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자의 나라 - 비정규 노동으로 본 민주공화국의 두 미래
이한 지음 / 미지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자리를 구해 조금 일했다가, 다시 실업 상태에 빠졌다가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크게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삶은 노동자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그 노동자들의 생계를 어떻게든 보조해야 하는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과 국가에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반면에 그들을 해고한 기업은 그 비용을 당장 직접적으로 부담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개별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행동이 사회적으로는 비합리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최적인 수준보다 과도하게 기업이 해고를 하는 것이다. (37)

공공 부문에 대한 실태 조사는 사내 하도급이 애초에 비용 절감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지출되는 사례도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사내 하도급은 하도급업체의 선정과 관련하여 여러 결탁과 인맥, 로비를 발생시키고, 언제나 중간착취자에게 줄 비용을 따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44)

단순하게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빈곤의 공포에 시달려야 생산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 판타지는 기술과 지식의 발전이 없고 변화가 없는, 단순 노동만이 존재하는 가상의 사회에서만 성립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궁핍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여러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고, 새로운 시도들도 할 수 있으며, 또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애착을 갖는다. 그리고 일단 무언가 정말로 생산하는 일을 하려면, 그 전에 소요되는 기간이나 비용이 길고 커서는 안 된다. (60)

이러한 해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책에 관한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회 구서우언들을 엄밀하고 체계적인 논의를 할 수 있는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몇 가지 개념적인 인상을 뚜렷하고 두드러지게 심어줌으로써, 표면적인 유사 관계에 의한 연상을 불어일으켜, 일정한 결론에 동의하도록 조작...하려고 열심이다. 그 결과 그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로 둔갑시킨다. (70)

우리는 기본권의 행사와 기분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삶의 여건이 타인의 ‘자의‘에 완전히 복속된 상태를 ‘노예 상태‘라고 부른다. 고용이라는 삶의 중대한 여건이 사용자의 ‘자의‘에 복속될수록 우리는 ‘부분적인 노예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이다. 고용주에게 더 많은 이윤이 돌아가도록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갈아치우는 자의적인 행태를 전 노동시장으로 넓히고자 하는 것이 공익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인 ‘노예화 계획‘이라고 불러야 한다. (74)

이 사회 구성원들은 누군가는 지배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지배자가 되는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착취자가 되고 누군가는 피착취자가 되는 신분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공존하고 협동하는 협력 관계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 그렇다면 국가의 임무는 이들 사이의 협력의 전제가 되는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 강화하고, 그 관계가 일그러졌을 경우 이를 복구하는 것이다. (75)

이런 둔갑술을 막으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꼭 해야 한다. 수급 업체, 즉 하청은 고유의 전문 기술 경영계획, 노동조직, 물적 시설을 갖추고 있는가? 즉 유무형의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독자적인 이윤 창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 기준이 핵심이다. (155)

동등한 참여자는 하나의 조건에서 부담을 더 지면 다른 조건에서는 이득을 더 봐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동등한 협동의 참여자로 제대로 대우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 단지 취약점을 집중 공략당하는 수단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66)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다 개혁이 아니다. 농노들에게 자기 영지에서 더 많은 시간 일하게 했던 영주도 그 명령을 ‘개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장난이다. (190)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성장의 둔화를 맞이하고 있다. 성장의 둔화는 이 사회에 두 가지 갈림길을 제시한다. 하나는, 성장의 근원적인 견인력인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즉 동일한 양의 노동에 대해 더 많은 산출이 가능하도록 혁신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생산성‘은 그대로 두고, 자본의 회계 장부상 입장에서, 동일한 노동비용에 대해 더 많은 산출을 강제하는 ‘노동 압착‘을 실시하는 것이다. (191)

반면이 민주공화국의 길은 시종일관 이 사회가 동등하고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이라는 원리 위에 정초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길이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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