율과 주체성을 주장하면 어떻게 되는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지요. 하지만 소유 대상의 입장에서는 중대한 전환이자 세상의 새로운 재건입니다. (99)

저는 아주 심오한 의미에서 셰익스피어가 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셰익스피어 이후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된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 등장인물이 자기들끼리 말을 엿듣거나 엿들은 말을 갑자기 떠올리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독백이든 방백이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든, 인물들이 엿듣기를 통해서 놀라운 변화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혼잣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우리가 하는 말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거나,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 충격을 받거나, 우리의 말 때문에 불행하거나 수치스러워집니다. ... 저는 그것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해서 우리를 깜짝 놀랄 만큼 바꾸어 놓았는지 알려주는 단서 혹은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우리 내면에서 점점 자라는 자아라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는 조금 전의 주장으로 돌아가죠. (134)

그런 다음 에드먼드는 제가 절대 잊지 못할 놀라운 새 단어를 말합니다. ... "그러나 에드먼드는 사랑받았도다!" 그런 다음 에드먼드는 자신의 말에 깜짝 놀라서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삶을 갈망한다. 내 본성은 그렇지 않건만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그는 바깥으로 실려나가 무대 밖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는 에드먼드가 죽을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 자신도 모릅니다. 애드먼드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되돌렸는지 아닌지 모른 채 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변화를 나타내지요. 극에서 자기 내면을 고찰하는 것은 정말 새로운 특징입니다. 자신의 말을 듣고 객관화한 결과이지요. 잊을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인 특징, 획기적인 변화입니다. (136)

제가 생각할 때 작가가 발전하는 방식은 가족과 무척 관계가 많습니다. 나중에 작가가 되는 아이는 부모님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와 절친한 친구 같은 사이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제일 책임감이 강하고, 기억을 잘하고, 의식적으로뿐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아이죠. 심리적으로 가족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할 책임을 느끼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에게 가족의 생존은 일종의 임무이고, 그것은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하려고 하는 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죠. 우리가 연락을 계속 하든 그렇지 않든 제일 첫 단위인 가족은 끝이 나고, 우리 모두는 성인으로서 그 상실에 대처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좋은 상실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항상 우리가 처음 가진 집과, 그리고 그 집을 배신하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과 항상 씨름을 하고 있어요. (163)

네, 저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면 삶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머릿속에서 삶을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만들지 않는다면 저에게 삶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얇게 느껴질 겁니다. 삶은 적당한 모양을 취하고 있지 않아요. 제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하루하루가 엉망으로 쌓여 있었을 겁니다. 삶에는 다른 차원이, 스스로의 생각에 모양과 형태와 유머를 주는 다른 차원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정말로 느껴요. 작가가 아니고, 그런 차원이 없고, 이런 식으로 세상에 대해 자신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생각만 해도 공포에 질립니다. (256)

그러므로 저는 좋든 나쁘든 미국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제가 온 곳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라면 어딘가에 망명 중이라고 하겠어요. 그게 미국의 멋진 점이죠. 미국에서는 스스로 망명자가 될 수 있어요. 남은 평생 미국에 살면서도 원래의 자신으로 남을 수 있죠. 미국은 그걸 허락해 줘요. 제 생각에 권리장전 외에는 모든 미국인이 동의하는 사나의 미국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없어요. 하지만 권리장전은 정체성이 아니죠. 그건 사고방식이고 누구든 어디서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어요. (261)

그리고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잖아요. "이게 내 이름이야"라고 말한 순간부터 친구들은 전부 그 이름으로 저를 불렀어요. 누구도 저에게 그게 제 본명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다들 그냥 받아들였지요. 미국이니까요. 여기서는 자신을 만들어 낼 수 있죠.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미국은 이 세상에 커다란 선물이에요. (273)

이런 식으로 단어 하나만으로도 차이를 알 수 있으니 훨씬 더 복잡한 것들--구문론, 다른 단어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과 당연하세 여겨지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제가 농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다시 배워야 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다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 배우는 것이지요. 그전까지 제가 쓴 책은 부르주아나 노동자, 지식인, 예술가에 대한 것이었지 농민에 대한 글을 아니었으니까요. (303)

"삶은 언제나 인간의 마음속에서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만 힘들 것이다."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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