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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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의심하다니,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연인이여!

그대에게 아낌없이 바친

사랑 중 일부만 신께 바쳤어도 -

신이 만족했을 텐데요 -

영원히, 내 전부를 드렸는데 -

여인이 더 이상 무엇을 드릴 수 있을지,

얼른 말해 주세요. 그대에게

마지막 기쁨까지 다 바쳐도 된다고 해 주세요!

이건 내 영혼일 수 없어요 -

예전에 그대의 것이었으니까 -

나 그대에게 모두 바쳤어요 -

초라한 처녀인 내가

무슨 재산이 더 있었겠으며,

그대와 조용히 사는 것뿐이었어요!│56쪽

우리는 사랑이 끝나면 다른 물건들처럼,

서랍 속에 보관한다 -

결국 조상의 옷처럼

사랑도 골동품이 된다 -│188쪽

사랑은 - 태어나기 전 -

죽은 다음에 - 오는 것 -

창조의 순간,

숨결 속에 있던 것 -│191쪽

#에밀리디킨슨시선집 #에밀리디킨슨 #을유문화사

고등학생 때 문학이라는 과목(특히 소설)을 너무나 좋아했다. 문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일 자체에 존경심이 끓어 담당 선생님도 좋은 마음으로 따랐다. 시험기간에 돌입해 수행평가로 ‘시 짓기’를 하게 됐다. 모방해도 좋으니 기존 시를 참고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쓰지 못했다. 운문은 산문과 다르게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영 어렵기만 했다. 마감일에 겨우 기존 시 하나를 베끼다시피(단어 몇 개만 바꿔서) 적어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생각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문학 선생님은 가장 좋은 시를 제출한 학생을 호명해 읽게 했다. 나와 시선이 얽힌 후, 웃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기존 시 단어만 몇 개 바꾼 친구도 있어서 읽는데 몹시 불쾌했어요…” 여선생님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 후, 시를 멀리했다. 시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세계에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시를 읽는 일은 없었다. 어쩌다 놀러 간 서울 지하철역에 붙은 시를 봐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더 흘러 사랑하는 이를 만났고, 느낀 감정을 운문 형태를 빌려 조심스럽게 적어 봤다. 시를 향한 거부감이 서서히 옅어져 갔다. 지금도 많은 시도 중이다. 시를 읽고, 운문 형태의 글을 쓰기도 하고. 이렇게 제대로 된 시집을 읽는 건 두 번째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을 읽고, 시는 어렵기만 한 게 아니구나, 많지 않은 글자로 가슴을 울릴 수도 있구나, 시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녹아내리기도 했다(「내가 너를」이란 시를 가장 사랑한다).

그 뒤로, 먼 타지에 시간 속에 존재하던 시를 만났다. 관습을 벗어난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을 사용해 아주 독창적인 사고를 표현하는 시를. 단절의 여러 측면을 다루고 있어 특별하면서도 어렵게 다가왔다(아직은 시를 잘 몰라서). 정해진 시각을 초월해 쓰여진 시라 그런지 이해에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독특하고 특별한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그는 묘비에 새긴 문자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몇 번이고 ‘다시 소환되’고 있다. 150여 년 전, 외부와 차단된 채(30년 동안 병간호한 어머니가 돌아가셔 장례식을 치르는데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창밖으로 지켜봤다고) 가장 생명력 있게 집필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 사후, 여동생 라비니아가 발견한 1800여 편의 시가 토머스 H. 존슨에 의해 원문과 가장 흡사한 형태로 출간된다. 1955년에 출간된 시 전집을 토대로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이 만들어진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몇 세기를 뛰어넘은 지금,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어느 때고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이나 시는 고상한 사람들이 읽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에게 유의미한 손길로 권하고 싶다. 어려워도 한 번 읽기에 도전해 보시라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인다. 어떤 시를 읽든 그의 목소리가 함께 온다.

