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소설의 근대적 전환 크리티카& 4
천핑위안 지음, 이종민 옮김 / 산지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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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5.4작가들이 비록 외국 문학작품을 번역한 적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외국어 수준은 서양소설의 명작을 감상하기에 충분하였다. 가령, 일본에 유학한 위다푸 ..., 게다가 국내대학의 외국어학과를 졸업한 평원빙 펑즈 천샹허 천웨이모 린루지 링수화 리진밍 등이 있었다. 국내 대학교의 중문과를 졸업하거나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졸업하더라도 하나의 외국어는 구사할 수 있었다. 5.4시대 작가들의 평균적으로 높은 외국어 수준, 당대 외국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 및 세계문학과 발맞추려는 강렬한 바람은 신소설가가 미처 따라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30년대 이후의 중국작가라 하더라도 필적하지 어려울 것이다.
외국어를 알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초 중국작가의 경우에는 외국어를 알고 외국문학 명작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서양소설의 기교를 직접 차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하였다. (44)

여기에서 중국소설은 새로운 단계를 접어들었고, 그로부터 새로운 물줄기로 진입하였다. .... 이러한 도약지점에는 자세히 식별해야 할 수많은 선구자의 족적, 길 잃은 사람의 그림자와 희생의 몸체가 있을 것이다. (54)

그 당시 번역가들은 원작을 개작하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원작)대로 번역하면 자신의 재능을 나타내기에 부족하다고 느껴, 종종 자기의 생각에 따라 창조하기를 좋아하였다. 량치차오는 원작에 따르지 않고 번역하는 것을 자신하여, 심지어 "(자신의) 의도대로 정비한 곳이 오히려 원문보다 뛰어난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우젠런은 독자들에게 책속의 의론과 해학은 모두 그 자신의 글로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위한 것이니 사족이라고 비방하지 말라"고 그 목적을 밝혔다. <소선원>의 역자는 책에 "약간 고친 부분이 있으며", "장회체를 모방하면서도 문언으로 서술하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얼토당토않게 "내용을 전달하는 데 부끄럽지 않다"라고 선전하였다. (100)

서양소설에는 인물이 항상 적지만 중국소설에는 인물이 항상 많다. 서양소설에서 서술되는 것은 대부분 한두 사람의 역사이지만 중국소설에서 서술되는 것은 대부분이 한 사회의 역사이다. ...... 우리나라의 정치와 법률은 비록 서양보다 못한 것이 많지만, 문학과 이상에 있어서는 항상 서양의 것으로 중국 민족의 것에 보태기를 바라지 않는다. (105)

신소설가들도 소설의 진실성을 대단히 중시하였으나 역사를 보는 눈으로 소설을 읽는 전통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이러한 진실성은 대부분 소재의 진실성으로 전락하였다. 정푸 린수가 역사사실을 증거로 사용하고 량치차오 우젠런이 스스로 비평어를 덧붙여 그 말의 근거를 설명하며 신소설가들이 신문 뉴스를 상용적으로 삽입하거나 외부인의 편지를 부각시키는 것은 모두 독자들을 설득하여 소설 소재의 진실을 믿게 하려는 것들이다. ... 5.4작가들은 양전성의 진실된 말과 허구적인 말의 구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지나치게 회상에 의지하거나 역사상의 실제인물에 대한 영사, 현실 속의 실제사건의 기록을 통해 진실감을 얻을 수 없다(역사소설은 다른 범주의 것이다). 5.4작가들이 강조한 것은 소설 표현의 진실이지 소재의 진실이 아니었다. 그래서 작가들은 이야기와 인물의 언어가 합리적인지에 대해 주의하였을 뿐 아니라, 제한적 서사와 순객관적 서사를 빌려 소설의 진실감을 부각시키고 전지적 서사가 조성하는 허위적인 감각을 제거할 수 있었다. (140)

독자들이 서양소설의 사건을 좋아하는 이상, 작가들도 서양소설의 구성을 중시하게 되었으며, 번역가들도 당연히 독자들의 취미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탐정소설이 가장 환영을 받아서, 최근의 출판부수도 제일 많았다." "약 1,100부 정도의 청말 소설 가운데서 탐정소설을 번역하거나 탐정소설적인 요소를 갖춘 작품이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원인은 바로 탐정소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중국독자들의 특수한 구미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미를 고치는 일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가들이 이러한 구미에 맞추는 것이 즉시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번역가들은 당시 사람들의 구미에 따라 서양소설을 선택하고 개작할 수밖에 없었다. (157)

"문예를 기쁠 때의 유화의 실의를 당했을 때의 소실거리로 여기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문학연구회의 주장은 전체 5.4시대 작가들의 창작태도를 대표할 수 있다. `인생을 위하여`를 주장하든 `예술을 위하여`를 주장하든 간에, 5.4작가들은 모두 `문학은 하나의 (신성한) 사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작가들은 `한번 손에 쥐고 있으면, 만사를 잊어버리게 하는` 소일거리 작품을 창작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소설의 세 가지 요소(이야기, 성격, 배경) 중 가장 오락성이 강한 것은 틀림없이 이야기일 것이다. 5.4작가들이 가장 미워하고 정면으로 공격을 가한 원앙호접파 소설은 바로 이야기의 신기함으로 독자의 흥미를 끌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5.4작가들이 소설의 이미지 혹은 정조를 높이 평가하고 이야기의 작용을 의식적으로 폄하한 사실이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174)

