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는 그 자리
이혜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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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운이 좋게도 이혜경 선생님을 직접 뵐 기회가 생겼다. 어린 시절 초/중학교 때 한번쯤 만나본 인자한 담임선생님과 같은 모습에 홀딱 반해서 책에 대한 소개도 제대로 읽지 않고(사실, 나는 독서 전엔 그 어떤 소개나 리뷰도 보지 않는다.) 무작정 ‘선생님의 미소만큼 아름답고 따뜻한 내용 이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그 기대는 주말사이 무참히 깨졌다.

주말 동안 책을 읽다가 표지 사진과 함께 트윗을 적어서 올렸다.

「읽는 내내, 있지도 않았던 오래된 연인과 이별한 듯하여 맘이 참 별났다. 주말을 택해 가져오길 다행이란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자 몇 시간 뒤 갑자기 리트윗 물살을 타더니, 많은 분들이 순식간에 즐겨찾기를 했단 알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그랬거니 하는 뿌듯한 마음과, 막연하게 ‘다른’ 기대를 했으면 어쩌지? 싶은 걱정이 교차해 조금 곤란하기도 했다.

(p.49) 일 년 만에 1급 속기사 자격증을 따고 배신과 사기, 음모와 속임수로 채워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녹음을 풀었다. 녹음되고 기록될 것임을 알았다면 뱉지 않았을 말들이 와글거렸다. 약속은 어긋나고 믿음은 배신당하는 게 오히려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의 맨홀로 들어가 하수구를 헤매는 것 같았다. 「한갓되이 풀잎만」 中


9편의 단편이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 중, 책의 리뷰에 하필이면 두 번째 단편의 한 구절을 발췌한 이유는 ‘배신’이라는 메인 소재에 대한 감상이 가장 절실하게 와 닿은 대목 이래서였다.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한 이유, 속해 있는 세상이 어떤 곳이냐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인간의 마음.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완전 절실하게 느껴졌다. 물론, 9편의 단편 중 내 기준에서는 ‘배신’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기 힘든 내용들도 더러 있었다. 상대가 요구하지 않은 것을 일방적으로 제공해놓고, 그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신’이라니……. 하지만 더불어 떠올린 것은 ‘나는 그런 적이 없었나?’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속이 쓰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따금 예기치 못한 문제를 직면할 때면 항상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제까지 내게 그런 불신이나 편견을 무의식중에 심어준 사람들처럼, 이 책도 당분간은 내게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남겨두게 될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를 수용하는 것도 그런 가치관을 마음에 심는 것도 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면, 극복하는 것 역시 내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싶었다. 책을 덮을 즈음엔, 이제껏 해오던 고민 중 일부에 조금은 태연해지고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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