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식객 -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
SBS 스페셜 방랑식객 제작팀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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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에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중식당 보조부터 한식당 보조까지, 음식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들어가 일했다. 그렇게 한 끼를 먹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하지만 어디든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요리에 빠져들면 들수록 내가 찾는 음식, 내가 하고자 하는 요리는 그 어느 주방에도, 책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

할머니의 칭찬을 들으니 나도 불끈 흥이 난다. 사람들은 기본 국물울 고기나 멸치 등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쉽다. 하지만 맛의 기본 설계는 무엇으로든 가능하다. 물론 이끼로도 가능하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재료는 저마다의 기운과 맛을 품고 있다. 그 기운과 맛을 온전히 뽑아내어 다룰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음식의 베이스를 삼을 수 있다. (24)

"워낙에 선상님 실력이 좋으니까 온 게 다 맛있소. 이게 다 추억이라, 우리네 사는 추억이라." (30)

일 년 전부터 감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원래부터 나는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음식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나 정해진 레시피 같은 걸 갖고 있지 않은 요리사였다.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 맞는 재료와 음식이 상각났고, 주변의 재료들을 찾아 그에 맞는 음식을 만드는 게 내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르더니 그 재료로 음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36)

갯벌요리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을 거쳐 켜켜이 쌓여온 생명의 역사, 바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둘려주고 싶었다. 소금과 갯벌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를 맛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ㅜ기하다, 천하다 이름을 지어 생각의 벽을 만들어서 보니까 못 보는 것이다. 그 벽만 없애면 갯벌은 얼마든지 식재료로 쓸 수 있다. 우주의 별을 구성하는 성분과 내 몸을 이루는 성분이 같듯이, 갯벌을 이루는 성분도 내 몸을 이루는 성분과 같다. 그렇게 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59)

운신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 병수발을 8년째 하고 계시다는 할아버지의 순정이 아름답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쉽다. 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서로 바라보며 한 몸처럼 아꺄주는 사랑은 쉽지 않다. 그런 사랑은 기적이 된다. 감자, 하귤, 양외잎, 백년초꿀, 치자꽃이 전부였던 오후의 간식공양으로 나는 작은 기적을 배운다. (83)

"메밀범벅...... 그건 어떻게 하세요?"
"메밀가루랑 고구마를 같이 반죽해서 솥에 익히지."
나는 만나는 분들에게 평소 어떤 음식들을 주로 해 드시는지를 묻곤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늘 해오던 모습 속에 우리네 음식의 본류가 있고,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레시피와 재료를 내 방식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재미나다. (93)

"왜 맛을 보지 않고 요리를 하는 거요?"
"원래 맛의 수행은 맛보지 않고 하는 거예요."
기분에 의해, 몸의 상태에 따라 혀로 느끼는 맛은 기복이 심하다. 혀에 의존하지 않고 냄새와 색, 질감과 같은 다른 감각으로 맛을 보는 것 또한 훈련이다. 몰입할수록 맛보지 않고도 제 맛에 근접해간다. 수행사듯이 맛있다. 맛있다는 생각을 심으면 그 생각이 음식에 녹아든다. (95)

제주도에 있는 동안만큼은 그 어떤 조미료도 쓰지 않을 작정이었다. 소금과 간장마저도 이곳에서는 버리자고 생각했다. 천연조미료가 나고 자라는 섬이므로 오로지 그것들만 사용하고 싶었다. 이 옛날 소금과 간장이 귀했던 시절, 이 섬의 어머니들은 방석나물로 소금을 대신하고 후추등으로 매운맛을 대신했을 것이다. 그네들이 쓰던 천연조미료를 내 방식대로 새롭게 적용해보고 싶었다. 전통을 지키며 사는 노부부에게 올리는 음식에도 그러한 전통에 대한 존중을 담고 싶었다. (96)

"그냥 먹던 거 먹지" 하지 말고 식탁에 새로운 변화를 조금씩 시도해보자. 시도를 해보면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식탁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늘의 한 끼 식탁을 기점으로 이들 부부가 보다 자연과 활발히 소통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기원해본다. 그리하여 마침내 진정 자유로운 두 마리 아리따운 새가 되기를! (143)

조국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빈농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그나마 토지개혁을 하고 토지를 나눠준다는 중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어다는 것이다. 이후로 고향땅을 다시는 밟아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는 고향땅을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중국땅에서 중국 국적으로 살아온 조선족일망정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그 자부심으로 모든 외로움과 향수를 이겨냈으리라. (248)

"재료 그대로의 맛으로 맛있게 먹는 것이 요리라고 생각하비다. 재료의 본래 맛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버리면 그것은 재료에 대한 결례입니다. 재료의 맛있는 부분만을 떼어내서 먹어도 안 돼요. 재료를 있는 그대로 섭취해야 합니다. 그것이 재료에 대한 예의죠."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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