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나영석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매력적인 뒷 얘기가 또 있을까. 완전 집중해서 라디오 사연을 듣는 느낌으로 훌훌 읽었다. 나의 2013년 첫 독서 기록. 나영석이란 이름보다, 아직은 '1박 2일의 나PD'가 더 익숙한 그분의 에세이.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

1박 2일의 첫 방송일은 2007년 8월 5일이다. 그 전부터 은지원과 노홍철이 슬러시를 먹고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관자놀이를 격하게 비비며, 무서운 놀이기구에 끌려가 아연실색하는 모습도 간간이 봤으니. 이 프로그램은 내 20대 초중반을 함께 아울렀던, 그 시절의 나를 울리고 웃기고 또 설레게했던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고작해야 TV에서 만나는 주말예능 하나가 이렇게까지 내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될 거라고 07년 당시에 어찌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책 속 이야기는 두가지 장면이 서로 교차되듯 번갈아가며 전개된다. 1박 2일의 나영석 PD 이야기와, 오래 몸담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뜬금없이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나는 인간 나영석의 모습. 처음에는 당연히 1박 2일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밌게 느껴졌는데, 나중에는 아이슬란드 여행기와 1박 2일 에피소드 중 어느것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갈팡질팡하다가, 이후에는 자신의 삶과 고민에 대한 내용이 오롯이 담긴 아이슬란드 쪽에 당연 마음이 쏠렸다.

연예인에 버금가는 유명인이 쓴 에세이. 그러니까 간간이 나와주는 그저 그렇고 그런, 연예계 뒷 이야기를 엿보는 흥미진진함 외엔 그다지 큰 감흥도 없고, 대부분 비슷한. 그런 얘기를 예상했다가 책을 읽을 수록 당황하게 됐다. 아 맞다. 이 책, 그러니까 1박 2일의 피디가 쓴 책이지. 지난 내 5년을 주말마다 꽁꽁 묶어둔 그 프로그램 제작자. 아 맞다. 나 그걸 잠시 잊고있었네…….
 


방송 당시에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봤던 내용 혹은 에피소드에 대한 오해를 풀며 맘이 괜시리 죄송스럽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허술한(?) 뒷배경에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글이 참 맛나고 재밌다는 사실. 어떻게 책을 휘리릭 읽은건지 눈치도 채지 못한 중에 어느새 아쉬운 이야기가 다 끝나,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마치, 그의 짐가방에 몰래 숨어 1박 2일의 지난 촬영 장소들과 아이슬란드까지 모두 함께 동행하고 서운한 마음으로 인천 공항에 내려진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지금의 나는 마흔은 커녕, 서른도 삼년은 지나야 오는 한창 파릇한(?) 20대 중반이라는 사실이다. 근데 왜 불혹을 앞두고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이 남자의 내용들이 이렇게 와닿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무엇보다 열 받는건, 프로그램 때도 매번 나를 밤늦게 라면먹게 했던 이 양반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라면 먹고싶다'라고 읊조리게 만들었다는 사실. 아아, 애증의 나PD. 저 요즘 덕분에 점심 저녁으로 성스러운 면식을 행하고 있어요. 통 안먹던 햇반에 와인까지 땡겨요. 어떡해요 나(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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