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퉁 섬의 무지개 학교 2
안드레아 히라타 지음, 김선희 옮김 / 이론과실천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집배원 아저씨의 고된 삶을 잘 알았다. 나는 한밤중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진심으로 기도했다.

신이시여, 저는 앞으로 제가 뭐가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제발 신이시여, 제가 집배원만은 안 되게 해주세요. 새벽에 시작하는 일은 하지 않게 해주세요. 신께 약속합니다. 코란 선생님의 자전거를 다시는 반탄 나무에 매달지 않겠습니다. (33)

나느 헤리엇의 문장 하나하나와 더불어 새로운 정신이 내 머리에 불어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입이 떡 벍어졌다. 에덴서 마을에 대한 묘사를 읽을 때에는 숨을 죽였다. 여리저기 흩어져 있는 언덕의 경사면이 마치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경사면이 초록의 언덕과 광활한 계곡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높은 산꼭대기를 상상했다. 머릿속에 버드나무와 자갈로 지은 농부 집 사이, 계곡 바닥을 굽이치는 강을 그려 넣었다.
에덴서의 자그마한 마을에 푹 빠졌다. 이 세상에는 사랑 말고도 아름다운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리엇의 아름다운 묘사는 완벽한 감동을 주었다. 동물을 돌보던 집 밖의 자그마한 둥근 조약돌이 깔린 좁다란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가축 울타리를 따라 좁은 길을 흐르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었다. (63)

물리 교사의 행동은 인도네시아에서 전형적인 문제였다. 반지르르한 용어와 높은 수준의 이론을 언급하는 영악한 사람들은 과학적 진보를 위해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며, 논쟁의 단어를 찾을 능력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다. 물리 교사가 보여주는 행태처럼, 억압과 독단적인 지성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식 조작자에 불과하다. 가짜 과학자들, 배우지 못한 공동체에서 자기과시를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거만하게 군림한다. (109)

오래전에 교장선생님에게는 함께하는 교사와 학생이 많았다. 하지만 서서히, 공동체는 학교에 대한 믿음을 잃고, 교사들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다. PN의 교육차별은 학교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을 시들게 했다. 그 차별로 인해 벨리퉁 토착 원주민들은, PN 스태프의 아이들만 학교에서 성공하고 대학에 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장래가 촉망되는 선생은 오직 PN 학교 선생이라고 믿게 되었다. 덕분에 마을 아이들은 하나씩 하나씩 학교를 그만두고, 마을학교 교사들도 하나둘씩 그만두었다. 교사들은 PN의 근로자나 어부가 되었다. (121)

학교에 다니지 않는 꼬맹이들의 `성공`과 더불어 상황은 더욱 비참해졌다.
......
교장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에게 지식은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며, 교육은 신에 대한 신앙생활이며, 학교는 학위를 받고 부자가 되는 것 따위의 목표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신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학교는 고괴하고 신망 있고, 인간(성)에 대한 찬양이었다. 학교는 배움의 즐거움이자 문명의 빛이었다. 이것이 교장선생님의 교육에 대한 영광스러운 정의였다. 하지만 차별에 길들고, 물질의 유혹에 눈이 먼 어린아이들에게 이런 계몽은 통하지 않았다. (122)

대답 대신, 선생님은 그저 PN 총책임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선생님의 눈이 보름달만 해지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생님은 쥐고 있던 종이를 손으로 더욱더 단단히 거머쥐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수년 동안 선생님과 함게 공부하면서, 우리는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분명 팍 하르판 교장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벨리퉁 무하마디아 학교 창설자들의 얼굴에 사로잡혔다. 그분들은 학교를 세웠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지 당국자들로부터 위협받고 감옥에 갇히고 고문당하고 추방당하고 내동댕이쳐지고 죽임을 당했다. 선생님은 스스로 학교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끔찍했다. 어찌 됐든, 선생님은 식민지 당국에 대항하는 게 아니라 자기 나라 사람에게 대항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래도 울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거다. (180)

그렇지만 결국, 우리 학교는 사라졌다.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무자비하고, 싸우기에 가장 힘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게 지고 말았다. 그것은 학생, 교사, 심지어는 교육 시스템 그 자체를 마치 해로운 종기처럼 서서히 갉아먹었다. 그 적은 바로 물질주의였다.
현재의 교육계는 팍 하르판 교장선생님처럼 학교를 바라보지 않았다. 즉, 지식이란 자기가치에 관한 것으로, 교육을 더 이상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의 추구로 바라보지 않는다. 교육은 그저 단순히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순단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학교는 더 이상 인성을 배양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학문적 타이틀을 과시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자본주의적인 계획의 일부일 뿐이다. (263)

나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공부를 계속할 기회를 갖게 된 걸 행운이라고 느꼈다. 후에 나는 배낭을 매고 여러 곳을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나는 사람들이 각각의 사회 시스템 안에서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나는 삶의 관찰자로서 내 비공식적인 직업을 즐겼따.
......
나는 많은 경험을 통해 결론을 얻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분명 그렇게 멀리까지 여행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세계를 정복할 필요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었다. 내가 믿었던 지혜는 내가 무지개 분대 친구들과 함께한, 결국 바람에 쓰르진 그 학교에서 배웠던 잊지 못할 시절로부터 얻은 단순한 철학이었다. (2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