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8 - 망가진 여행 어떤 날 8
강윤정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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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 들춰보아도 어딘가로 떠나듯 마음이 산뜻해지는 여행무크지『어떤 날』8호가 나왔다 +_+!!

이번 주제는 '망가진 여행' - 여행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선지 '망가진 여행'이라는 말은 묘하게 위안이 된다. 하긴, 어쩌면 난 그동안 일상을 탈출하겠다는 결심으로 온갖 정보를 찾아가며 일정을 짠 후 여행지에서 계획한 것들을 전부 이행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하는 일을 행복한 여행이라고 여겼는지 모른다.

 

책에 실린 산문에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사소한 어긋남, 복통과 날씨, 기분 탓으로 실망하거나 낙담하고,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여행들이 있다. 분명 망가진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들은 마지막에 덧붙인다. 그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고. 불쾌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여러 장에 걸쳐 한참 수다 떨다가, 그래도 다시 여행은 갈 거라고. 


망친 이야기여도 괜찮다. 여행을 떠나면 또 새로운 이야기가 생길 것이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 여러 페이지에 걸쳐 신나게 쏟아낼 수 있는 이야기. 길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이런 이야기들의 연속이다. 아, 특히 『어떤 날』에서 유머를 담당하고 있는 정성일 작가의 글을 매호 좋아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웃기다가도 좀 짠해져서...... 아무튼 완전 강추다ㅋㅋ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을 망쳐버리고 싶다. 여행을 망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망치려면 일단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때는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그 시각의 지금-여기인 공항부터 느긋하게 망쳐볼 셈이다.
- 이현호, ‘어떤 싸움의 기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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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시간 - 군주.국가의 시간에서 시민의 시간으로
송호근 지음 / 북극성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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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말 한국 정치는 상상도 못했던 실체를 드러내며 무너졌다. 무엇을 생각했든 현실은 까마득히 수준 미달이었고 영화보다 더 허구적이었다. 역대급 규모인 데다 민주국가의 상식선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스캔들이 터지자 좌절과 혼란에 빠진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건 매일 갱신되는 기막힌 뉴스들 뿐- 새롭게 밝혀진 팩트와 의혹, 이를 무위로 만들려는 공작과 기만 등. 정치 이슈에 으레 쏟아지던 분석과 비평은 오히려 길을 잃고 주춤거렸다. 

 그런 점에서 '촛불의 시간'은 지금 꼭 필요한 책이다. 전문가의 관점으로 박근혜 정권의 성격과 과오를 지적하고 현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송호근 교수는 갑갑하고 울화가 치미는 사태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이들을 보면서 '군주의 시간이 끝나고 시민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선언한다. 바로 그 시민들의 힘으로 한국 정치사 초유의 불행이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거름이 될 거라는 통찰은 정치를 다시 시민의 손에 돌려줌으로써 희망과 위안을 건넨다. 물론 시민에게는 권리와 책무가 함께 존재하므로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제대로 된 위안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필자가 몇 차례 박근혜를 대면했던 경험과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밝혀진 의혹들을 종합해 박근혜의 정치관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그간의 박근혜 정부, 이른바 '군주의 시간'을 비판한 필자의 신문 칼럼들을 모았다.


아버지에 대한 관념, 그것이 반드시 '애증의 관계'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존재하는 공통명제인 '거리 두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박근혜 의원의 시대 읽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였고, 아버지 유업을 완성해야 한다는 장녀가 가진 초조함의 발원지였다. 혹시 여기에 1979년 10.26 이후 청와대를 떠날 때 받았던 수모와 '배신의 정치'에 대한 원한이 숨어 있다면? 귀갓길 심정이 조금 복잡해졌다. 그녀와 세대원의 부정합, 그것이 혹시 그녀와 시대, 그녀와 국민과의 부정합이 된다면 박근혜의 등극은 악몽이 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3부에서는 촛불집회 현상을 분석하며 '시민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전하고, 한국 정치가 '시민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한 요건들을 헤아려본다. 동시에 탄핵 정국을 수습할 방법을 제시하면서 차기 정권에 대한 전망과 대선 주자 평가도 덧붙였다.


