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아이디어 (양장)
아마르티아 센 지음, 이규원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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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 후 메모

 

* 이 책에서 내가 받아들이는 것 

1) 선험적 이상태 상정에 애쓰지 말고 현실에서('사회적') 진행중인 복수의 실제 과정들을 비교하자는 것 + 가장 응급한 부정의를 제거--아님 최소한 경감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것 --> 이런 현실주의 굿!
2) 니티와 니야야의 '조화' (난 니티도 아주 중요하다고 보므로)
3) 민주주의를 현대 서양의 산물로 보지 않고, 비서양의 지적 전통에서 그 맥들을 찾는 노력 (그러나 그럼 그런 전통이 왜 끊어졌는가(알려지지/계승되지 못하고 매장되었는가)를 또 한편으로는 생각해야)을 기울인 점 (이 노력은 그러나 중국까지도 오지 닿지 못하고 중단됨. 센의 지역성이 거기까지는 못 미치는 거지. 그리고 한국의 지적 전통에서는 그 무엇이 21세기 오늘-여기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가 몹시 궁금함--이건 남에게 의존해선 안 되고 내가 파나가야겠지만...)
4) 앞의 모든 것과 연결되는데, 나는 현재 진행중인 현실태들 중에서 '좋은' 미디어를 찾아 지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정말로 couldn't agree more.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뛰어나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미디어를 지원 중이며 형편이 되는 한 지원을 확대해 갈 것임.
5) 최종적 결과가 아니라 포괄적 결과를 선호하는 것 --> 이는 곳 평가 방법의 변화를 요구함!
6)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면 진정 넓은 시야 확보와 상호적 관계성(의무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 --> 지식/의견/이데올로기의 지역성에 대한 지적은 너무나 옳은 말! 그러나 그것을 벗어난다는 것은 그저 끊임없는 개혁과 탈피의 과정일 뿐 (센은 이걸 공적추론의 중요 일부로 보고 있음)

 

* 나랑 안 맞는 점
1) 롤스의 정의론이 뭔지 모름. 이에 대한 나만의 견해가 생긴 뒤에 이 책을 읽어야 순서가 맞음.
2)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성론'. 이성이라는 것이 이미 주어진 것처럼, 저기 어디 실제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움. 조선시대 이기론을 읽는 느낌. 공적추론 말은 좋지! 지역주의를 어떻게 쉽게 벗어날 수 있나? 그것은 영원한 과정일세--라고 하면 하나마나 한 답이 아닐지. 이 책은 감정(예를 들면 분노)과 이성이 함께 가는 것임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실은 관점의 지역성을 '감정'에 소속시키고 이성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씩 동의해 나가고 최종 선의 공동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이분법에 발 딛고 있다. 이런 희망에 이리 쉽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동의하는 자세에 대하서는 난 원래부터 완전히 부정적인 입장임. 정의를 이루자는 논의들이 이러니 세상에 정의 실현이 어려운 거임. 정의의 객관적 토대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아니, 난 정의는 결국 주관적인 것이고 세 싸움이라고 봄(손자가 그랬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세가 부족한 것이라고). 센이 볼 땐 롤스가 선험주의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너가 선험주의!
3) 내가 보기엔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이 책에서 말한 모든 것을 다 고려하면서도) 최우선 필요한 것은, 공적 추론이나 민주주의의 형식/또는 내용이 아니라 취약 그룹의 역량 강화임! --> 그러자면 니티가 더욱 중요해짐.   
4) 그리고 담론--나는 추론이란 말은 별로--을 전개하는 스피커들은 각자의 담론적 배경이 있음(이 책에서 지역성이라고 말한). 그것은 말 그대로 '지역'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지역'을 초월하여 지구사/세계사의 어느 '시점'을 자신의 진정한 entry point로 삼았는가도 상당히 중요함. 예를 들어 이 책은 15세기 인도 무굴제국 왕의 민주주의 실천을 가져오는데, 많은 이들에게는 인도라는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15세기라는 시기가 그들의 entry point를 너무 벗어났을 수 있음. 하나를 문제를 보는 거의 같은 지역성에 기반한 사람들도, 자기 레퍼런스를 어느 시점부터 잡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질 수가 있는 거임!

4-1) 또한 이렇게 장소와 시간 적으로 계속 지평의 확장이 이루어져야만 공적 추론에 기반한 참여적 정치가 가능하다고 하는 센의 말은, 달리 말하면 개개인들은 물론 사회에 엄청난 지적 계발이 요구된다는 것이야--정의를 위해서는. 그리고 이 정도 수준의 지적 계발은 거의 '철인'이어야 할 수 있음. 근데 아이러니한게, 실제 삶에서는 센 식으로 해서 레퍼런스--지역성을 넘는 대화와 참조--를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고 쳐도 그들, 즉 '철인'들은 전체 인구 안에서는 그들은 그저 초극극소수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이런 철인들은 성질상 사실 제거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야, 하하.
5) 내가 보기에는 글이 너무 김. 반론 당할 가능성을 줄여가려고 이리 길게 말하나 싶은 부분이 좀 있는데, 이렇게 길게 말 안 해도 다 알아 들을 사람은 알아 들음. 이런 식의 대화/줄글은 한계효용의 법칙 따름. 그 상세함 정밀함이 어느 포인트에서 최고 효용에 달했다가 그 담부터는 불필요함과 산만함으로 느껴짐(효용 하락). 불필요한 각론은 좀 걷어내고 각 장 끝마다 요약을 붙이기를 요망. 아니면 그냥 맨 앞에 정확한 executive summary를 붙이던가.

6) 그리고 서론에서 약속한 현실의 니티들의 비교가 책에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히려 이그잼플들 보다는 당위론이 훨씬 더 넘실거려 매우 아쉬움. (1)정의의 개념적 토대+(2)현실감 넘치는 액션플랜를 세우려 노력하나, 이 방면으로는 내 경험 안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헌법의 무의식>이 오히려 현실적이고 임팩트 있게 다가옴. 난 정말 증여가 오히려 실천 가능한 액션플랜 같음. 증여를 통해 취약 계층이 발언할 수 있게는 해 놓아야 개방된 공적 추론이 가능한 거 아님?

7) 마지막으로 요즘 번역투가 너무 많아서 뭐가 한글다운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완전 희박해진 건 알겠는데, 정의의 아이디어라는 제목은 그 자체 말이 안 됨. 정의의 이데아라면 또 모르겠는데 그건 완전 다른 의미가 되어 버리고. 이 책 제목에서 of는 그냥 그 뭣이냐 동격 용법임--> 정의라는 개념. 의역하여 정의라는 것, 또는 정의, 라고면 번역했어도 되는 것을, 왜 이리 말이 안 되게 했는지. 그리고 중간중간에 원문은 안 보았지만 번역이 틀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문장들(주로 중문 구조) 몇 개 있음. 마지막으로 개념어의 번역은 괄호 치고 어떤 영문을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 밝히는 것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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