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론 그가 `제3제국` 시절 유린당한 작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작가든, 자기 작품에 가해진 오용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레싱이나 괴테가 휠덜린처럼 이용당하지 않은 것이 그저 우연일 리는 없다. -43쪽

그렇지만 이 일이 도대체 왜 분투해야 하는 일인지, 한편으로는 기막히고 어이없다. 계몽이 뭔지, 근대사가 어땠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나 렘브란트, 베토벤 같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풍문만 듣고 리하르트 바그너가 나치였고 유명한 나치 군가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를 작곡했다고 믿는 이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이네를 피고석에 앉히고 들었다놨다 하며 헐뜯어대는 꼴 아닌가. -83쪽

"예술은 무엇을 남기는가?" 그의 답은 명쾌했다. "우리, 변화된 우리를 남긴다." -87쪽

100년 전의 이 단편에서 많은 이들이 거듭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니,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느라 너무나 힘겹거나 끝내 찾지 못하는 사람들, 상궤에서 벗어나 있고, 그런 스스로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다. 깨달았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에도 의심을 멈추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많은 것을 알기에 더 많이 괴로운 사람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 이렇게 토마스 만의 이 단편은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성서가 되었으니, 이들은 마침내 그럭저럭 마음 붙일 피난처, 어쩌면 고향을 얻었다. 바로 문학이다. -185쪽

줄곧 자기 자신에게 몰두했던 그는--세간의 견해와 달리--사회나 사회적인 문제 제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념에 특별히 흥분하기는커녕 아예 흥미도 없었고, 이데올로기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고, 강령들은 지루해했다. 많은 독일 드라마작가들과는 달리 프리슈는 민중의 교육자 노릇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의 최고 극작품인 단막극 <비더만과 방화범들>을 그는 "교훈 없는 교훈극"이라고 불렀다. 그랬다. 그는 아무런 교훈도, 아무런 해답도 내놓지 않았다. -28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