뭔가를 해낸 듯한 '착각의 시간'이 지나면 급격한 '추락의 시간'이 온다. 차기 정권은 성장 위기, 금융 위기, 혁신 위기라는 삼각파도를 견뎌내야 한다. 광장에서 권리를 되찾아왔다면, 이제 의무를 수행할 차례다. 탄핵 성취 대가로 얻은 시민자치의 필수덕목은 '손실의 내면화'일 텐데, 우리의 시민성 창고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광장에서, 혹은 귀로에서 자문할 일이다.

평화로운 광장집회, 그것을 통한 집단적 의사표출이 시민민주주의의 개화한 형태라면, 광장집회에서 돌아가는 개별 시민들이 어떤 단계를 거쳐 집으로, 그들의 사적공간으로 귀환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개별 시민의 '사적공간'과 '광장' 사이에 어떤 자치조직들이 발전해 있는가를 말이다. (중략) 그렇다면 할 일이 분명해진다. 언론 방송에서 개념화하듯 광장집회가 시민혁명, 촛불혁명이 되려면 결사체적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취향과 관심에 맞는 시민활동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회원권을 1개 이상 갖고 있어야 한다. 진정 민주주의적 대의를 살리려면 특정이익을 옹호하는 전문가적 주창단체 외에 전국적, 계급 횡단적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환경연합, 경실련, 참여연대, 소비자연합처럼 전국 기반을 갖고 계급을 망라한 조직을 말한다. 그래야 '계급장 떼고' 토론하고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 공론의 처소, 공익에 대한 책임의식이 만들어지는 장소다.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정치적 비상사태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촛불집회와 탄핵 정국 이후 '한국 사회'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고 싶다면, 혼란의 틈새에서도 북극성처럼 작고 단단하게 빛나는 좌표를 찾고 있다면,마침 시의적절하게 나타난 이 책은 힌트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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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연락 - 유지혜, 스물다섯의 여행기
유지혜 지음 / 북노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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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스타인 제제(유지혜) 작가의 두번째 여행기.

그녀가 여행의 시작과 끝에 관해 정의한 대목에 공감하며.


'정확하게 여행한다'는 말은 근거 없는 억지다. 그러나 적어도 여행을 정확하게 출발하는 법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혼자 시작'하는 것이다. 도시의 뉘앙스를 말없이 보고 느끼는 시간이 하루쯤 보장되어야 숨통이 트인다.말의 왕래를 등지지 않는다면 지지 않는 낮과 카페 모서리 자리, 전시된 무명 아티스트이 그림이 건네는 말에 대답할 기회는 없다. 꿈꿔온 거리에 그런 푸대접을 할 수는 없다.

더이상 갈 곳도, 살 것도, 할 것도 없는 마지막 날 밤. 불필요한 부담이 덜어지는 끝은 마지막 식사, 빠뜨린 것 없이 잘 챙긴 짐 가방,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는 일, 이 세 가지로 완성되는 간단한 게임이다. 기대할 것이 없다는 사실이 하루를 경쾌하게 만든다. 

기분좋은 여행의 시작과 끝, 그 사이 어느 때, 어떤 장소, 어떤 사람, 어떤 마음에 대해 그녀는 매순간 담담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응시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일기는 자기 자신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간, 책 제목 그대로 '나와의 연락'이다.


