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위한 풍선 단비어린이 그림책 7
나이젤 그레이 글, 제인 레이 그림, 최제니 옮김 / 단비어린이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큰고모댁은 정말 신기하고 탐나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특히 당시의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존재와도 같았던 사촌 언니들의 방은 그야말로 보물창고 같았는데 마음 좋은 언니들은 가끔씩 나와 동생에게 자신들의 물건 중 몇 개를 주기도 했었다. 문제가 되는 순간은 여름 방학이 되어 외국에서 살던 내 나이 또래의 사촌 언니와 오빠가 나, 그리고 내 동생과 함께 큰고모댁을 방문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본 사촌 동생들에게 언니들은 또 물건 몇 개를 나눠줄 준비가 되어있었고 마침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다른 사촌도 동시에 마음에 들어할 경우에는 우리 사이에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걸 가운데 두고 당시에는 왜 그리도 "이 것도 내 꺼, 저거도 내 꺼!"를 외쳤던걸까?(오죽하면 나와의 경쟁(?)에서 져서 갖고싶던 물건을 결국엔 다 포기해야 했던 또 다른 사촌 언니는 크레파스 뚜껑에 '유미는 욕심쟁이'라고 써 놓기도 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작가, 나이젤 그레이의 동화, 『할아버지를 위한 풍선』에는 어린 소년, 샘이 등장한다. 소년은 자신의 풍선이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저 멀리 둥둥 날아가는 것을 보고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저 풍선은 내 거란 말이야." 그러자 바람이 대답한다. "아니야!" "풍선은 내 거야! 내 거라고!"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욕심많은 꼬마처럼 사촌언니의 선물을 독차지하려 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건 내 거야! 내 거라고!"라며 욕심으로 통통하게 부은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을 나의 어린 시절이.

 

어린 시절,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이다. 주변의 어른들도 다 나를 보고 웃고 나를 걱정하고 나를 보살펴주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주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포기하는 법, 양보하는 법을 모르고 내 손아귀에 있던 무언가가 내 손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샘이 가지고 있던 풍선이 어느 날 바람에 날려 저 멀리로 사라져 버린다. 내 것을 바람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분하게 생각하고 슬퍼하는 샘에게 아빠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너의 풍선이 사실은 굉장한 여행을 떠난 거라고. 빨간색과 은색 무늬로 반짝이던 네 풍선은 신기한 세상을 구경하며 멀리까지 날아가서 작은 섬 한가운데 망고 나무가 있는 집에 살고있는 할아버지를 찾아간 거라고. 그리고 할아버지는 "우리 샘이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풍선을 보냈구나."라고 기뻐하실 거라고.

 

아! 살다보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손을 떠나는 경우를 많이 겪게 된다. 그런데 내 것이었던 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하고 분노하기 보다는 어쩌면 그 사람 혹은 물건이 내 품을 떠나 더 좋은 경험을 하고 어쩌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도 기쁨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아름다운 동화였다.

덧붙이자면, 이 글은 저자인 나이젤 그레이가 본인의 아들인 샘이 풍선을 잃어버리고 속상해 하는 것을 보고 위로하기 위해 들려준 이야기라고 한다. 세 살, 어린 나이에 풍선을 잃고 슬퍼하던 샘은 아버지가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안도를 했을까! 그 장면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에 와 닿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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