`세상의 똑같은 방랑인`인 이상 소설 속에서 가난한 지식인과 노동자 농민이라는 `제재`의 차이를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제왕장상과 제자가인을 버리고 평민백성을 선택하며, 작가의 평민의식의 각성에 따라 수반된 현상이 문학의 비영웅화이다. 만약 신소설의 반영웅화가 여전히 고관대작의 전기...적인 생애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의 기이함`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5.4소설의 비영웅화는 보통사람의 일상생활을 그 표현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일상적인 비극에 착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즘은 영웅이 멸망하는 특별한 비극이 적어지고, 매우 평상적이고 아무 일 없는 듯한 비극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176)

소설 구조의 중심이동은 서양소설의 유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신소설가들이 의역에 치중한 것은 실제 `나`의 구미에 맞추어 서양소설을 개조한 것인 데 반해, 5.4작가들이 직역에 치중한 것은 서양소설의 본모습에 충실하자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5.4작가들이 서양소설에 대한 오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5.4작가들도 자신의 기대시야에 근거하여 서양소설을 읽었다. 신소설가들이 대부분의 서양소설을 이야기화한 것이 오해라면, 5.4작가들이 대량의 서양소설을 심리화, 시화한 것도 실제로 또 하나의 오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후자의 오해가 전자의 오해에 비해 고상하고 중국소설의 진보에 더 유익했던 것에 불과하다. (178)

의식하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 두 세대의 작가들은 모두 동서문화의 충돌이라는 대 배경하에서 문제를 사고하며 의견을 발표하였다. ... 신소설가든지 5.4작가든지 모두 경향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었을 뿐, 이론적인 엄격한 사고는 하지 않았다. 5.4작가의 경우 급박하게 힘써야 할 일은 복고파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선명하게 들고, 서양문화의 학습...을 제창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절충이 시도되는 거시적인 이론도 강대한 관습적 세력 앞에서는 무기력하고 운동의 실제적인 진전에 불리하기 때문에, 5.4작가는 어쩔 수 없이 이론의 완정성을 희생하고 경향성을 최고의 지위로 추대하였다. (202)

유명한 작가가 되어야 고료를 많이 받을 수 있었지만 일반인의 마음을 끌기에는 충분하였다. 당시의 비용에 따르면, 1천 자당 2원도 상당히 매혹적인 것이었다. ... 이 때문에 많은 독서인들이 "서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려는 관념을 번역서를 투고하는 관념으로 바꾸게 되었다." ... 리보위안, 린수가 추천을 사절하고 벼슬을 구하지 않았던 것은 실제로 정치적인 원인도 있지만, 소설의 창작과 번역에 의지하여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문학사상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직업작가--이러한 직업작가도 소설가일 수밖에 없지만--가 출현하여, 만청소설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과거의 길이 끊어지고(1906년에 과거를 폐지한다) 소설이 이익을 제공해주자, 많은 독서인들은 이 보배로운 땅 위에 도금...을 하려고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213)

린수가 일관된 흐름으로 창조한 남녀는 순전히 역사적 사변의 방관자이다. 아마도 신소설가의 준역사소설적 특색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목격자와 방관자일 것이다.
......
정치인물을 빌려 사건 전개의 중심으로 삼으면 이야기 구성에는 편리하지만, 어떠한 정치인물이든지 활동영역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체 사변의 전과정을 표현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조우하고 여행하며 듣고 볼 수 있는 방관자를 매개로 삼는 것이 "역사적 사실을 엮어내고" 광활한 사회화면을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 바오텐샤오가 생각해내지 못했던 `서술의 주인공...`을 린수, 류어, 우젠런, 렌멍칭이 발견했는데, 바로 대시대의 견문을 제공하는 `여행자`였다. 류어와 우젠런이 창조한 역사화면은 점점 자질구레해지고 렌멍칭의 `여행자`도 일관된 흐름이 없지만, 린수가 소설 속에서 중심된 흐름으로 만든 남녀는 줄곧 성실하고 책임 있게 충분한 견문을 제공하였다. (314)

5.4작가에 영향을 끼친 사전전통의 영향은 주로 실록정신에 체현되어 있다. "반드시 실제 사건이 있어야" 창작할 수 있다는 예성타오에서, 여산을 묘사하려면 최소한 여산을 지나가야 한다는 마오둔, 기만하는 문예에 반대하는 루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론의 출발점이 같다. 도달할 수 있는 깊이는 당연히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예술의 진실성을 추구하는 정신은 오히려 상통한다. 현실주의 이론이 중국에서 장기간 독점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사전전통의 영향하에 뿌리 깊게 경직되어버린, 중국 독자들의 진실성에 대한 집착적인 추구임에 틀림없다. 어떤 때는 심지어 병적이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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