안네는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크고 작은 감정을 세세히 남겼다. 전쟁이라는 잔인한 사건이 성장의 모든 사건들을 앗아갔기에 안네에게 감정이란 곧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쉬워서 불평거리가 되는 크고 작은 일들이 그녀의 일기에서는 감사로 적혔다. 그트록 절실했던 사건들은 그녀를 나이와 상관없이 큰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녀 덕분에 기록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기록은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뛰어난 기교로 남길 게 없는 무의미한 하루일지라도 말도 안 되는 문장 하나라도 적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첫번째 여행기 '조용한 흥분'에서 설렘 가득하던 스물셋은, 스물다섯에 쓴 이번 여행기에서 더 단단하고 더 깊어진 느낌이다. 투명한 하늘빛 반짝임 아래 따스한 분홍빛을 껴안은 채로. 덕분에 김광석의 '변해가네'가 멋진 고백을 담은 가사라는 것도 새롭게 발견했다. 그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였을 청춘의 연인을 떠올리며 내 마음까지 촉촉해졌다. 아, 여행으로, 사랑으로, 무엇보다 자기 자신으로 이렇게 충만하게 빛나는구나!(나의 스물다섯은 어떠했던가... 아흑) 그리고 2년 후, 아니 서른, 마흔, 쉰에 그녀는 또 어떤 날, 어떤 곳, 어떤 기분, 어떤 사람과 어떠한 자신을 이야기할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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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연결 -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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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의 출현은 올해의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던 바둑 게임에서 알파고가 4대 1로 이세돌 9단을 꺾은 순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 기술 앞에서 인간 존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상과 먼 이야기도 아니다. 검색 엔진은 이미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 기존에 클릭했던 정보들을 수집, 분석하여 사용자 맞춤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두 사람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더라도 그들이 접속한 장소나 평소 드나든 웹페이지, 선호하는 정보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또 같은 뜻의 단어라도 영어로 쓰느냐 일본어로 쓰느냐에 따라 검색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감각은 환상이며 우리는 구글이 통제하는 틀에 걸러진 정보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현실에 강하게 매여 있을수록 말, 경험, 사유도 한정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인터넷으로 인해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강화되고 고착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가 주장한 '약한 유대관계'라는 개념을 빌려 '약한 연결'을 제안한다. 깊이 아는 사람보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사람처럼 약한 유대관계를 통해 이직한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가 더 높았다는 그라노베터의 연구 결과처럼, 알지 못한 채 생기는 '우연한' 일이 오히려 긍정적인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환경과의 강한 연결을 벗어나 '약한 현실' 만들기, 즉 '여행'으로 환경을 바꿀 것,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새로운 만남을 가질 것, 그리하여 구글에 예측되지 않는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함으로써 앎을 새롭게 확장할 것을 권한다.
  자국과 해외 여러 나라에서 구글을 검색한 사례과 현지의 실상을 몸소 경험했던 감각을 풍부하게 소개하면서 그는 '신체'를 이동하는 것, '말'이 아닌 '사물'을 '체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이야말로 기호라는 추상의 바다를 떠다녀야 하는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몸을 쓰고, 사물을 직접 체험하며, 동물적인 감각을 느끼는 일.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그 지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기호,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네트워크 환경에 대한 비평과 인간 존재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묵직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쉽고 가벼운 에세이처럼 술술 읽힌다. 철학에 관심 없는 독자들을 위해 작정하고 자기계발론처럼 썼다는 저자의 의도 그대로다. '인터넷', '구글' 같은 단어들을 살짝 들어내면 정말이지 인생론과 다름없다. 장소를 바꾸면 우리의 욕망과 말과 생각이 바뀐다는, 적어도 그럴 가능성이 생긴다는 그의 권유는 얼마나 상쾌하고 즐거운가. 우리가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자아 찾기 하느라 자기 내부로 파고들 게 아니라 가벼운 몸으로 이동해 스스로 환경을 바꾸라는 것, 이것저것 재지 말고 우연에 몸을 맡길 것, 더 강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약한 현실을 도입할 것.  

 '약한 연결'이 달리 말해 '미지'의, '예측 불가능한' 현실에 뛰어드는 일이라면 마침 2017년 새해가 우리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은 근사한 우연인지도 모른다. 새해에는 더 가볍고 씩씩한 여행자로 움직여볼 일이다.

약한 유대관계는 노이즈로 가득하다. 이 노이즈가 바로 기회라는 것이 그라노베터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터넷은 그런 노이즈를 배제하는 기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다. 지금의 인터넷은 ‘파티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되어 속으로는 귀찮다고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소개를 받는‘ 상황을 실현하기가 매우 힘들다. 귀찮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차단‘하거나 ‘뮤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약한 유대관계를, 우연한 만남을 찾아야 할까? 바로 현실이다. 신체의 이동이고, 여행이다. 인터넷에는 노이즈가 없다. 따라서 현실에 노이즈를 도입한다. 약한 현실이 있어야 비로소 인터넷의 강함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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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연결 - 검색어를 찾는 여행
아즈마 히로키 지음,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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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거나 예측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몸을 써 움직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새로운 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말은 새로운 사유로, 새로운 현실로 이어진다. 약한 연결이 만들어내는 변화, 그 상쾌함! 강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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