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탐험기 - 1870년에 나온 북방인류학 보고서이자 탐험문학의 고전
조지 케넌 지음, 정재겸 옮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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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 평에 이은 추가 메모

 

1) 근래 읽은 19C말-20C 초 북미 인디언에 관한 기록이나 2013-4년의 부탄 사람들에 대한 기록, <고결한 야만인>, 그리고 이책에 이르기까지 대륙과 시대를 불문하고 고결한 선주민들이 갖는 특징들이 있다.

  • 대단히 자립적이다. 개인으로서도, 종족으로서도.
  • 그럼에도 반드시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결혼을 한다.
  • 성별분업이 철저하지만 여성과 아이들은 대단히 존중한다. 특히 고아와 과부는 공동체의 특별 케어를 받는다.
  •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이들의 종교이다. 자신들의 삶 역시 철저히 자연의 일부로 여긴다.
  • 즉 자신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심지어 기쁘게 받아들인다.
  • 죽음이 자연을 구성하는 핵심적 단계임을 이해한다. 먹는 것 만큼이나 먹히는 것이 중요함을 안다.
  • 그리하여 자신의 몸이 먹히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 '적'이라는 개념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친구와 이방인(역시 친구이다)를 대단히 환대한다. 이 점이 '문명인'들에 의해 치명적으로 이용당한다.
  • 친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데 기쁨을 느낀다. 완전히 자발적으로. 이 점 역시 '문명인'들은 악하게 이용한다.
  • '문명인'으로부터 기만 배신 고문 살인 가난과 부를 배운 뒤에 개인은 타락하고 공동체는 몰락한다.       

 

2) 장기 여행을 함께 하기에 정말 좋은 인적 구성

  • 소령: 시간의 시련에 굴하지 않고 언제나 여행의 목적을 견지하며 미리 계획하고 성실하게 추진한다.
  • 도드: 현지 언어에 능하고 특유의 사교성으로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와 친구가 되는 사람.
  • 나: 일에서는 소령의 뒤에, 만남에서는 도드 뒤에 놓여 두드러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 몫의 일은 다 감당하며, 타고난 선량함과 미리 닦아 놓은 교양, 엄청난 체력과 관찰력, 그리고 미지의 것에 대한 샘 솟는 열정으로 (현지어는 거의 모르지만) 여행의 매 순간을 충실하게 음미하고 또 기록함. 

 

나는 누군가 이런 뱃멀리로 인한 몽상들을 글로 적어놓은 사람들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저녁때의 몽상`, `독신자의 몽상`, `해변에서의 몽상` 등 많은 몽상이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아는 한, 이런 뱃멀미를 겪으며 갖게 되는 몽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던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이상하리만치 무심하게 지나쳐온 부분으로 나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몽상 능력을 가진 열정 있는 작가에게 정중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작은 쌍돛배로 북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는 끊임없이 글쓰기 재료들을 제공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57)

나는 소령이 이 비정상적으로 긴 문장을 유창하고 우아하게 발음하는 것을 듣고는 지금까지 어느 재능 있는 사람에게도 결코 내보이지 않았던 감탄과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그가 처음 음식을 요청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인고의 땀방울을 흘렸을까를 상상해보니 나의 마음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런 언어를 결국 정복해야 하는 그의 타고난 운명에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만일 먹는 것과 같은 단순한 일에 그런 정도의 긴 발음을 요구한다면, 도대체 신학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더 심오한 문제를 다루는 데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상상만 해도 기가 질릴 뿐이었다. (83)

그런 다음 주무르며 마사지를 해대는데 마치 작정하고 나의 몸을 분리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그 20여 분 동안 내가 당한 고문 기술이 얼마나 다양하고 무자비했는지는 묘사하고 싶지 않다. 이리저리 굴리고, 발로 밟고, 찬물로 퍼붓고, 뜨거운 물로 화상을 입히고, 자작나무 가지로 채찍질하고, 벽돌같이 딱딱한 삼다발로 박박 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라고 계단의 맨 위쪽 가장 뜨거운 자리에 올려놓았다. 끝난 줄 알았던 나의 시련과 불행은 야외의 찬물 속에 맨몸으로 던져지고난 다음에야 끝났다. 나는 이를 덜덜 떨며 찬물 속을 빠져나와 옷을 입으러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입구에서 만난 소령과 나는 그곳으로부터 걸어나왔는데, 마치 육체와 정신이 따로따로 노는 것 같았다. (146)

