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세상에서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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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소설이다. 첫 장을 펴든 순간부터 축축한 손아귀로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놓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데니스 루헤인 작품은 물 흐르듯 읽혔다.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도, 미스틱 리버도, 셔터 아일랜드도, 머리를 싸매고 눈에 불을 켜고 복선과 은유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그저 인물들의 이야기를 터벅터벅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하고 경이로웠다. 


이번 작품만은 달랐다.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너무 벅차서 눈과 머리가 따라가기도 쉽지 않을 만큼. 누구에게나 익숙한 느와르. 마지막 장의 제목을 흘긋 엿보고는, 결말이 어떤 방향일지 알면서도 책을 내려놓지 못했다. 모든 일을 미루고 바삐 글자를 쫓았다. 정신없이 읽어 넘기면서도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조와 의사가 마주앉아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해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각자의 뒤를 따르는 유령을 보는 장면이 소설의 백미였다. 너와 내가 가슴 깊은 곳에 묻은 이야기와 그로 인해 짊어져야 하는 짐, 샅과 혈연을 잘라내는 잔인한 폭력까지 하나로 어우러진.


루헤인이 그리는 갱은 정말로 잔인하다. 과장되지 않고 담백하게, 절명의 정경까지도 차분하게 그려내기 때문일 테지만.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멱이 잘리고 피가 쏟아지거나, 흘러나오는 장을 애써 그러모으거나, 44구경 총에 얻어맞는 사체가 춤을  추는 모습이 아니라, 담백한 대화와 묘사 사이 행간에 고여 찰랑거리는 감정들이 여기저기 아프게 흘러 넘치는 모습이다.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늘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겠노라 다짐하지만, 실제로 그 다짐을 실행에 옮긴 적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렇게 다짐만 할 테지만, 가능하면 커글린 가문 3부작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앞의 두 작품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상당히 많은 곳에서 옛 인물들과 사건이 언급되고 있는 만큼 전작을 읽는 편이 더 좋긴 하겠다.


책을 덮을 땐 한숨이 나왔다. 오랜만에 읽어 들러붙은 콩깍지 때문일까. 루헤인 최고의 작품이었다. 하긴, 매번 이런 얘기를 했었겠지만. 팬은 그저 좋은 작품에 감사하고, 좋은 번역에 감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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