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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이름만 들어도 차가운 나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와 위로, 묘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린다.
위로라고 하면 따뜻함이 연상이 되는데, 아주 차가운 곳에서도 나름의 따뜻함이 있다.
그곳 사람들이 건네는 미소와 친절함 혹은 자연이 주는 풍경 같은 것들.   
 
나도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막연한 동경으로, 꿈으로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
황량하고, 춥고, 사람도 많이 없지만 자리를 대신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로라와 빙하, 고요함과 백야, 화산과 피요르드.
지금 나의 일상에서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이 아이슬란드에서는 평범한 일상이다.
 
아주 다른 세상일 같다는 추측을 한다.
추위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라면 한 번쯤 견뎌보고 싶어진다.
외로움이 많아 혼자 있는 것을 잘하지 못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라면 혼자여도 괜찮을 같다.
 
미술관이나 건축물, 유명한 맛집이나 쇼핑거리 등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자연을 마주하고 싶다.
자연 그대로인 것들. 그래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들. 자연 자체.
무엇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
그저 바라보고, 감탄하고, 순간에 머물기만 해도 되는 .

 

하지만 나에게 아이슬란드는 그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바람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운율은 불규칙하지만 소리내서 읽으면 너무도 아름다운 시 같은 곳이었고, 잠들지 않아도 꿈을 꿀 수 있는 곳이었고, 불어오는 바람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리는 곳이었고, 태초의 지구의 모습과 종말 후의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우리가 아는 시간이라는 개념에 포함시킬 수 없는 시간 밖의 텅 빈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생을 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북극 찬바람을 맞아 두 볼이 빨개진 수줍은 여인의 미소처럼 오래오래 따뜻했던 것이다.
그곳은 내 여행의 끝, 종점이었다.
P.273

 

작가는 아이슬란드였는지라는 이야기에, 이렇게 답을 했다.
이리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아이슬란드를 표현했는데, 어떻게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있을까.
 
책을 읽다 보면 사란사란한 위로를 받게 된다.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사진들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함이, 동화 같은 이야기들이, 시규어 로스의 음악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의외의 지점에서 위로를 받았던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작가였다.
그의 연약함이, 그의 불완전함이, 그의 불안이, 오지랖이, 무모함이, 애정이, 슬픔이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서 차가운 빙하가 가득한 풍경을 떠올렸다.
아주아주 차갑고, 낯설고, 외롭지만 풍경만이 있는 따뜻함을 그에게서 얻었다.
산뜻한 따뜻함. 차가운 따뜻함.
 
나만 위로할 , 이기적인 같지만, 실은 스스로 위로할 있을 많은 것들을 위로할 있는 힘을 얻을 있다.

<책 속에서>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 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 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한 거야. 하지만 젊음은 용기라네. 그리고 낭비이지. 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바로 그것처럼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p.61)



그래,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중요한 건 보이지 않지만 속에 있는 것. 그래, 우리의 마음 색깔 같은 거.
검은 해변의 꽃처럼 우린 지금 아무것도 아니고 언제나 자주 불안해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걸 하겠다는 단단한 마음과 진심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그걸 하게 될 거야. 시간이 좀 걸릴지 모르지만……(p.345)
 
당신이 거기에서 무슨 일을 했고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 친구가 누구든 그리고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었건 그 모든 것이 이 길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5 곱하기 0은 0이듯. 모든 것은 제로에서 시작한다. 당신의 한국에서의 생활은 그저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처럼 따뜻한 전설로만 당신 마음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낯선 곳에서 당신이라는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자신이 한번도 느낄 수 없었던, 우리가 서서히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부상할 것이다. 바닥을 치고 나서 반등하는 주가처럼, 자신이 특별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순간 우리는 모든 걸 바닥에 내려두고 다시 새로운 세상 한가운데로 부상할 것이다. 화.이.팅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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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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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이 80살이라고 했을 , 인생을 24시간에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어느 시간에 있을까?
20살은 오전 6, 30살은 오전 9, 40살은 정오, 50살은 오후 3, 60살은 오후 6, 70살은 오후 9, 80살이 12시에 해당이 된다.
나이는 오전 7 48. 아침잠이 많은 나는 하루를 아직 시작도 않은 시간이다.
책을 저자는 해가 지려하는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나는 진짜로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설렘과 희망으로 맥동하는 아침은 저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당도한 이 '오후'가 그다지 싫지 않다. 이 '오후'의 여유 속에서 가만히 혼자 웃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오후의 시각이 빠르게 주는 점이다.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시간이 줄어든다. (p.06)

 

인생에서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자는 48개의 주제로 글을 권의 산문집으로 묶었다.
지나가는 계절과 순간들에 대하여, 인생에서 한 번쯤 돌아볼만한 것들에 대하여, 자신만의 삶의 철학에 대하여 . 주제마다 저자의 생각과 함께 책을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도 함께 적혀져 있어 책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유용함이 더한다.
 
