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퓨어 1 ㅣ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책을 보는 내내 도저히 떨칠 수 없는 기우였다.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우. 이 책은, 2012년 전 세계를 사로잡은 디스토피아 판타지라고 하는데,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디스토피아'라는 용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디스토피아 [dystopia] 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한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디스토피아는 현대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는 점에서 매우 유효한 방법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1999년 이후로 다시금 술렁이며 대두된 지구 종말의 해라고 지칭되는 2012년의 초봄에. 그것도 온갖 번다한 생각들로 참 싱숭생숭한 이 때에. 책을 읽다보니 문득 '이게 사춘기인가?' 라고 처음 인지했던 10여년 전의 어느날이 떠올랐다. 여자로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고민과, 언젠가 찾아올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함께 느꼈던 순간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왜 태어난거지?'로 시작된 그 물음은, 밤새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 잠 한숨 못자게 했던 기억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 기억이 되살아나, 그 시절의 밤으로 고스란히 나를 데려다 주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그저, 무서웠다.
그것은 분명 소설가가 지녀야 할 기본 자질이자 능력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실감나는 묘사 때문에 몇번을 힘들어하며 덮었다가, 또 나중을 위해 다시 쓴 약을 삼키는 듯한 기분으로 다음 장을 펼쳐들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이 세계 속의 '친민'들이 모두 나의 동지였고, 당장 코앞에 닥친 나의 '미래'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적나라했고, 충격적이었다.
이 리뷰는 시리즈의 시작 <퓨어>의 1권에 대한 내용. 이후에는 <퓨즈> 그 다음 해에는 <번> 시리즈가 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우선 오늘밤은 <퓨어> 시리즈의 남은 남은 2권을 읽어야 할텐데, 또 읽는 내내 두려움과 몸서리치다 뜬 눈으로 밤을 샐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가 사는 현실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마도 '3차대전'의 가상 속 이야기쯤 될 법한 '대폭발' 이후의 '디스토피아' 속 이야기. 해마다 한 시리즈씩 나올 3부작의 이야기 중, 내가 읽은 것은 겨우 1편의 1권 뿐인데도, 이야기의 전개마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으니, 앞으로 남은 한 권과 내년 또 그리고 후년의 속편들을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책 속 이야기처럼 2012의 대재앙이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새해를 맞아 남은 이야기를 계속 볼 수 있게 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