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의 모습은 또다른 충격이었다. 그는 원래부터가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빼빼마르고 이상해 보이는 젊은이였지만, 내게 정말로 충격을 준 것은 그의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눈은 마치 죠스 영화에 나오는 상어의 눈처럼, 눈동자가 아닌 검은 점일 뿐이었다. 그 눈은 면담을 마친 뒤에도 오래도록 나를 쫓아다닌 악마의 눈이었다. 나는 그가 정말로는 나를 보지 않고 나를 꿰뚫어 멍하니 내 뒤쪽을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는 공격적인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손에는 플라스틱 컵을 하나 들고 있었다. (30)

범인상 분석을 배우는 일은 흉악범, 특히 연쇄살인범들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 돈과는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범인들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통상적인 범죄자들과는 근본적으로 질이 다르다. 살인범, 강간범, 유괴범들은 그들의 범죄에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지만 때로는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서적 만족을 추구한다. 때문에 그들은 통상적인 범죄자들과 다르고, 그 때문에 나는 그들이 흥미로웠다. (42)

그러나 일반인은 연쇄살인범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범인을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인물로 여긴다---여느날에는 정상이었다가 보름달이 떠오르면 광기에 사로잡혀 머리칼이 자라고 송곳니가 튀어나오고 다른 희생자를 찾아나서게 될 거라는, 그러나 연쇄살인범들은 절대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환상의 일부가 되어 다음번 살인을 부추기는, 충족되지 못한 경험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 뒤에 숨은 진정한 의미이다. (43)

하지만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고 법집행 분야 밖에 있는 여러 전문가들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내가 전문적인 모임에 참석하고 나중에는 연사로 초대를 받아 경찰관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시야가 더욱더 넓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심리학자들, 정신병학자들, 흉폭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정신 건강을 다루는 다른 전문가들을 만남으로써 나는 독자적으로 하고 있던 연구에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계기를 얻었다. (47)

그것은 면담을 끝내기에는 멋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지금도 믿지 않는다. 어떤 여자도 그의 문제를 풀어주거나 살인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부적당한 점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그의 문제점들은 여자들에게 퇴짜를 맞거나 하는 일보다 훨씬 더 깊이 내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성과 처음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나이에 표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환상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가 여자와 성숙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그러한 환상 때문이었고, 그 환상을 구체화한 것은 행동이었다. 내가 면담했던 그렇게도 많은 범죄자들처럼 그 역시 살인범으로 자라난 것이다. (90)

이러한 살인범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떻게 살인자가 되었느냐 하는 세부사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먼저 정상이었던 사람이 35세를 넘어가면서 갑자기 사악하고 파괴적인 살인자로 전락하는 일은 절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살인의 전조가 되는 행동은 살인범의 삶에서 오래 전부터---어린 시절부터---존재하고 진전되어 온 것이다. (92)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은 유년시절에 시작되고 10대 이전에 강화된다. 하지만 그 능력이 처움부터 없고 10대 이전에 긍정적으로 감화되지 않는다면,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쯤에는 때가 너무 늦기 십상이다. 비록 ‘튀는‘ 행동이 상실이나 강간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기능부전의 다른 어떤 조짐일 것이다. 어린시절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로 이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학대의 사이클을 영속시킨다. 아이들을 범죄자로 키울 가느엇ㅇ이 높은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나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기능부전인 성인들은 범죄적인 환상과 행동이 싹트는 온실 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의 자녀와 사회에까지 손상을 입힌다. (104)

전에 살인범의 정신을 연구했던 학자들 대부분은 난폭한 행동의 뿌리가 어린시절에 받았던 충격에 있다고 생각했다. 즉,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한 사내아이는 자라서 여자를 강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수행한 면담에서는 강간범이나 살인범이 모두 어린시절에 성폭행을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난폭한 행동을 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어린시절의 충격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키우는 데 있다. 살인범들은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살인 동기를 부여받는다. (105)

네번째이자 마지막 단게는 범행 후 행동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단계가 상당히 중요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범죄자들은 범행 당시의 환상을 지속시키기 위해 살인 사건의 수사에 끼어들거나 다른 방법으로 범죄와 계속 관련을 맺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142)

내 짐작으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회에는 변하지 않는 어떤 일정한 비율의 비체계적 살인범들---상당한 정신착란이 있고, 체포되거나 살해될 때까지 이따금씩 살인극을 자행하는---이 항상 존재해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체계적인 살인범들의 숫자와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회가 점점 더 유동적으로 변하고 대량 살상 무기를 입수하기가 쉬워짐에 따라 반사회적 인물들이 강탈과 살인 환상을 실현할 능력 또한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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