산책과 , 햇빛과 바람, 음악과 고요를 사랑하는 저자는 그의 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움, 소박함과 단순함의 미학들을 느낄 있다.
 
언젠가 나도 나의 인생에서 오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 사랑하는 것들이 많은 삶을 보내고 있기를 바란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소박하고, 단단한 것들이 삶을 이루는 요소들이기를 바란다.
그것들을 충분히 사유하고 온몸으로 살아냄으로써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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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 - 1년차 새내기 남편 오상진의 일기
오상진 지음 / 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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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진 아나운서에 관심이 갔던 것은 아내인 김소영 아나운서/책방지기 때문이었다.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책방을 차린 김소영 아나운서의 남편이고, 평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오상진 아나운서의 대해 아는 몇 안 되는 정보였다.

이 책은 그가 결혼을 한 뒤 1년 동안 꾸준히 쓴 일기들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그의 관심사는 뭐였는지, 그의 일상을 어땠는지, 읽은 책과 봤던 영화는 뭐가 있었는지, 여행은 어디로 갔었는지를 볼 수 있다. 물론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오상진이라는 사람은 아래 세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그는 아내를 많이 사랑하는 사랑꾼이다.
2. 그는 우리 사회에 관심이 많다.
3.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내를 많이 사랑하는 사랑꾼이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내의 행복이다. 꼭 안고 “잘했어. 더 행복해지자. 행복해지자.” 그렇게 다짐했다. P.115

여행을 갈 때마다 우리는 가능하면 그곳의 프렌치 레스토랑에 들른다. 비교적 긴 시간 방해받지 않고 둘만의 대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꺼내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며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나눌 수 있는 세 시간 정도의 코스. 우리에겐 결코 지루하지 않다. 둘만의 멋진 파티인 셈이다. P.134

아내에게 다짐합니다. 이 기록을 오래오래 함께 남길 수 있도록 장수할 거라고요. 하체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는 덜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늘처럼 이렇게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겠습니다. 햇살이 좋습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P.298

 
그는 우리 사회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은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범죄도 마찬가지 아닐까. 도무지 저지를 수 없다는 마음을 먹게끔 하는 것, 넌 분명히 잡힐 것이고 네가 여기서 나쁜 짓을 했다가는 당연히 벌을 받는다는 확신을 주는 것. 아마도 계속해서 나빠져만 가는 범죄를 대처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지는 않을지. p.199

내가 바라는 이상향은 문유석 판사님의 표현대로 멋진 ‘개인주의자’들이 많은 것이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사람이 많은 세상.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지 않아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원칙. 결코 자신이 가진 힘과 자본을 남용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규칙이다. p.202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어때야만 한다라는 구속을 벗어던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남녀의 갈등 없이 우리 모두 조화롭게, 스스로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결국 서로 다른 성별인 우리는, 가장 사이좋게 잘 지내고 싶은 사람들 아닐까. P.219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발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저 아내를 꼭 안고 토닥거리며 끝까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해결보다는 공감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음을. P.100

소영에게 절대 화내지 말고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자. 자존심을 접고 객관적으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터놓고 서로 맞춰가야겠다고 다짐한다. P.169

매일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타성에 젖게 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생각보다 많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물의 온도와 압출하는 시간일 뿐, 결국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것. P.226

 

이 책이 그저 신혼에 대한 이야기만 실려 있지 않아서 좋다. 그의 단단한 생각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가 애정 하는 것들, 분노하는 것들,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 읽고 나니 참 예쁜 부부이고,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김소영 아나운서의 진작 할 걸 그랬어도 함께 읽으니 두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뒤표지에 실려 있는 김소영의 말에 뭉클하다.

"글을 읽으며 나는 각오를 다진다. 당신이 앞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모조리 이해하려 애쓸 것이며,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그저 사랑하겠다고."

