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 개정판 펭귄클래식 안나 카레니나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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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블론스키는 자유주의 신문을 구독했다. 그 신문은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자유주의 성향을 띠었다. 그는 학문이나 예술, 정치 그 무엇에도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신문이 견지하는 시각을 굳게 지지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의견을 바꿀 때에만 시각을 바꾸었다. 아니, 그가 시각을 바꾼다기보다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시각이 바뀐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리라. (46)

그가 속한 사회에 자유주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보수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수보다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유주의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러시아의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오블론스키는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돈은 단연코 부족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결혼은 거루한 제도라면서 ..., 아닌 게 아니라 가정생활은 오블론스키에게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의 성정에 반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가며 아내를 속이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아니 그보다는 암시하기를, 종교란 그저 미개한 사람들에게 씌워진 굴레일 뿐이라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짧은 예배라도 설교를 듣다 보면 오블론스키는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마는 것이었다. (47)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반이 오블론스키의 친척이거나 친구였다. 이 세상의 권력자이거나 권력자가 될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태어났다. 관직에 있는 사람들 3분의 1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노인들로, 그를 어릴 때부터 알았다. 다른 3분의 1은 그를 `너`라고 부를 정도로 친했고, 마지막 3분의 1은 그와 잘 아는 사이였다. 직위나 임대로, 이권 같은 세상의 좋은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였으니, 그를 외면할 리가 없었다. 오블론스키도 좋은 자리를 얻으려고 특별히 애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거절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감정 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인데, 성정이 원래 선량한지라 그러는 법이 없었다. (60)

모스크바의 한 관청에서 부서장 자리를 삼 년째 맡고 있으면서 오블론스키는 동료들과 부하 직원들, 국장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는 오블론스키의 자질이 큰 역할을 했다. 첫째,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사람들에게 무척 겸손했다. 둘째, 그가 읽는 신문에서 가르치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상대방이 누구이고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모든 사람을 자신과 대등하게 대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무심했다. 그 결과, 절대로 일에 몰두하는 법이 없었고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다. (61)

"내가 옛날부터 좋아한 기도문에 이런 말이 있어. `잘한 일 때문에 나를 용서하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나를 용서하십시오.` 그게 단 하나 위안이야. 그걸로만 그녀는 날 용서할 수 있을 거야......." (100)

그녀는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짧은 시선에서 브론스키는 억눌린 활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활기는 그녀의 얼굴에서 춤추었고 반짝이는 눈 사이에서 너울거렸으며,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알아볼 듯 말 듯한 미소 속에서 감돌았다. 어떤 충만한 감정이 존재를 채우고 넘치는 듯, 그녀의 뜻과 상관없이 눈길의 반짝임과 미소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에 나타났던 환한 빛을 일부러 껐다. 하지만 그 빛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보일락 말락 한 미소 속에서 다시 켜졌다. (141)

키니는 매일 안나를 보고 흠모하면서 그녀가 보라색 드레스를 입으리라 상상해 왔다. 그러나 검은색 드레스 차림의 그녀를 보자 키티는 자신이 그녀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까달았다. 완전히 새롭고 예기치 않은 안나를 발견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해했다. 안나는 보라색 옷을 입을 리가 없음을, 그녀의 매력은 늘 옷치장을 초월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옷차림은 전혀 눈에 띌 리가 없다는 사실을.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검은 드레스도 그녀가 입고 있으니 눈에 띄지 않았다. 드레스는 그저 액자에 불과하며 안나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세련된, 그러면서도 명랑하고 활기찬 그녀....... (172)

"내 생각에는......," 안나가 벗은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세상의 머릿수만큼이나 많은 이성이 있듯이 마음의 수만큼이나 사랑의 종류도 많으리라 생각해요."
블노스키는 죄어드는 가슴을 안고 안나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 말을 듣자 그는 위험을 넘긴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274)

......, 그는 비이성적이고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와 맞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카레닌은 인생과 대면한 것이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대면했고 이는 그에게 설명할 길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카레닌은 인생을 반영하는 일을 담당하는 관청 일을 하며 살았다. 인생 자체와 마주칠 때마다 그는 옆으로 물러섰다. 그는 흡사 낭떠러지에 걸린 다리를 침착하게 건너가던 사람이 갑자기 그 다리가 끊겨 있으며 거기에 심연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게 된 사람 같았다. 이 심연은 바로 인생이었고 다리는 카레닌이 살아온 인위적인 삶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다른 누구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고는 공포를 느꼈다. (282)

"... 이게 평범하고 속된 사교계 치정이라면 날 가만 내버려 뒀을 거야. 하지만 뭔가 다르고, 장난이 아니고, 이 여자가 내게는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걸 그들도 느끼는 거겠지. 그래서 이해가 안 되고 안타까울 테고. 우리 운명이 어떻든, 또 어떻게 되든 우리는 이미 일을 저질렀고 후회하지 않아." 그는 `우리`라는 단어에 자신과 안나를 묶어 말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치겠단 말이지? 행복이 뭔지 이해도 못하면서......, 이 사랑이 없이는 우리에게 행복도, 불행도, 삶 자체도 없다는 걸 모르면서 말이야.` 그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355)

이 아이의 존재는 늘 브론스키에게 이유 없는 혐오감이라는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데 최근 자주 이를 경험하곤 했다. 마치 브론스키와 안나에게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바다를 항해하는 자가 느끼는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 나침반에 따르면 가야 할 곳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파탄을 맞으리라 여겨지는 감정.
인생에 대해 천진난만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는 나침반같이 그들이 얼마나 일탈했는지를, 그들이 알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일탈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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