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들은 어떻게 배울까? - 아기들이 말과 사물과 사람을 배우는 방법
앤드류 N. 멜초프 외 지음, 곽금주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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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제의 일기에는 부모라면 갖기 마련인 부모로서의 에고가 섬뜩할 정도로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다. 정확히 바로 그 점이 피아제의 연구에 그 위대한 힘을 부여하고 있다. 그림에서 자기 자신을 제거해 버림으로써 그는 아동의 마음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명쾌한 시선을 갖게 되었따. 그러나 어른들, 특히 부모는 아동들의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현실이다. 피아제는 이 점을 과소평가함으로써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쳤다. (34)

걸음마 시기의 유아들은 어른들을 미치게 만들 작정인 것이 아니라 단지 어른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다. 아마 이 점을 알면 마음이 좀 누그러질 것이다. 미운 두 살과의 실랑이는 으레 부모의 폭발로 이어지는데, 그러나 그에 따른 아기의 눈물은 진짜 눈물이다. 그 눈물에는 미운 두 살의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는, 다른 사람을 파악하려는 욕구와 그들과 잘 지내고 싶은 욕구 사이의 정면충돌이 담겨 있다. (58)

그런데 아동들은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말할 때나, 타인의 마음 상태를 추측할 때나 똑같은 실수를 범한다. 아동들은 마디 자기 자신과 모든 타인의 마음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 하나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타인들의 마음보다 조금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흔히 인간은 타인을 자기 자신과 비교해 봄으로써 타인에 관해 학습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은 인간은 타인들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관하여 학습하기도 한다. (69)

최근의 연구는 이와 같은 그림을 변화시킨다. 욕망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며, `유대`는 결정적 시기에 단 한 번 일어나서 영속되는 사건이 아니다. 감성이 지식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감성을 인도한다. 부모 자식 사이의 관계도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쌍방이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해 감에 따라 발달하고 변화한다. (70)

언어 문제에 대한 촘스키의 대답은 `외부세계 문제`와 `타인의 마음 읽기 무제`에 대한 오늘날의 대답과 많이 닮았다. 인간은 감각 정보를 받아들여 그것을 사물의 표상으로 바꾸고 얼굴 표정을 감지해서 그것을 감정의 표상으로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듯이, 연속되는 소리를 감지해서 그것을 의미의 표상으로 바꾸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듣는 연속적인 소리를 일련의 생각으로 번역할 수 있게 해주는 한 벌의 암묵적인 규칙들을 가지고 있다. (131)

어른은 선생이자 연구 대상이다. 어른들의 말은 그 언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를 알려 주는 유일한 자료다. 그리고 이 탐색적에서 아기들의 목표는 어른들의 언어에 대해 알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133)

왜 각 언어의 사용자들은 소리를 다르게 듣고, 다르게 발음하는가? 귀와 입은 세계 어느 곳이나 똑같다. 다른 것은 뇌다. 특정 언어에 노출되어 온 경험이 뇌를 자극하고 마음을 형성하고, 소리를 다르게 자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다시 각 언어의 사용자들로 하여금 소리를 다르게 생성하도록 이끈다. (136)

생후 6-12개월 사이에 아기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우리는 여기서 패트가 말한 `원형소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기들은 영어에서 다양한 r소리를 들은 후에 r의 추상적 효상, 즉 r의 원형소리를 발달시킨다. 새로운 소리를 확인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 새로운 소리를 기억 속에 저장된 모든 원형소리들에 비교해 본 다음 가장 잘 합치되는 소리를 집어낸다. 일단 이러한 작업이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면, 우리는 소리를 듣는 방식을 왜곡시켜서 실제로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보다 기억 속에 저장된 원형소리와 비슷하게 만든다. (140)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주 본 사물을 그려 보라고 할 때, 이를테면 집 그림을 보여 준 다음 기억을 떠올려서 똑같이 그려 보라고 할 때 벌어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를테면 보여 준 그림에 굴뚝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굴뚝을 그린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 집을 `집`으로 부호화해 놓았기 때문에, 기억에서 그림을 떠올릴 때 기억 속의 집의 원형이 맞추어서 그림을 왜곡시키는 것이다.우리는 좀더 복잡한 분석을 통해서 우리의 말소리의 원형이 정확히 어떠한지, 또 그에 맞추어 들은 것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입증할 수 있다. 우리의 원형소리들은 우리 언어에 맞게 소리들을 `거르며,` 그 바람에 우리는 다른 언어가 가진, 서로 구분되는 소리를 구분해서 듣지 못하게 된다. 패트의 실험은 원형소리가 생후 6-12개월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141)

언어는 학습될 뿐만 아니라 발명된다. 아기들은 이름과 사물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흡수하는 것만도 아니며 어른들의 단어 사용을 모방하는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아기들은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기끔 언어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한다. 사라짐 혹은 실패를 표현할 하나의 단어가 필요할 때 아기들은 `all gone`이나 `uh-oh,` 심지어 `oh bugger`까지도 거리낌 없이 가지고 온다. 또 모든 동물들을 지칭할 하나의 단어가 필요하면 `멍멍이`를 끌어다 쓴다. (150)

이 타고난 프로그램에는 인간이 많은 것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훌쩍 뛰어넘는 큰 의미가 있다. 감각이 입수한 소화되지 않은 날 정보, 즉 `와글거리는 혼란`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세계에 대한 이해를 얻는가, 하는 질문은 늘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왔다. 아니, 그보다 먼저 어떤 종류의 감각들에 주목해야 할지를 어떻게 아는가? 그런데 아기들은 인간이 절대 날 정보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와글거리는 혼란` 따윈 애당초 없다. 출발 지점에서부터 인간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을 콕 집어서 선택할 수 있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빛과 소리의 파동을 사람, 사물, 언어로 번역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187)

타인의 영향과 관련된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은 의미가 큰 행동일수록 거의 전적으로 비의도적 행동이라는 점이다. 부모가 아기를 모방하거나 모성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도된 행동이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어른들이 아기를 대하는 본능적인 행동과 아동들이 어른을 대하는 본능적인 행동이 결합되어 아기들의 효육적인 학습이 가능해진다. (212)

과학이 주는 한 가지 이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의심이다. ... 아기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인위적인 개입들이 좋은 말로 해서 쓸모없고 나쁘게 말하면 어른들과 아기 사이의 정상적인 상호작용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아기들은 이미 더 이상 영리할 수 없을 만큼 영리하며,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으며,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대단히 능률적이고 선택적이다. 그들은 주변의 현실세계를 학습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머, 그 세계 안의 것들을 놀이를 통해 학습한다. 또 그 대부분의 것들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놀면서 학습한다. 과학이 주는 커다란 이점은 사이비 과학에 대한 예방접종이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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