아. 예쁘고 부러운 커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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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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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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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을 읽기 위해, 쉬는 날 카페를 고르고, 좋아하는 라떼를 시키고 읽기 시작한다. 내 옆에 그는 이 책은 30분이면 읽지 않냐고 묻는다. 나는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읽고 싶지 않다고, 천천히 오래오래 읽고 싶은 책이라고 말한다. 겨우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여러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그만 책장을 덮고 카페에서 나온다. 결국 쉬는 날, 책방 문을 열고 혼자 있는 공간에서 책을 읽는다. <끌림>은 조용히, 오래오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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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은 나의 10대를 떠올리게 한다. 10여 년 전쯤, 나는 이 책을 정말로 좋아했다. 갈팡질팡했던 그 시기에, 이 책에 그려진 마음들과 이국의 사진들은 나를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낯선 땅을 밟고, 낯선 이를 만나는 것. 여행을 하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그 꿈을 가슴속에 품고, 어느 정도는 좇으며 살아왔다. 일주일 후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끌림>을 다시 읽는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여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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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그럴 땐 똑같이 생긴 뭔가를 두 개 산 다음 그중 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건네면 된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면 된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의 방황은 더 심해진 듯했다. 스무 살, 입학한 학교에서 한 학기 만에 나의 열정을 모두 쏟고 난 후 돌연 휴학을 했다. 나에겐 학교는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읽었고, 토론을 했고, 영어공부를 했고, 나의 진로가 무엇인지 끝없이 고민했다. 커피를 뽑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고민한 것들을 종이 위에 쏟아내고, 여행을 꿈꿨다. 그리고 스물한 살, 봄에 홀로 크로아티아로 떠났다.
환상을 가득 품고 떠났다. 가서 내 꿈이 무엇인지 찾아야지, 좋은 글을 여러 편 써야지,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두 눈에 가득 담아야지, 매 순간 설레고 감탄해야지, 멋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지.
좋은 것만 생각하고 떠난 첫 여행이었고, 기대했던 바가 많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많은 순간 헤맸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두 손에 움켜쥐고 싶은 모든 것들은 떠났다는 이유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정말 많아서 아직까지도 떠올리면 내 눈을 아른거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다르에서의 순간.

내 여행은 왜 이럴까, 싶은 생각에 아무도 없는 낮, 호스텔에서 울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밖에 나왔다. 숙소 앞 작은 광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청년 앞에서 지나치지를 못하고 머물렀다. 음악이 너무 좋았다. 몇 안 되는 관중들이 잠깐씩 머물다 지나갔고, 나는 몇 곡이나 연이어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내 눈을 마주치고 노래를 불러주는데 모든 슬픔이 녹는 느낌이었다. 몇 곡의 노래를 마치고, 이제 정리하려는 그를 보면서 내 마음이 분주해졌다. 돈을 주기보다는 뭔가를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변에 감자칩과 핫도그를 파는 집에서 2개를 테이크아웃하고, 기타와 주변 정리를 끝낸 그에게 웃으며 하나를 건넸다. 길거리에 서서 우리는 핫도그를 먹으면서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학생이었고. 음악이 좋아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나는 여행 중이라고 하자, 그가 기타 가방에서 주섬주섬하더니 잘 코팅된 네 잎 클로버를 내게 주었다. 내 여행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란다면서.

똑같은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주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 나누는 것의 힘은 아주 크다. 마음을 나누었지만 더 많은 것들이 내게 돌아온다. 그의 미소, 따뜻한 마음, 앞으로 여행할 수 있게 해준 힘, 평생 기억되어 떠올릴 때마다 웃음지게 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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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은 그냥 멀리에 있는 줄만 알았어요. 근데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잖아요.

 

 

이 책을 읽으며 뭉클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10대 시절의 내가 자꾸만 떠올라서인 것 같다. 그때 이 책을 만났던 어린 내가 자꾸만 떠오른다. 그때의 난 삶이 너무 무거웠고, 무서웠다. 세상을 몰랐고, 나를 몰랐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밤을 생각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동시에 나를 지독하게 미워했다. 사랑받지 못했기에 스스로 사랑할 줄을 몰랐다. 돌이켜보면 모르는 것들 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나는 꿈이 아주 많은 아이였다. 지금 내가 주어진 상황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최대한 많은 꿈을 꾸었다. 영국의 유명한 대학에 가고, 심리학을 공부해 다른 이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꿈들을 꾸었다. 현실이 힘들었기에 자꾸만 꿈속으로 도망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땐 세상을 원망하면서도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었다.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은 세상이라고, 꿈을 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세상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꿈을 꾸었고, 믿었고, 나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넘어서면서 이렇게 멀리 올 수 있었다.

 


이제는 예전만큼 아프지도 않고, 동시에 예전만큼 많은 꿈을 가슴에 품고 살지는 않고 있다. 세상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도,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꿈도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 여행이 절실하고, 너무도 간절했던 그때의 나와 달리 지금은 마음을 조금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게 여행이 되었다.

분명 그때의 나보다 많이 성장하고, 사는 게 편안해졌지만 그때가 그리운 것만 같다. 무모했고, 부서지기 쉬웠고, 처절했고, 모든 게 서툴렀던 그때의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아니라 아직 세상을 만나기 전의 바보같이 순수했던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은 그리움이다.

