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전쟁의 나라 - 7백 년의 동업과 경쟁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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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도저히 평가가 되지 않는 책이다.
책의 광고에는 '서영교박사가 10년간의 치밀한 연구를 이 한권에 녹여냈다'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치밀하기는 커녕 읽을 가치가 있을까 모르겠다...

이 책의 최대 단점은 책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술서는 당연히 아닌 줄 알았지만, 교양인문서적도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대중서적의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했다.
역사책이 다른 학문의 책들과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점은 어떤 이론을 근거로 쓰는 것이 아닌 1차 사료의 인용과 그것에 대한 작가의 평가 판단 그리고 추정이 있다는 것이다.

한 줄의 사료에 대한 평가 판단이 작가마다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역사서적의 성격이 없다. 1차 사료의 인용도 별로 없고, 그것에 대한 평가 판단 혹은 추정도 없다. 소설이 아닌데 작가는 인물의 당시 심정까지 적어주는 친절함(?)을 베푼다.

작가의 글 솜씨도 문제다.
한 문장의 길이가 대부분 홑문장이다. 홑문장은 읽기가 편해 속독을 높혀주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 많이 보인다.

『모용희도 바보는 아니었다. 과거 중원을 지배하던 모용씨였다. 하지만 강자 북위의 등장으로 그가 물려받은 나라는 침몰하고 있는 배였다. 배에 물이 차고 있는데 바람까지 거세게 불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융성기에는 시대가 편을 들어주니 간단하다. 하지만 하강기가 되면 시대가 편을 들어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162쪽)』
 '모용희도 바보는 아니었다.'라고 했으면, 모용희도 뭔가 했다는 것이 나와야 하는데, 이게 끝이다.
대체 이 문장을 왜 썼는지 모르겠다. 이런류의 문장이 꽤 보이기 때문에 상당히 거슬린다.

내용에도 문제가 보인다.
1.낙랑군에 대한 평가문제
2.고구려에게 있어 한강유역의 의미
3.광개토태왕릉비문 17년조의 대상문제
4.양원왕에 대한 폭행문제
5.645년 고당 전쟁에 있어 안시성의 문제

1.2.3.5.는 학자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4번은 다르다.


고구려

전쟁의 나라

(서영교)


552년 9월 고구려 평양에 북제의 황제 고양이 보낸 사자가 도착했다.
그는 박릉 출신의 최유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17세였던 양원왕은 그가 고구려에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왕은 북제 사신 최유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최유의 눈에 핏줄이 섰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왕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주먹을 불끈 쥐고 거리낌 없이 왕에게 다. 퍽! 하고 소리가 났다. 왕이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더욱 기이한 장면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왕이 최유의 주먹에 맞아 용상에서 떨어졌는데도 누구하나 불경한 사신을 제재하지 않았다. … (240쪽)


고구려의 발견

(김용만)


한마디로 무용담이다. 이것은 이 당시 북제가 고구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고구려에게서 외교상의 수모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감정상으로나마 만회하려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 결국 이 기록은 고구려와 북제가 서로 얼마간 불편한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316쪽)


고구려사 연구

(노태돈)


당시 고구려는 한바탕 왕위계승 분쟁을 치렀고 이어 남으로부터 나‧제의 군사적 공격에 직면해 있었으므로, 가능한 한 서북 방면에서 새로운 군사적 충돌을 초래할 분쟁의 위험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고구려의 내외의 약점을 포착한 북제의 강한 외교적 압박과 그에 따른 고구려 조정과 어린 왕의 당혹감을 상상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일부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최유의 행동을 포함한 위 기사가 말해 주는 당시의 분위기를 인지할 수 있겠고, 위 기록에 보이는 고구려에 대한 북제의 외교적 압력이라는 사실 자체의 신빙성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05쪽)




사실상 이 기록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용만 선생의 말씀처럼 단순한 무용담이거나 노태돈 교수의 말씀처럼 이 기사로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 이 사건을 북사 기록 액면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사료인용에 있어서의 작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류의 것이 이 기록말고도 몇 군데 확인 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책은 근본적으로 책의 성격부터 잘못되었고, 작가의 무심한 사료인용과 문장력이 버무러져 내가 읽은 최악의 책이 되었다.
 

2010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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