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종말 -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3
콜린 텃지 지음, 김상인 옮김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콜린 텃지. 출간연도는 1998년도이다.

번역판의 제목은 에덴의 종말 :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이고

원제는 네안데르탈인, 산적 그리고 농부 : 농업은 정말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다.


​번역을 하면서 제목을 원제와 상관없이 바꿨지만, 책의 주제는 선명하게 들어났다고 할 수 있다.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에덴의 종말을 저자는 농업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안 사실은 우리가 농업이라고 할 때 보통 떠오르는 농업이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려 작물을 수확하는 일련의 과정만을 떠올리는데, 그건 농업의 일종인 경작농일뿐이지 농업의 전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 식물, 동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하는 행위를 통칭하여 농업이라 한다.

즉, 인간이 선호하는 식물들을 재배하여 키우는 것은 원예농이고, 인간이 키우기 쉬운 동물을 가축화하는 것은 목축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농업을 위와 같이 세가지로 분류한다(원예농, 목축농, 경작농)


​저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신석기 혁명 중 하나인 농업(농경)의 시작을 에덴의 종말이라고 부른다.

일단 저자는 농경을 하는 농부를 파트타임 농부와 풀타임 농부로 구분한다.

파트타임 농부는 일정시간동안 농사일을 하지만 수렵-채집도 병행하여 하는 농부를 말하며, 이 때 농사일이란 원예농과 목축농

그리고 소규모의 경작농을 뜻한다.

풀타임 농부는 대규모 경작을 하는 농부. 즉,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농사일에 투입하는 농부를 뜻하는 것이다.


​소규모 농업을 하는 파트타임 농부는 수렵-채집도 병행하여 하기 때문에 수렵-채집인의 특징을 일부 지닌다.

하지만 대규모 농업을 하는 농부는 한번 농업을 시작하면 인구압으로 인해 농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소규모 농업을 하더라도 수렵-채집인과 완전하게 동일하지는 않다.

수렵-채집인들은 자신들의 먹이감을 완전히 멸종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먹이감을 완전히 멸종시켰을 때 오는 여파를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의 순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먹이감을 찾고 먹이감이 떨어지면 이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일단 소규모라도 농경을 시작하면 그 이동거리는 떨어진다.

그래서 저자는 홍적세(약 4만년~1만년사이)의 대형동물의 멸종을 기후 변화 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찾는다.

후기 구석기부터 인간은 농업을 지었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신석기혁명이라고 부르는 농업은 농업의 정착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사육된 동물의 뼈는 야생의 동물보다 작으며, 경작을 통해 수확한 벼의 크기 또한 야생의 벼와는 다르다.

이러한 야생동물보다 작은 동물의 뼈 등은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나타난다는 것이다.


​수렵-채집인들은 평등하다. 그들은 호혜적인 관계 안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사냥을 하거나 채집을 하는 시간은 농경을 하는 시간보다 덜 투입된다.

영양분의 상태도 초기농경민보다 수렵-채집인의 영양상태가 훨씬 고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농업은 시작되었고, 왜 농업을 시작한 농경민들은 하루 종일 농사를 지어야 하는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농사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농경의 시작을 간빙기로부터 찾는다.

빙하기때는 해수면이 낮아 이동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간빙기가 되면서 바다수면이 올라가고 강이 깊어져 그들의 행동반경이 줄게 되었다.

같은 인구라고 할 때 면적이 줄어들면 수렵-채집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규모 농경은 시작하면 왜 정착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가.

이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저자뿐 아니라 많다.

바로 '인구압'이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정착하게 되면 인구가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그 인구를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그러면 또 인구가 늘게 되어 농경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농경을 하며 정착을 하게 되면 곡물이라는 대안이 있기 때문에 다른 식물들이나 동물들을 마구 포획하게 된다.

그러면 그 집단 주변의 생물의 다양성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인간이 환경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동식물까지 통제하기 시작하여 다양성이 없어져 버린다.


이 다양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은 근현대와서 다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조선 말기에는 산에 나무가 없었다.

일단 인구가 많아지면 소비량 또한 많아지기 때문이다.


​지구가 생기고 지구안에 생물이 살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총 다섯번의 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이 다섯 번의 멸종은 어떤 생물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 충격(기후 변화, 소행성 충돌 등)에 의해 발생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고 환경을 통제하면서 지금까지 지구의 70%의 동식물이 멸종했다고 한다.

2010년대(2010~2019)만 467종의 동물이 멸종하였다.

그리고 지금. 학자들은 제6의 멸종을 걱정하고 있다.

농경의 시작이 과연 인간에게 축복이었을까, 저자의 말대로 에덴의 종말이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