-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끌림>을 읽으면서 내 지난 시간과 여행의 순간들을 되돌려 보았다. 나는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야 알 것이다. 다만 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를 한다. 지금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순간들에 마음을 다하고, 여행을 할 때엔 그 순간에 마음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오로지 마음을 다 주는 것. 아플 때에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아파하는 것. 그리하여 넘치게 받았던 마음들로, 행복했던 기억들을 지팡이 삼아 다시 일어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꿈꾸며, 그 꿈을 좇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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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
봉현 지음 / 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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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

 

*
가능한 많은 남자를 만나보라,라는 충고를 여러 번 들었다. 옆에 있는 연인이 들으면 뒤로 자빠질 소리다. 한 사람과 꽤 긴 연애를 한 나는 많은 남자를 만나지는 못했다. 과연 그 충고가 옳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나는 가능한 많은 곳을 여행하고 싶다. 가까운 지인이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할 때면, 일단 떠나보라고 권장한다. 떠나는 즐거움을 알기에 기꺼이 많은 여행을 다녀보라고 이야기한다. 여행도, 연애도 사랑한다.

-
봉현 작가님의 책 <베개는 필요 없어, 네가 있으니까>은 묘한 책이다.
일단 책을 감싸고 있는 향에 빠져든다. 이제 막 빨래한 옷을 입은 사랑하는 사람의 향이 난다. 어느 여행길 골목에서 마주친 스쳐 지나간 향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와 여행지에서의 날들이 그려져 있다. 각 에피소드들은 소박하고, 근사하고, 아름답고, 때론 가슴이 저리다.

-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와 함께하면 나의 세계가 달라진다. 다른 세계가 나의 세계로 들어오는 동시에, 내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p.46)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가 만나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 이전과는 다른 공기의 무게와 바람, 향기 등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세계로 빠르게 변한다. 처음엔 서로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사랑을 시작할 때의 그 떨림과 설렘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고 또 간절한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 우리의 세계에 하나, 둘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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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나는 늘 강해야 했지만 네 앞에선 그러지 않아도 됐다. 밖에서는 괜찮아요 하다가도, 너를 만나면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펑펑 울었다. 참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 늘 담아두었던 강해져야 한다는 다짐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p.89)

연애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나의 편이 생긴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다. 괜찮지 않음도 그의 앞에선 보여줘도 괜찮다. 내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지고, 많은 것들이 괜찮아진다. 이것이 연애의 특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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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함께여야만 행복하다면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타인이 나의 길을 정할 수 없고, 나의 마음을 정할 수는 없다. 나 역시 타인을 바꿀 수 없다. 사랑 하나로 사람의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사랑 때문에 더욱 외롭기도 했으니까.

나는 혼자가 되었고 여전히 외로웠지만,
괜찮다. 외로워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p.121-122)

사랑이나 연애가 외로움을 없애지는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때때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겪으니까. 혼자여도, 외로워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한 단계 성장한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곧 서른세 살.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서 받아올 수 있다면, 돌이킬 수 있다면, 그때의 내가 가졌던 서툰 것들만을 다시 가져오고 싶다. 두려움이 불러일으킨 용기, 설렘이 가져온 무모함, 무지로부터 온 배움, 성장하는 기쁨.(p.227-228)

이십 대는 누구나 처음이라 서툴다. 여행도, 연애도 서툴러서 요령을 모른다. 그래서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서 부딪히며 그 시간을 통과한다. 그러다 보니 울고, 웃고, 여러 번 무너진다. 그래서 너무 힘들지만, 그때에만 가질 수 있는 것들(용기, 무모함, 배움, 성장하는 기쁨)이기에 소중하다. 연애도, 여행도 요령이 생기고 조금 더 나아진다. 나아지는 만큼 그때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사라진다.

-
가능한 많은 남자를 만나보고, 가능한 많은 여행을 하는 것은 다른 말로 가능한 많은 나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 사람과 만났을 때의 내 모습과, 이번 여행에서의 내 모습을 또 알아가는 것. 여행과 연애는 나를 더 알게 되고, 또 사랑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프기만 할 테니까.

나는 지금의 연인과 깊고, 오래 만나면서 내가 다른 이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많이 경험했다. 아픔과 괴로움, 분노와 속상함은 물론이고, 누구도 내게 줄 수 없는 따뜻한 기쁨과 커다란 행복과 편안함과 안도감 등. 연애를 여러 번 함으로 시행착오를 겪고 발전한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의 연인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투닥거리고, 감싸 안으며.

-
이 책을 읽으면 작가님이 연애의 순간들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상대방들, 서툴고 모났던 자신의 모습까지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책은 연애 에세이지만 성장 에세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여전히 나는 사랑과 여행에 서툴고, 여전히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일들을 경험한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나를 더 알게 되고,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더 알게 되고, 때때로 외로워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깊은 밤, 침대에서 읽기에 좋은 책.
솔직하고,
부럽고,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깊은 사랑을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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