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진 평전
신한균.박영봉 지음 / 아우라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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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은 빈부와 관계없다.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돈이 없어 형편없는 음식만 먹더라도 그 감각은 변하지 않는다. 학습이나 훈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4)

나는 마침내 대가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지만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위 대가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실로 유치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교적으로만 관찰하고 외형만을 중시한다. 서도가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옛날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근대에는 글다운 글이 없다. 그들은 왜 정해진 틀만을 고집할까? 한마디로 말해 그들에게는 예술이 없기 때문이다. (35)

청년 미술학도여! 그대들이 스승으로 우러러보고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다면 적어도 2백 년, 3백 년 전의 예술에 주목하라. 아니, 더 오래된 1천 년, 2천 년 전의 작품으로 눈을 돌려 보라. 선대의 예술가들이 천지를 어떻게 꿰뚫고 자연의 미묘함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솔직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창조했는지를 보라. 도자기로 말하자면 유약이 없던 시대의 기능과 정신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44)

미식구락부에서는 회원제로 식권을 발행했으며 점심과 저녁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로산진은 두 명의 보조와 함께 요리를 맡았고, 다케시로는 세 명의 여종업원과 함께 손님을 상대했다. 로산진은 전날 아무리 술에 취하더라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하는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나가 생선과 채소를 골랐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요리사들이 많았지만, 덜컹거리면 재료가 상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금지했다. 그는 점포에 있던 고급 도자기를 식기로 활용해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손님이 식기를 마음에 들어 하면 즉석에서 팔기도 했다. (74)

진짜 요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 이후에라도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합니다. 맛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사람, 처음부터 끝까지 맛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극도로 집중하는 사람, 일상의 식사에서도 수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 월수입을 계산하지 않는 사람, 요리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 그림 조각 건축 등 예술에 애착을 가지고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 임기응변으로도 손님을 만족시키는 사람, (중략) 후세에 천하의 요리사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을 모집합니다.
우린 또 그런 요리사로 교육할 것입니다. 나이와 경력에 개의치 말고 풍부한 감각과 불굴의 의지가 있는 사람은 응모하시기 바랍니다. (84)

요리를 할 때 필요한 부분만 취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요리사를 보면 로산진은 호통을 쳤다.
"요리의 재료는 최고를 선택해야 하며 버리는 것이 없어야 한다. 단 하나의 재료도 버려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걸 명심해!" (85)

그는 버려지는 재료에 대해서도 철저히 연구했다. 버리는 걸 아깝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보려고 했다. 일본에서 와사비는 최고의 향신료이며 조미료이다. 와사비는 고추냉이의 뿌리를 갈아 만든다. 한데 로산진은 뿌리만 취하고 버려지는 고추냉이의 줄기에 주목했다. 고추냉이의 푸른 줄기는 깨끗하고 싱싱하다. 아삭아삭하니 이에 와닿는 촉감이 좋으며, 맵싸한 맛이 일품이다. 사용하기에 따라 몸에도 요리에도 이로운 재료가 될 수 있다. (96)

요리 재료가 몇 천, 몇 만 가지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한 가지도 독특한자기의 맛을 가지지 않은 것이 없다. 어느 한 가지도 대신해서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요리라는 게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살리는 데 있다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하는 것이 요리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이다. (97)

로산진은 음식을 맛있게 먹은 손님이 다시 원한다 해도 같은 음식을 하루에 두 번 내오는 법이 없었다. 요리에서 ‘일기일회...‘가 있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그렇다고 손님을 무시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고객별로 음식 취향을 파악하도록 작성해놓고 있었으며, 손님이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100)

흔히 중국 요리를 세계 제일이라고 하지만, 중국 요리가 그랬던 것은 명나라 때의 일이지 지금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식기는 명나라 것이 가장 미적으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식기가 뛰어났다는 것은 곧 요리가 뛰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청나라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점점 맛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식기도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넓은 안목에서 보면 그릇에 따라 요리가 좌우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리를 만드는 사람은 결국 식기예술을 알아야 합니다. 요리업자는 도자기 작가와 항상 교류하고 교감하면서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요리와 그릇은 한 축의 두 바퀴이며,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이다.‘" (127)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다케시로는 죽을 때까지 왜 로산진과 결별하게 되었는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로산진이 가진 예술적 재능과 세상을 놀라게 한 요리 실력을 존중한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도 해고를 망설였던 것으로 보아 많은 후회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결별에는 로산진의 독단적 성격이 크게 작용했고 그런 증거와 증언이 아주 많다. 어쨌거나 사건 직후를 제외하고는 끝까지 서로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들의 결별이 여러 가지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일어난 일이었음을 보여준다. (134)

나는 도예는 일본의 다양한 고전적인 도자기를 모범으로 삼고 있다. 또한 조선과 중국 그리고 서양의 고전적인 도자기도 포함한다. 그러나 나는 자연의 미를 유일한 스승으로 우러러보고 추구해왔다. 결국 나의 도예는 모두 자연에서 탄생한 것이다.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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