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을 착취하다 - 서민을 위한 대출인가 21세기형 고리대금업인가, 소액 금융의 배신
휴 싱클레어 지음, 이수경.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하지만 이 두 가지 유형의 중간쯤에 속하는 세 번째 유형의 소액 금융 기관도 있는데, 이 기관들에서 시스템 악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들은 빈곤층에게 대출을 해 주면서 일정액의 예금을 받는다. 이른바 ‘강제 담보‘ 또는 ‘강제 예금‘이다. (76)

우리는 쇼퀘에서 한 달쯤 머물 예정으로 필요한 물건을 차에 실었다. 마실 물, 음식, 배터리, 종이, 책 등 생존에 필요한 필수품 대부분을 챙겼다. 쇼퀘에서는 제대로 구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를 타고 마푸투 북쪽 변두리의 극빈 지역을 구불거리며 통과하는 동안, 나는 어느 쪽이 더 놀라고 있을지 궁금했다. 자동차 뒤에 실은 20리터짜리 물통들 사이에 구겨지듯 앉아 있는 자그마한 멕시코인을 본 현지 주민들이 더 놀랐을까, 아니면 지구상에서 가장 끔찍한 빈곤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호세 마누엘이 더 놀랐을까? (90)

우리는 로열란데키 호텔로 돌아갔다. 이 호텔 객실의, 누군가 가지고 나갈 수 있을 법한 모든 물건에는, 심지어 수건에까지 커다란 검정 글씨로 "란데키호텔에서 훔침"이라고 씌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의 보안 장치였다. (171)

유누스가 높은 이자율에 반대하는 것에는 박수를 쳐 주고 싶지만, <뉴욕 타임즈>의 기사가 지적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유누스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받는 라포의 가장 큰 투자자 중 한 곳이 바로 그라민재단 USA라는 점이다. (290)

나는 이런 일들이 내게만 일어난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우연하게도 내가 일한 국가, 내가 일한 소액 금융 기관, 내가 만난 펀드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닐까? 정말로 내가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걸가, 아니면 훨씬 더 사악한 무언가가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었을까? 그 답은 우리의 상식뿐만 아니라 니카라과, 인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알려 줄 것이다. (330)

그런데 이 ‘그라민의 친구들‘의 정체는 정확히 뭘까? ‘그라민의 친구들‘은 고위 유명 인사를 여럿 영입했다. 진실을 호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비난을 참재우려는 ‘사실 관계표‘를 배포했다. 강력한 홍보 회사를 고용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복음처럼 열렬히 광고한다. 강력한 정치적 연결 고리를 만든다. 저들이 보호하는 분야에서는 운 좋은 몇몇 개인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이단아로 취급하면서 온갖 수단으로 그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려고 한다. 한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게 바로 사이비 종교 아니었나? (371)

당신을 대신해 투자를 운영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소액 금융에서 어떤 실무 경험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라. MBA나 근사한 학위가 현장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384)

평가 기관 보고서를 읽으라. 투자 주인 소액 금융 기관에 관한 평가 보고서가 존재한다면 펀드 측이 그것을 구독하는지 물어보라. 펀드가 평가 보고서가 없는 소액 금융 기관에 투자하고 있다면, 그리고 펀드가 기관에 평가 보고서를 요구할 의향이 없다면 극도로 조심해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385)

나는 지금이 새로운 소액 금융 시대로 가는 여명기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에 언급된 추악한 행태들을 저지르는 자들은 아예 게임에 낄 수조차 없는 시대 말이다. 빈곤 완화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빈곤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나 제네바에서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솔직히 허황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붐이 일었던 것들은 죄다 이런 식이었다. 인터넷 버블, 서브프라임 모기지, 네덜란드 튤립 파동까지 말이다. 이렇게 이성을 상실한 일들이 역사에서는 종종 벌어진다. (403)

경쟁은 선진국 못지않게 개발 도상국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런던이나 뉴욕 같은 곳에서는 개발 도상국에 비해 토마토 가격이 훨씬 더 다양하게 분포할 수 있다. 토마토 가격이 약간 다르다고 신경을 쓰거나 1~2달러 아끼자고 멀리까지 걸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 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가격에 훨씬 민감하다. 토마토를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1~2킬로미터를 걸어갈지도 모른다. 더구나 해당 제품의 구입가가 가처분 소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말이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가격 차이가 가족들이 한 끼를 더 먹고 덜 먹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408)

하지만 값비싼 소액 금융이 이들 시장에 미치는 위험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소비자는 어디에 있을까?
판매자가 뭔가를 팔려면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우리의 가상 시장에서는 이 ‘새로운‘ 제품을 흡수할 수 있도록 전체 소비자 수가 증가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똑같은 제품을 더 많이 살 돈을 소비자들은 대체 어디에서 구할까?
정답은 간단하다. 소비자들도 소액 금융 기관에서 대출을 받는다. 소비형 대출 말이다.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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