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잃어버린 세계 - 캄브리아기 폭발의 비밀을 찾아서
마틴 브레이저 지음, 노승영 옮김, 이정모 감수 / 반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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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휴식을 취한 뒤에 거벽 기슭에 있는 암석에 기어올라, 망치와 정에 생사가 달려 있기라도 하듯 바위를 쪼았다. 어떤 면에서는 실제로 그랬다. 우리의 직업적 생사가 달려 있었으니까. 고생물학자로 40년을 지내는 동안 이렇게 조화로운 순간이 있었던가. 애수가 느껴질 정도였다. 덩치가 크고 대체로 유쾌한 스웨덴의 지질학자 곤잘로 비달과는 몇 달 전만 해도 날선 대화를 주고받던 터였다. 하지만 화석의 메카인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잊고 암벽에서 한 팀이 되었다. (91)

이번에도 카드에 비유하자면, 캄브리아 산사태는 카드 게임이라기 보다는 카드로 만든 집에 가깝다. 카드를 쌓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로 집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이것은 진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사태인지도 모른다. 어마어마한 산타새가 일어나자 몇몇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게임 규칙이 바뀌었다. 이 추측에 일말의 진실이 있으려면, 초기 화석 기록에서 '전진(前振)'의 증거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161)

'모파오티오프'하면 혹여 러시아에서 마지막 차르의 시대에 활약한 안경 쓴 과학자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이름의 과학자는 없다. '모파오티오프Mofaotyof'는 '내 가장 오래된 화석이 네 가장 오래된 화석보다 더 오래된 거야My Oldest Fossils Are Older Than Your Oldest Fossils'의 약자다. 요컨대 모든 과학자는(모든 언론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제한된 자료로부터 최대한 대담한 가설을 세우려고 한다. ... 하지만 대담한 가설은 연구비 수요 증가로 인한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대담한 가설을 내놓아야 연구비를 따낼 수 있고, 논문을 발표하여 주목받아야 학문적 경력을 쌓고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213)

지금의 세계와 지금의 생물권을 오래전 과거에 대입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캄브리아기 이전의 세계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차라리 머나먼 행성과 더 비슷하다. 이제 우리는 신중을 기하며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 동물 이전의 세계뿐 아니라 동물 이전의 세계에 대한 생각의 진화를 살펴볼 차례다. (228)

이 논쟁, 그리고 달리의 꾀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가 만족스러운 인과관계를 끊임없이 추구함을 나타낸다. 우리는 늘 단순한 설명을 찾는다. 출근길 교통 체증은 왜 일어나는 걸까? 어머니께서 왜 감기에 걸리셨지? 아버지는 왜 승진하지 못하셨을까? 이런 현상은 모두 복잡계에서 비롯한다. 복잡계에서는 인과관계를 예측할 수 없으며, 이것은 우리를 근심케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단순한 설명을 찾으려는... 자연스럽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성향이 있다. 신문은 그런 예로 가득하다. 달러 가치가 폭락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왜 우승에 실패했는가? 심지어 내 전공 분야인 지구과학도 이런 타블로이드판 신문 같은 식의 사고 방식에 빠지기 싶다.
이것이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예는 한창 뜨고 있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분야다. ... 나도 누구 못지않게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논리를 전개하다가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 상승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인지 결과인지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56)

수수께끼의 열쇠는 생명의 흔적이 아니라 찾아내기에 있었다. 읽어버린 세계로 건너가려는 연구자는 거대한 간극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 간극을 '가시성 역치'라고 부르자. 이 역치를 기준으로 '맨눈으로 볼 수 있어서 찾아낼 수 있는 젊은 세계'와 '아주 작아서 찾아내기 힘든 오래전의 잃어버린 세계'가 나뉜다. 따라서 이 간극을 뛰어넘으려는 지질학자는 가장 파괴력이 큰 무기를 장착해야 했다. 바로 간유리 렌즈다. (275)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학의 영역에서 이보다 더 거창한 물음은 없다. 의심을 검증하는 데 둘도 없이 알맞은 체계인 과학은 좋은 질문을 늘 환영한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설명을 찾는다. 이 '모든 질문의 어머니'는 그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딸들을 줄줄이 생산한다. 지구상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은 쉬웠을가 어려웠을까? 우주에서 생명체가 있는 행성은 지구뿐일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은 답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서,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채 숱한 모순을 낳았다. (293)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두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두 사건에서 가장 큰 실수는 과거의 생물이 오늘날 심해에서 살아가는 생물과 비슷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패러다임은 과학의 지도이며, 우리의 물음에 형식과 내용을 부여한다. 하지만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데 실패한다면, 지도는 아무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더라도 사정없이 버려질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간유리 렌즈에서 전자 현미경으로, 탁상공론에서 인공위성 촬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검증 방법은 날이 갈수록 나아지고 정확해졌다.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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