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야만인 - 아마존 야노마뫼 족과 인류학자들, 두 위험한 부족과 함께한 삶
나폴리언 섀그넌 지음, 강주헌 옮김 / 생각의힘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흔히 과거의 사회가 평화로웠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이 몽상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게다가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런 상상은 더욱 유지되기 힘들다. 먼 과거, 예컨대 석기시대 사회의 삶은 무척 불확실해서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때 느닷없이 공격하는 이웃은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과거 사회가 평화로웠을 것이란 생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인류사의 먼 과거는 오히려 토머스 홉스가 생각했던 사회와 유사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수명도 짧고 간악하고 야비한 삶이었을 것이다. (14)

하지만 인류학은 이런 과학보다 종교와 더 유사했다. 실제로 문화인류학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학파의 조직적이고 지적인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를 위협하고 억누르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저질렀다고 비판하는 친목단체로 보아야 한다.
요즘에도 많은 문화인류학자가 이런 권위적인 조직에 조심스럽게라도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조직에 '나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이 새롭게 찾아낸 결과를 신중하게 선택한 단어들로 애매하게 발표하기 일쑤이다. 기존 지식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사상 경찰'이자 인류학계의 아야톨라들에게 미움과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다. (43)

내가 야노마뫼 족의 땅에서 보았던 가장 슬픈 의식이었다. 내가 그들을 잘 알았고 그들과 나를 동일시한 까닭에 그 의식에 깊이 감동하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로코이웨와 몇몇 남자가 죽은 친척을 위해 무척 구슬픈 노래를 애처로운 목소리로 울먹이며 나지막이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해먹에 누워 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지만 녹음하지도 않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노랫말을 적지도 않았다. 한 남자가 큰 소리로 나에게 왜 평소대로 행동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야 부리히 아히"라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너무 슬퍼서 내면의 존재가 얼어붙었다."라는 뜻이었다.
마을 곳곳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내 대답을 들었던지 고맙다는 뜻의 눈길을 던졌다. ...... 내 해먹과 가까운 곳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나를 건드렸고, 우리는 함께 울었다. (123)

언젠가 내가 야노마뫼 어에서 '부인'을 뜻하는 단어는 여성 교차사촌도 가리키지만 여성 평행사촌은 교차사촌과 구분하며 '누이'를 뜻하는 단어와 똑같다고 말하자, 코코 신부는 깜작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샤보노에 가서 칼리토라는 야노마뫼 족 청년에게 물어보자고 우겼다. 칼리토가 내 말을 확인해주자 코코 신부는 거의 기절할 것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코코 신부는 당시 거의 10년을 야노마뫼 족과 함께 지냈지만 그런 풍습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131)

나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전술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좋습니다. 마바카 강의 원류 근처에는 라하라[야노마뫼 족 전설의 동물]가 있을 겁니다!"라고 인정했다. 대신 라하라는 다른 지역에도 존재하며, 내 고향 미시간에서도 많은 라하라를 보았고 산탄총으로 적잖은 라하라를 죽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 그리고 내 능력을 과시하려고 라하라의 해부학적 특성까지 거론했고, 내 오른쪽 귀밑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바로 여기를 쏴야 합니다! 목을 맞춰야 합니다. 머리 바로 아래! 여기가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여기를 맞추면 라하라도 끝납니다!" 젋은 안내인들은 내 말을 유심히 듣고는 다시 기운을 되찾은 듯했다. 근심의 기운도 사라져 보였다. (173-4)

크리히시웨: ......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도끼를 천천히 치켜들었지! (그는 실감나게 그 장면을 실연해 보였다.) 내가 그 다음에 무얼 했는지 빨랑 물어봐!
새그넌: (흥분하고 궁금한 척하며 해먹 끝자락에 걸터앉아) 다음에 어떻게 하셨어요?
크리히시웨: ...... 도끼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후애의 두개골에 깊숙이 묻었지! 그게 내가 다음에 한 거야. 얏! 얏! (그는 말을 멈추고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다음에 무얼 했는지 물어봐! (448)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나는 내 현장 연구에 대한 살레지오회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살레지오회가 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살레지오회가 제공한 산탄총에 의해 많은 야노마뫼 족이 죽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고, 그들은 내가 그런 사실을 당국에 보고할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내가 학계에서도 이단자이고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살레지오회는 내가 진화론을 지지한다는 것을 인간이 원숭이와 유인원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몰고 갔다. 살레지오회는 내가 야노마뫼 족을 원숭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야노마뫼 족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486)

과학진흥협회의 토론회에서는 윌스느이 발표가 있기 전부터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한 학자가 몽골족 같은 유목민을 다룬 해밀턴의 최근 논문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그러자 청중석에서 한 반론자가 해밀턴에게 논문의 주장을 철회하라고 비난하듯 요구했다. 워낙에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해밀턴은 점잖게 "나는 논문에서 주장한 것을 변함없이 지지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리처드 도킨스도 정치적 의도가 담긴 공격을 받았다. 놀랍게도 도킨스는 모두가 자기를 볼 수 있도록 의자 위에 올라서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이 얼마 전에 발표한

마침내 윌슨이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 그리고 연단 앞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논문을 꺼내 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단 바로 앞의 두 열에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젊은이들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윌슨을 거칠게 떠밀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심지어 그들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주전자를 집어들어 윌슨의 머리에 쏟아부으며 저속한 욕을 계속 퍼부어댔다. 그러자 사회자이던 올랜드가 "그만해! 멈춰! 나도 너희 편이다. ...... 나도 마르크스주의자다! 하지만 이런 짓은 용납되지 않아!"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 올랜드의 호소도 소용이 없었다. (496)

그러나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대한 존중이 1960년대 말부터 많은 대학에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상가들, 특히 데리다와 푸코가 여러 사회과학 분야의 교육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과학적 접근과 양립할 수 없었고, 과학적 접근을 적대시하기도 했다. 외적 세계는 관찰자와 관계없이 실체를 갖는다는 개념 자체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게다가 과학적 관점은 가난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소수민족과 여성을 사회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놓으려고 고안된 착취적인 수단으로 여겨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인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을 발표하는 관찰자를 좋지 않게 생각하며 인종차별자, 성차별주의자, 생물학적 결정론자, 심지어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한마디로, 객관적인 관찰자가 정치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자료를 조작해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