♥사진 촬영에 협조해 주신 내 사랑 빛과 님, 고마워요◡̎

*을유문화사(@eulyoo)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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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의 별 3
와야마 야마 지음, 현승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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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3편... 왜 미리보기조차도 재미있는 건가요... 다음 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봤더니 호시 선생님 아픈데도 멘트 하나하나가 주옥 같아요... 얼른 1권부터 3권까지 내리 읽고 싶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호시 선생님...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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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과 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9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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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만으로도 마거릿 헤일의 훗날이 궁금해진다. 제인 오스틴의 계보를 잇는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을 만나는 첫 작품이 《북과 남》이라 더 좋다. 고전인데도 불구하고 활자가 흐르듯 읽힌다. 마거릿 헤일이라는 캐릭터를 짙게 느껴 보고 싶다. 표지에 삽화된 명화조차 퍽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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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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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글도 사랑한다니. 함께 글을 쓰던 그이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니. 남겨진 이는 슬픔도 사랑도 남길 수밖에. 남겨진 것들은 그래서 아름다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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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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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연히 꿈꾸면서 마법처럼 좋다고 생각한 일도 막상 실제로 현실이 되고 보면 이것저것 골치 아픈 문제가 가득할 때가 많거든. 원래 세상일이 다 그래요.│53


‘돈을 번다는 것은,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하고 그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아. 무슨 스타트업 회사라고 하면서 남들 보기에 폼나는 일, 일하는 동안 다들 재미있고 즐겁기만 한 일, 그런 멋있는 일만 하면 돈은 어디서 어떻게 떨어지는 건데.│77

은하계라는 게 한 수십조, 수백조 개는 있거든요. 저희는 그 중에 은하수라고 부르는 은하계에서 왔고요. 은하수에 있는 별 중에 태양이라는 곳이 있는 태양계에서 왔어요.│83

별이 빛나고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고, 이런 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하필 이렇게 생긴 세상에 태어나서 짧은 삶을 살다가 사라지는 것인지, 슬프고 기쁘고 화내고 두려워하는 시간 속에서 소중히 여기고 아끼던 것들도 언젠가 다 허무하게 흩어져버리는 이 우주에서 우리는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희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84

원래 기술이 발전하면서 엄청 무서운 것 같은 일도 점점 안 무서워지는 거야.│143

#은하행성서비스센터정상영업합니다 #곽재식 #네오픽션

우주적 시점에서 보면 우리는 우주먼지만큼 조그맣고 귀여운 존재일 것이다(조구만 스튜디오의 #우리는조구만존재야 생각난다. 귀여운 브라키오🦕). 작품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에는 여러 은하가 존재하고 그 중 한 곳에 아마 미영과 양식이 있을 테다. 우리도 있고.

별이 있는 곳엔 행성이 형성되고, 행성이 존재하면 가끔(드물지만 반드시) 생명체가 생겨난다.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해 인생사 세상사에 대해 고민하는 종족으로 발전한다. 정말 그럴까. 이미영 사장의 말처럼 공동인(목동자리 공동에 사는 우주인이랄까)은 그렇게 존재하게 된 걸까. 허구인 줄 알면서도 사실처럼 믿게 된다. 본격 SF 장르는 초면이라 대단히 기묘하고 알쏭달쏭하다(다른 작품 읽은 적 없어서 비교 불가).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사람과 환경은 생경 그 자체. 평범하지 않은 낯선 은하 속에서 현대 사회문제 비판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유일하게 김양식 이사만이 이성 있는 인간이다(김미영 사장은 도전적이며 모험적이고 약간 이상한데 초긍정형 인간).

이 책은 열두 행성 방문 서비스를 기록한 일지 비슷하다(읽어 본 바). 미영과 양식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목적과는 너무 안 맞는 일만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미영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노고가 역력히 보인다. 투덜거리면서도 미영을 따르는 양식의 고충은 일개미라면 누구나 공감할 모습. 우주인도 밥벌이에 똑같이 고통받고 있구나 싶어서 묘한 동질감이 인다.

SF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다작하는 작가라니 앞으로 새로 쓸 작품이 기다려진다. 미영과 양식 시리즈인 《ㅁㅇㅇㅅ :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도 꼭 읽고 싶다. 오랜만에 새벽까지 몰두하게 만든 책이다.

*자음과모음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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