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동북아 역사재단 번역총서 3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배대화 옮김 / 동북아역사재단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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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체호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이 교육을 위해서 교과서와 참고서 등 약 4,000권의 책을 모아서 사할린으로 보낸 것이었다. (13)

얼굴은 수척하고 그늘져 풍상에 찌들었다. 도무지 이들의 얼굴을 표현할 길이 없다! 틀림없이 둘씩 한 조가 돼 수갑을 찬 채 죄수선을 타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이든지 아니면 빈대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물어대던 농가에서 숙박해가며 국도로 호송되어 오는 동안에 골수까지 돌처럼 굳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도 벌거벗은 기슭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물에 밤낮으로 젖어가며 이들이 지녔던 모든 온기를 영원히 상실했고 삶에 남은 것이라곤 오로지 술과 계집, 계집과 술....... 이들은 이 세상에서 이미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그런데도 내 마부 노인네의 견해에 따르면 저세상에서 이들은 더 나빠질 것이란다. 죄의 대가로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57)

즉 지식과 경험을 기초로 하지 않는 모든 새로운 조치는 그런 운명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슬프고 기괴하다 해도 감옥과 유형 중 어떤 것이 러시아에 더 유익한가라는 목하의 문제를 해결할 정당성조차도 우린 가지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도소가 어떤 것인지, 유형이 어떤 것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유형으로 구금되고 고통을 겪는 자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의 원인이나 기독교 국가와 기독교 문학에서의 몰이해의 원인은 러시아 법률가의 극도의 무교양에서 비롯된다. 법률가는 유형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으며 ... 그는 오로지 인간을 재판하고 구금형이나 유형을 선고하기 위해 대학 시험을 치를 뿐이다. ... 범죄자가 재판 후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는지, 감옥이 뭔지, 시베리아가 어떤지 모르고 흥미도 없으며 그런 일은 그의 권한에 속하지도 않는다. 이 일은 이미 코가 빨간 호송 감독관이나 교도소 감독관의 것일 뿐이다! (90)

소나무 주위로 등에 배낭과 솥을 짊어진 탈주자가 어슬렁거린다. 거대한 타이가와 비교한다면 그의 악행, 심지어 그 자신까지도 얼마나 작고 사소한가! 그는 이곳 타이가에서 죽어갈 것이며 그의 죽음에는 모기의 죽음처럼 어떤 현명함도 무서움도 없을 것이다. ...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라는 문구가 이곳에서만큼은 사뭇 걱정스럽고 허황되게 울린다. 만약 시베리아 대로를 따라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이 타이가를 없애기로 합의하고 도끼와 불로써 그 일에 착수한다면 바다를 태워 없애고자 했던 파랑새의 이야기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 한 학자가 동쪽 기슭에 체류하던 중에 무심코 숲에 불을 지르게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눈에 보이는 푸른 지역이 전부 불길에 휩싸였다. ... 그러나 이 거대한 타이가에서 수십 km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마도 화재가 있었던 장소는 지금은 통과할 수 없는 숲이 생겨 곰들이 평화롭게 돌아다니고 들꿩들이 날아다니며 이 학자의 작업은 그를 놀라게 했던 무서운 재앙보다 훨씬 더 큰 흔적을 자연에 남겼을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척도는 타이가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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