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철학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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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사유란 숱한 무관심과 모략, 어리석음에 맞서 싸워야 했던 특정 시대, 특정 지역 사람들의 삶으로 엮어낸 옷감 같은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그 옷감에는 그들의 피와 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7)

철학이란 생각을 한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며, 생각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들을 체에 걸러 꼼꼼히 검토하여 지속 가능한 견고함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11)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함과 인간미의 원천은, 우리의 정신과 마주치는 이 세상, 우리의 정신을 통해 구축되는 세상, 우리의 정신이 께닫고 만들어내는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그의 신뢰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상황들이 보여주는 그 한없는 기묘함 속에서 이들을 조직화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애썼다. 근본 원리를 파악하게 해주는 것,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의 다양성을 미리 정해진 틀 속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프로그램과 예측, 확실성과 관리, 경영과 제어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앎과 행동은 어느 정도의 자유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자유의 공간. 유희. (50)

고대 말기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통해 이루어진 이 사상적 전환은 바로 진리가 인간 내면의 문제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사고가 불가능했다. 장 피에르 베르낭이 밝혔듯이,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들의 사고와 행동은 모두 외부를 향해 있었다.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탐구하는 일은 없었고, 내면의 감정이나 저마다의 주관성, 자기만의 개인적 특수성 따위를 고민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델포이 신전의 그 유명한 경구 `너 자신을 알라`는 `너의 내면을 탐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는 필멸의 인간이고,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어다`라는 뜻이다. 즉 `너-인간의 조건을 알라`는 뜻이지, `너의 개인성을 탐구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81)

"사랑의 대상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98)

도덕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러한 입장은 분명 마키아벨리 사상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 때문에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는 분의 아니게 어느새 `권모술수`와 같은 뜻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철저한 비관론은 인간 열정의 힘과 그 끊임없는 충돌이 가지는 힘을 백일하에 드러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사상은 이상(사회)이라는 유토피아가 낳은 폐해, 진보라는 신기루, 아무리 인간적인 이데아에서라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숱한 환상들을 치유할 수 있는 그 나름의 탁월한 정신요법이다. (112)

"공동생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들은 모두 쓸데없고 하찮다는 것을 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후...."
그 결과 스피노자는 사유를 통해 무의미하지 않고 하찮지 않은 행복을 찾으리라 기대하며 사유에 헌신할 것을 요구했다. 그 길은 엄격한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기나긴 여정일 수 있지만, 성공이 예상되는 길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에티카>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내용이다. "아름다운 모든 것은 희귀한 만큼 어렵고 힘든 것이다." (167)

"단 하나의 미덕은 정의이고, 단 하나의 의무는 행복해지는 것이며, 단 하나의 명제는 생명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220)

하지만 이성이 우리 속의 이 원초적 움직임을 막아버린다면, 우리는 철저히 비인간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루소는 철학자란 자기 집 앞에서 동포의 참수형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라고 넌지시 암시한다. 이성에 의해 자연의 목소리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루소를 격분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그의 극단적 비타협성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즉 그는 무감각, 냉혹함, 차가운 가슴을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226)

이렇게 되면 원인이라는 사고 자체가 의문시될 수 밖에 없고, 결과라는 개념 역시 중요성을 잃고 만다. 원인과 결과에 해당하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흄은 필연적 결합으로서의 인과 관계 대신, 우리의 이성이 습관적으로 A현상 뒤에는 B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습성과, 사물에 내재된 필연성, 즉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그 필연성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극단적인 도약을 통해서만 우리를[는] 그 필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246-7)
......
이처럼 흄이 문제 삼는 것은 과학적 진리라는 사고 자체다. 우리가 가진 것은 확신이라기보다는 습관이다. 우리의 삶은 확실한 지식보다는 관례와 인습에 기초하고 있다. (248)

정치 분야에 있어서도, 민주적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이행이 일어난다. 민주적 혁명의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기회와 위험들을 일찍이 간파했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마르크스는 진리 사유의 정치적 조건들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이론만으로는 진리 획득의 열쇠를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사상이다. 진리의 표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현실 역사의 진화 과정, 사회 경제적 대립 관계들, 권력 투쟁, 지배 피지배 계급의 충돌 등이라는 것이다. (256)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칸트는 개인이 `자기 이성을 공동으로 사용`할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위협이나 처벌의 위험 없이 자신을 표현하고, 검열 받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공개하며, 필요하다면 권력이나 종교 단체도 비판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 의견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이성의 공용화가 목표로 하는 바이다. 따라서 철학자들의 입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이는 인간 이성에 재갈을 물리는 행위이다. (271)

헤겔이 모순이라는 것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헤겔 이전의 철학은 모순을 불가능의 표지로 간주했다. 즉 모순적인 것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헤겔을 통해 모순은 현실의 지표로 등장한다. 헤겔에게 있어 현실적인 것은 모순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 즉 이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284)

하지만 신이란느 사고를 거부한 니체의 투쟁적 입장과, 계몽주의 시대의 무신론적 유물론자들의 입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후자의 경우, 낙관적이고 어느 정도는 순진하게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인류가 금방이라도 두려움과 미신과 공포로부터 해방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신을 죽인 인간`을 `인간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상의 물질적 육체적 삶이 주는 무한한 풍요로움을 재발견하기도 전에, 지금까지 존재한 환상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신이라는 환상을 상실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끔직하고 무시무시한 불행으로 느껴직 때문이다. (326)

`영겁회귀`란 동일한 사건들이 주기적으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지를 시험하기 위한 하나의 테스트이다. 즉 `뒤따라 일어날 모든 사건들이 무한히 그리고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할 만큼 나의 욕망이 그만큼 강력한가?`라는 문제이다. 니체에게 있어,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이 무한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331)

진리의 순진한 사용을 경계하는 것은 하나의 입장이다. 진리 없이도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역시 또 하나의 입장이다. 오늘날의 철학자들은 진리를 만들어내는 자들과 그것을 파괴하는 자들로 나누어지는 것일까? 이것 역시 가능한 하나의 가설이다.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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