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 - 삶의 속도를 선택한 사람들
김남희.쓰지 신이치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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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먹해진 가슴으로 돌아오는 길, 바닷가 마을은 이미 고요하게 잠들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사회운동가들조차도 장애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어. 사랑을 말하면서도 결국 무엇무엇을 할 수 있기에 사랑한다는 거지, 그저 이렇게 존재만으로도 사랑한다는 게 아니었어. 일본도 한국도 그런 조건을 전제로 한 사랑만 해왔기 때문에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거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100퍼센트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게 미래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할 거야." (74)

"사람들은 때때로 무척이나 애를 써서 자기에 대해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말해준다." (113)

내 애독서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된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1986)이 있다. 무려 이십오 년 전에 쓰인 이 책에 이끌려 머뭇머뭇 한국을 여행한다는 자각이 내 안에 있다. 아바라기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신기해한다는 이야기가 이 책 첫머리에 등장한다. ... "영어를 배우고 있어요"라든가 "운전을 배우고 있어요"라면 누구나 `왜`를 묻지도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이바라기는 이런 반응이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인들의 의식에서 동양을 몰아낸 것과 연관이 깊다고 말한다. 심지어 한국은 바로 이웃나라인데다 역사상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깊은 인연이 있지 않은가. "어학 하나를 보더라도, 민중이 국가의 방침을 넘어서지 않고 오늘날에 이른 안이함이 결과적으로 의아한 질문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리라." (131)

안동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외지인들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이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했는지를. 솔직히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이렇게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필요로 하는 전통이 원형대로 지켜져야만 하는지에 대해. 다른 방식은 없는 걸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예찬하지만 겨울의 추위를 견딜 자신이 없고, 한복의 색과 선을 곱다 여기지만 그 불편한 옷을 입고 돌아다닐 자신은 없으니. 나는 여전히 여행하는 사람으로, 이방인으로, 전통문화를 들여다볼 뿐이다. 당연히 내 시선도, 애정도 지극히 표피적이고 제한적이다. 나와 전통적 삶 사이의 화해는 그렇기에 위태롭고 피상적이다. 진정한 화해는 그 가치의 일부라도 내 삶에 구현하며 살아갈 때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166)

조박이 출연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여성모임 `생명`을 이끄는 제일 조선인 박경남씨. 이라크에서 잡힌 일본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애쓰는 모습을 보던 그녀는 문득 두려워졌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줄 의무가 있는데 내가 이라크에서 인질이 되면 일본도, 한국도, 북한도 구해주지 않을 거야." 그런 그녀를 꼭 안아주며 친구들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우린 친구잖아. 우리가 지켜줄게."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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