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만큼 자라는 아이들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에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표제를 보고 단번에 '그래 맞아'하고 수긍할 수 없었다. 말이 그렇지 어떻게 아이들이 그냥 자란단 말인가. 아이들이란 반듯한 정원수처럼 늘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뻗어나가는 잡초처럼 쓸모없어질 것이란 편견을 갖고 있었다.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는 잡초의 자유로움과 싱싱함은 미처 보지 못한 채.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비로서 책 제목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름답고 씩씩하게 잘 자라날 것을 바라봐 주고 믿어주는 일이다. 나는 저자의 말에 거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나는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을 했던 것일까. 도대체 나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충분한 자질이 되어 있었던가. 단지 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무조건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워야한다고 생각했으니.

여성학자 박혜란.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세 아이 모두 일류대학에 들어가면서 모든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출판사로부터 끊임없이 육아서를 쓸 것을 제안 받았다고 한다. 어쨌든 아이들을 일류대학에 보낸 엄마와 훌륭한 엄마를 동일시하는 데는 나도 반대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란 육아철학을 배울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정말 다행이랄 수 밖에.

먼저 저자의 담백하고 꾸밈없는 글맛에 무척 신뢰가 갔다. 은근히 아들 자랑도 간간히 섞여 있었지만 그건 엄마라는 이름으로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저자가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흔히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모들은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데는 인색하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를 끊임없이 키워나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마치 어미게가 새끼에게 '나는 옆으로 가지만 너는 똑바로 가야한다'고 외치는 공허함과 같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참으로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한방울 미소만으로도 그들에게 생명을 준 부모에게 무한한 기쁨을 안겨다준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만 반듯한 모습으로 있어준다면 든든한 버팀목 삼아 스스로 잘 자라줄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부모가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한 아이들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이다. 그냥 아이들과 함께 부모도 커 나가는 것이다. 옛말에 아이를 낳아야 참어른이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 같다. 부모도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과 더불어 더 커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물론 아이들마다 다르듯이 부모들의 육아철학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마는 너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모든 개인의 인생이 중요하듯이 엄마의 인생도 중요하다. 엄마가 자기의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보고 배운다. 저자의 아이들이 모두 훌륭하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도 저자 스스로가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란 사실을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오로지 해바라기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는 엄마를 어쩌면 더 부담스러워할 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믿어 주려면 부모가 그만한 소양을 갖추어야할 것 같다. 당당하고 진취적이고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부모라야 아이를 그 자체로 바라보고 믿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그러기에 우리는 아이를 키운다고 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좀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값진 교훈은 바로 아이를 키우기 전에 나부터 크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은 별 다섯 개도 부족한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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