부쉰은 유머 감각이 아주 뛰어난(?) 긍정적인 기질의 사람이었다. 그는 오늘 하루 내내 자발적으로 마부들의 모든 책임을 떠맡아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넘어진 말들을 일으켜 세우고, 위험 지역을 넘도록 도와주고, 의기소침해진 캄차달 사람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지치고, 추위에 떨고, 배고하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는 듯 웃으면서 그는 태연하게 자기 옷에서 물을 짜내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자기의 젖은 머리에서 물을 쥐어짜내어 그 물들을 수프 냄비 속에 넣었다. 페허 같은 유르트의 어두운 분위기를 비춰주는 그의 밝은 표정 때문에, 그리고 즐겁게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불행에 대해서도 웃을 수 있게 되었고, 또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고 스스로에게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159)

이들은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악령,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샤먼이나 사제 같은 종교인에게만 특별한 존경심을 보일 뿐, 그 밖의 어떤 것에도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세속적인 위계질서를 경멸감을 갖고 바라보는데, 만일 러시아의 황제 차르가 이들의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하더라도 차르는 단지 그 텐트의 주인장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216-7)

코략족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자연스런 종말로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았고, 또한 통상 그것을 아주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자기의 육체적 활동이 가능하고 소용이 되는 기간 이상으로 더 오래 살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 자들은 전체 마을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매우 공을 들인 살인의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며, 이후 그들의 사체는 화장되고 남은 재는 바람에 휩쓸려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
이런 관습들이 코략족 본래의 야만성에서 기인한다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단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자연스런 결과물인 것이며, 오로지 강인한 인간 본성들, 즉 부모 자식간의 사랑과 존경심, 형제간의 우애, 친구간의 우정, 생에 대한 집착과 사랑, 그리고 모든 만물이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252)

다리는 상자 속에서 움질일 수 없었고, 상체는 베개와 무거운 모피 등으로 꽉 끼어서 일어날 수도, 또 뒤집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저 썰매 몰이꾼의 처분만 바랄 뿐이었다. 만일 그가 급한 산비탈을 타고 가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눈을 감고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었다. 나의 썰매 몰이꾼은 14마리의 개들을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들고, 또 못이 달린 막대기 외르스텔로 수시로 제동을 걸면서 3시간 사이에 일곱 번이나 썰매를 뒤집어 놓았다. 썰매는 뒤집힌 채 질질 끌려가면서 눈범벅이 되었고, 내가 파보스카 안에서 물구나무 선 상태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얼굴에 맞고 있는 동안, 썰매 몰이꾼은 태연하게 담배를 피우며 산을 오르내리는 여행의 어려움에 잘 대처하고 있는 대견한 개썰매에 대한 명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267)

페트로파블로프스크를 떠한 이후로 우리의 주된 여흥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처음 100여 일 동안은 좋은 여흥거리 역할을 잘해냈지만, 우리의 머릿속 지식 자원이 점점 고갈돼 가면서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요즈음에는 이야기의 비평거리, 혹은 논쟁거리가 될 만한 그런 주제를 하나도 생각해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각자 살아온 인생사와 먼 조상의 삶까지도 아주 자세히 알고 있었다. 또한 우리는 사랑, 전쟁, 과학, 정치, 종교 등 모든 분야의 문제점들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왔으므로, 결국 논점은 그리스를 침입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군대 규모가 얼마였는지, 그리고 노아의 방주 시절에 홍수 규모가 어떠했는지 등의 세세한 주제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317)

나의 항의는 별 효과가 없었고, 나는 매 강의 시간마다 태양, 달, 지구 등을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 강의 시간은 이제 천문학 강의를 빙자한 축제가 되어버린 것이 분명해졌고, 나의 청중들은 매일 밤 오로지 태양계 전체를 먹어치울 생각만 하고 있을 정도로 너무 인기를 끌어서 천체 모형으로 쓸 재료가 떨어져버릴 정도였다. 결국 나는 빵과 기름 덩어리 대신 돌과 눈덩이로 천체 모형을 대체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원주민들의 천문학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점점 떨어지더니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청중도 보이지 않았고, 나의 강의도 끝이 났다. (319)

주인장의 정성어린 환대로 곧 우리는 편안해졌고, 10분이 안 되어 도드는 신부와 함게 보드카를 마시며 농담을 나누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우리의 힘들었던 모험에 대해 현란하고 능숙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신부는 만난 지 몇 분 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10년 지기인 것처럼 허물없이 대해주고 있었다. 이것이 도드의 특별한 재능으로 가꿈 나는 질투심이 나곤 했던 것이다. 5분 만에 보드카 몇 잔의 도움을 받아 그는 엄격하고 예식적인 그리스 정교의 나이든 주교를 폭풍과 같은 재담으로 무너뜨렸고, 그러는 동안 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말재주`란 정말 위대한 것이었다.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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